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머니 밀리언셀러 클럽 148
로스 맥도날드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된 몬테비스타 주민으로서 말해 줄 게 있어요. 여기선 거의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답니다. 거의 무슨 일이든 벌어져 왔고.(44~45)
현재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그 수수께끼와 의미를 아프게 의식하게 만들 수 있다.(254)
비극의 후속편이 아니라 전원시를 위한 배경 같았다. 인생은 짧고 달콤하다고 난 생각했다. 달콤하고 짧고.(307~307)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일까요? 누군가 감추려고 하는 것들을 알아야만 세상이 선하고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지금 보다 나이가 어릴 때는 진실을 아는 것이 진실을 모르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좋거나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실을 몰라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실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거나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는 고독하게 진실을 쫓는 탐정의 모습을, 미국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스타일로 풀어낸 소설입니다. 고독하고 쓸쓸한 탐정 루 아처는 현실의 씁쓸한 실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과 마주서는 인물입니다. 그가 마주치는 현실은, 미국의 신화를 구성하는 것중 하나인 가족의 이상이 무너져내린 동시대의 미국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신화가 무너져내린 부부, 해체된 가족, 서로를 믿지 않는 가족관계, 더 나아가 서로를 이용하다 비극을 맞는 모습들까지. 과거의 이상이 통하지 않는 그 시대의 미국 가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탐정 루 아처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진 채 파헤칩니다. 자신의 행동이 그들의 상처를 후벼파다 못해 터뜨린다고 해도. 왜냐하면 이미 곪을 때로 곪을 상처는 결국에는 모두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미 그들은, 곪을때로 곪은 상처 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 입고 있어서 누군가가 그 상처를 터뜨려주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루 아처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바란 행동을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로스 맥도날드는 가족의 해체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바람을 담아서 탐정 루 아처를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동시대의 현실이 작가로 하여금 이 시리즈를 만들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루 아처 시리즈에서 무너져 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모습과 그 무너져내림 속에서 사그라져 가는 가족의 이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 아처는 형체만 남은 가족의 이상과 아메리칸 드림을 두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돕는 탐정입니다. 그것이 본인에게 너무나 아파서 견디기 힘들다 해도.

<블랙 머니>도 루 아처 시리즈의 패턴을 따라갑니다. 부유한 도시 몬테비스타에 와서 의뢰인을 만난 그는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들여 사건을 파헤치다 추악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연쇄살인, 폭력, 도박, 불륜, 원조교제, 협박. 마치 막장 드라마에 나올 듯한 자극적인 사건들의 한가운데를,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채 나아가는 탐정 루 아처는 아무리 비극적이라고 해도 진실에 가닿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아프다고 해도 우리 앞에 진실을 펼쳐 보이고 그는 쓸쓸하게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 봅니다.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일까요? 누군가 감추려고 하는 것들을 알아야만 세상이 선하고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블랙 머니>를 읽고 나니 더욱 더 쉽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네요. 그래도 확실한 건, 루 아처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그는 곪을때로 곪은 상처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요. 저는 어떨까요? 저는 아직까지 확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습니다. 비겁하게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지금 이 대답이 그나마 최선이니까요.

"당신이란 사람을 모르겠어요, 아처. 목표가 뭐예요?"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3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