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 경제를 망가뜨리는 자
라나 포루하 지음, 이유영 옮김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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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지금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지경에 을렀다. 금융이 성장하자 기업은 물론이고 경제와 사회 전체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가늘고 긴 경제 회복을 겪고 있다. 그 해결책은 고립주의도 아니고, 세계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도 아니다. 금융과 실물 경제, 즉 거저먹는 자와 만드는 자 사이의 힘의 차이를 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19)
토마 피케티가 주장한 것처럼, 자본이란 "언제나 한편으로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물이다. 자본은 각 사회의 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며, 여러 사회 집단 간의 관계, 특히 자본을 소유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여러 제도와 정책에 좌우된다."
오늘날 금융업계의 규모와 영향력, 그리고 금융업계가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양태를 보건대, 우리는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있다. 제럴드 데이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은 '포트폴리오 사회', 다시 말해 "모든 부류의 사회적 삶이 증권화되어 일종의 자본으로 전환된 사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포트폴리오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하여, 인간관계는 '사회적 자본'이, 인간 자체는 '인적 자본'이 된다. 그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기회든 '화폐화'되기 마련이다. 나아가 데이비스는 이렇게 진단한다. "결국 금융이라는 '관행'이 모든 일을 관장합니다. 심지어 금융기관 자체보다도 우위에 있죠. 지금 문제는 '시장의 규칙'을 중심에 둔 사고입니다. 시장이 우리 사회 내의 모든 기관을 압도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444)
우선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기 시작했다. 망가져 가는 퇴직연금 제도를 보라.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되는 모습이라든가, 미국의 조세 제도가 만드는 자보다는 거저먹는 자를 우대하는 꼴은 또 어떤가. 콘잘과 애버내시가 서술한 것처럼, "민영화에 따라,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 대신에 정부가 하는 일의 배분 문제가 대두됐다." 누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를 둘러싼 무겁고 논쟁적인 질문을 피하려던 정부가 손쉽게 사용해 온 수단이 바로 금융화였다. ... 금융권으로 하여금 신용 공급을 늘려 저성장 문제를 빚으로 땜질하도록 만듦으로써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뒤로 미룰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불평등이 심화되고 경제 성장의 기반이 약해지면서, 금융화는 사실상 저 질문들을 더욱 시급한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445) 

제목부터 요상합니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라.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책 앞부분을 읽어봅니다. 읽어보니 메이커스는 만드는 사람이고 테이커스는 거저먹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거저먹는 사람이라? 궁금해집니다. 책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조금 더 상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드는 사람인 메이커스는 실제로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들로서 실물 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테이커스는 이 메이커스에 빌붙어 돈을 버는 존재들로서, 실물 경제와 거리가 먼 자산시장을 이용해 돈을 버는 소수의 거저먹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요? 책에 따르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마법의 단어 금융화입니다.

책에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금융화는 마법의 단어입니다. 금융화란 단어가 붙으면 무언가 멋있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선진적이고 돈을 많이 벌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월가가 만든 허상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통계나 상황을 보면 금융화는 생각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이며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주주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어야한다며 단기적 이익에만 매달리고 장기적인 투자와 생산성 향상을 내팽개쳐 기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주가치 우선주의, 생산을 위한 대출보다 부채에 기댄 투기적 행동을 우선시하는 것, 경제에서 금융 및 금융 활동의 규모와 범위가 비대해지다 못해 대마불사를 신봉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일으킨 주범임에도 여전히 '시장이 가장 합리적이고 잘 안다'는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것, 인간의 이기심을 긍하다 못해 비도덕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한 투기와 사기에 가까운 수법을 옹호하고 장려하는 금융계의 행태와 그것을 동경하고 따라하려는 인간들의 모습 같은 것, 교육, 필수적 사회 인프라, 교도소 같은 것들을 민영화하고 증권화하는 모습들까지, 금융화가 초래한 악영향과 비합리성은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금융화가 그렇게까지 위험한 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월가와 월가의 사상을 추종하고 받아들인 이들, 금융화로 이득을 얻는 이들이 금융화가 초래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금융화를 마법의 단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뭔가 합리적이고 선진적이며 이성적인 느낌으로. 현실을 가려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은 금융화가 계속 진행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극도로 불평등등한 현실을 마주하거나 비생산적인 금융업만 비대해지고 시장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공황을 맞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이상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뭔가 이상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를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라나 포루하는, 금융화가 초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보여줍니다. 위에서 적은 것처럼, '투자하고 생산하고 소비하여 다수의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실물경제 대신 금융업이 초점을 맞추는 자산시장에 투자하여 더 큰 이득을 얻고 다시 그 이득으로 자산시장에 투자하는 순환고리를 통해 자신시장에 엄청나게 투자한 가진자들의 배만 불리는 현실', 'GE나 애플같은 상품을 만들던 대기업들이 배당금만 노리는 주주들의 압력에 의해 금융업에 더 집중하면서 생산을 위한 투자와 거리가 멀어지는 현실','기업을 노리고 규제해야 하는 정부 관료들이 기업의 영향력과 압도적인 로비, 시장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무력하게 무릎을 꿇는 현실', '자산시장의 확대로 인해 사람들이 자산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엄청나게 부채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시장에 언제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현실', '안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퇴직연금이 금융화의 물결에 휩쓸려 손해를 보거나 낮은 이득을 얻어 노후마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며 우리에게 말합니다. 금융화의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건 미국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이 얼마나 한국과 다를까요?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우리도 미국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 책을 읽고 우리는 현시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라보면서 라나 포루하처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거기서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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