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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ㅣ 밀란 쿤데라 전집 10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유년의 잃어버린 발자국들이 새겨져 있는 다시 별견된 오솔길, 몇 년간의 방랑 끝에 그의 섬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귀환, 귀환, 귀환의 위대한 마술.(9)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 말이다.(11)
오래 기간 떠나 있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오고서야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라는 명백한 사실에 놀라지.(171)
그들은 우리가 무얼 생각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살아 있는 증거로서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관대했고 그 점에 자부심을 느꼈지. 언젠가 공산주의가 무너졌을 때 그들은 나를 심문하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지. 그때 사태가 악화됐던 거야. 나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거든.(171~172)
가끔씩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같은. 둘은 행복하기만 했을까? 부부싸움도 하고 그렇지 않았을까? 왕자가 바람도 피고 신데렐라가 분노하는 일은 없었을까? 아니면 작은 문제들이 있어도 잘 참고 살아갔을까? 여러질문을 던지다 보면 신데렐라의 결말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디세우스의 결말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이십 년의 방황 끝에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행복하기만 했을까?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삶은 문제가 없었을까? 이십 년 만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고향의 삶을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에게 고향의 삶은 낯선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고향의 삶을 못 견디고 다시 또 떠난 건 아닐까? 답이 있을 수 없는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고 내 나름대로 상상하니 흥미롭더군요. 내 상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재해석과 재창조가.
<향수>를 읽고나니 밀란 쿤데라도 저와 비슷한 상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향수>가 밀란 쿤데라식 '오디세우스'의 '재해석' 혹은 '재창조' 같아 보이거든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귀향과 향수의 이야기인 오디세우스를, 밀란 쿤데라는 자기 자신의 망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체코에서 망명했다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창조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로서.
처음부터 소설은 상식적인 궤를 벗어납니다. 책속의 주인공 중 한명인 체코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망명객 이레나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프랑스인 친구 실비의 권유로 고향인 체코로 떠밀리듯 가게 됩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고향에서 떠난 사람은 고향에 돌아갈 기회가 생기면 당연히 가고 싶어 할 것 같은데, <향수>의 이레나는 자신은 갈 생각이 없는데 다른 평범한 이들의 일반적인 통념에 떠밀려 고향에 가게 됩니다. 고향에 돌아온 이레나가 겪은 일들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네, 소설은 그야말로 쿤데라 특유의 스타일로 이레나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귀향과 향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이레나에게 너무나 낯섭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 따위는 잊으려고 합니다. 도시의 풍경도 공산주의의 과거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공산주의 시절의 흔적을 지우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이레나가 떠나있던 시절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만난 어머니도 이레나에게 별관심은 없고 자기자신의 삶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레나는 과거의 연인이자 이레나처럼 망명했다 귀향한 조지프와 만나서 그가 자신을 알고 있다고 여겨 기뻐하며 성관계를 맺지만, 성관계 후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레나는 절망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이 알던 과거의 흔적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 고향. 이레나에게 거기가 고향이 맞을까요? 다시 돌아온 자기 마음의 안식처이자 태어난 모태로서의 고향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녀에게 체코는 단순히 태어나고 자란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그녀에게 체코는 고향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고향은, 체코를 떠나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삶의 안식처가 되어준 프랑스가 아닐까요? 태어나고 자란 장소 그 이상의 의미 는 가지지 못하는 체코보다는 삶의 기반이자 삶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프랑스가 이제는 더 고향에 맞는 장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단언할 수 없지만, 저는 이레나가 프랑스를 더 고향처럼 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지프는 어떤가요? 이레나보다 그가 상황은 더 나아 보인 것은 맞습니다. 고향에는 형도 있고, 과거에 자신을 도와준 친구 N도 건재합니다. 하지만 고향에 가니 다시 형을 만난 그에게 형수는 과거처럼 적의를 드러냅니다. 자기 스스로 포기했기에 부모님의 물건이나 집은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고요. 고향의 가족은 그가 필요하지 않다고, 그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거의 일기를 읽은 그는 과거의 자신이 너무 낮설어서 당황합니다. 고향에서 나고 자란 과거의 자기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친구 N은 친절하지만 그가 떠나고 나서의 얘기는 일체 하지 않습니다. 그도 조지프가 그동안 없었던 것처럼 대하는 것이죠. 낯설고 낯설어서 당황하는 그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같은 망명객 신세로 귀향한 이레나입니다. 둘은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을 느끼다 성관계를 맺죠. 그런데 문제는 조지프가 이레나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저 그녀와 낯선 고향에 대한 정서를 공유하다 호감을 느껴 거기까지 간 것에 불과합니다. 실망하는 이레나를 두고 그는 '낯선' 고향을 떠나 익숙한 '타향' 덴마크로 돌아갑니다. 이레나처럼 그도 체코라는 고향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대신 익숙한 타향 덴마크를 자신의 새로운 고향으로 얻은 것이고요.
자, 여기까지 얘기하면 이 책은 오직 귀향과 향수의 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가 그렇게 단순하게 책을 쓰는 작가는 아닙니다. <향수>는 단순히 귀향과 향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체코가 고향이 아님에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와서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이레나의 애인 구스타프, 굉장한 생명력으로 구스타프를 유혹하다 성관계까지 맺는 이레나의 어머니, 조지프의 과거 애인으로 그에게 버림받고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그 시점에 삶이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레나의 친구 말라다 같은 다양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향수>를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들이 어울려지며 빚어내는 소설로 만듭니다. 밀란 쿤데라 특유의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없 수 없는 소설이 만들어진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귀향과 향수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쓴 것에 불과합니다. 책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를 보고 <오디세우스>가 이 책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 다시 오디세우스 얘기로 돌아갑시다. 오디세우스는 돌아온 고향에서 이레나나 조지프처럼 고향이 낯설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이레나나 조지프와는 달리 고향을 익숙하게 느낄까요? 제가 명확하게 알 수는 없겠죠. 다만 <향수>를 보면 밀란 쿤데라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낯설게 느낄 것이라고 암시하는 대목을 써놨습니다. 아마도 밀란 쿤데라는 오디세우스가 귀향해서 고향을 낯설게 느낄 것이가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고향이 고향이 아니게 되고, 자신이 방황했던 곳들이 오히려 익숙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면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할까요? 자신이 느꼈던 향수가 현실이 아닌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디세우스의 행동이 어떻게 이어질까요? 저는 다시 떠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고향이 아니라 자신이 익숙했던 곳으로. 어쩌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자신이 익숙해진 장소로서의 고향을 계속해서 맴도는 방랑자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방랑자는 오디세우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고향이 언제라도 낯설어질지 모르는 게 인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