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시메노 나기 지음, 박정임 옮김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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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낸 모든 이에게 꿈결 같은 기적을 선물하는 이야기

우리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처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낸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면서도 결국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리움의 마음을 누군가 대신 전해준다면 어떨까?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가 바로 그런 존재다. 함께 살아가던 이들 곁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들, 이승(초록 세계)이 아닌 저승(파란 세계)에서도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는 설정마저 마음 따스하게 만들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왔지만 그리움 집사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된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가 되기로 한 치즈 태비 후타.

무지개다리 너머,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카페 퐁,
고양이 전령사들에게 당신의 사연을 접수해 주세요.
영원히 볼 수 없는 그리운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카페 퐁의 주인인 니지코씨에게서 전달받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후타는 이곳저곳을 누벼야만 한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조사를 하는 일도, 그들의 혼을 전달하는 일도 모두 후타의 몫이다. 초록 세계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다리에서 통행증을 검사하는 카오스를 만나게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고양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성인이 되었지만 언제나 서투른 미나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나의 첫 개인전을 보여드리고 싶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후타는 미나미를 따라 전시회를 여는 곳이며 미나미를 따라가기도 한다. 그리고 파란 세계로 가서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 혼을 꼬리에 담아 그녀에게 전달하러 간다. 혼을 전달할 대상을 찾다 실수로 어린아이에게 꼬리가 닿게 되어 임무가 실패하는 듯 보이지만 미나미의 개인전 그림을 보고 간 꼬마에게서 아버지의 느낌을 받게 되는 미나미. 다른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는 과정은 신기하기만 하다. 실수하기는 했지만 첫 번째 임무를 성공하고 발 도장을 남기는 후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난 아이를 만나고 싶다.'라는 소시가야 히즈루의 사연 속에서는 그녀가 지키지 못한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잊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추억하던 그녀. 파란 세계에서 건강히 자라고 있을 아이의 마음을 느끼고 추억을 소중히 키워나갈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따스해짐을 느끼게 했다. 현재 자신의 불행이 행여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헤어진 연인과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고 했던 도고후미의 사연, '학창 시절 내게 상처를 준 선생님께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싶다.'라는 히로세 스스무의 사연. 마지막 다섯 번째 '나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다.'라는 호사카 고즈미의 사연까지.

그들의 사연을 듣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후타의 여정과 그들의 사연 속에 담긴 각자의 사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는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였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운 순간이 찾아와 그 그리움을 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퐁 카페를 찾아가고 싶어졌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는 출입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 잇닿아 있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존재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했던 따스한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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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이 하고 싶은 말 - 심리학자이자 아동문학가가 들려주는
패트리시아 페르난데스 비에베라흐 지음, 타니아 레시오 그림, 김영옥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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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이자 아동문학가가 들려주는 감정이 하고 싶은 말

감정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감정은 무슨 이유로 날 찾아왔을까? 감정이 하고 싶은 말은 뭘까요? 내 감정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내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리는 나의 마음과 마주하는 것을 꺼리는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이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동시 함께 책을 읽는 부모의 감정도 들여다보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숨기거나 우리의 감정과 다른 감정을 아이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에게 반성의 시간도 안겨준다.

우리의 감정은 수업이 많다. 단순히 얼굴 표정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아닌 다양한 감정을 내 감정이 하고 싶은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가 잊었던 감정은 무엇일까? 그런 감정을 만나보자.

그리움은 예전의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기쁨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알려줘요.
질투는 내가 얼마나 멋진 걸 가졌는지 잊을 때 생겨나요.
사랑은 나라서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요.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받은 용이 불을 화르르 뿜어내는 듯, 존중받지 못할 때 나오는 감정이 바로 '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감정 중의 하나는 공감이 아닐까.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 친구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감정. 잘못된 행동을 하고 난 뒤의 후회와 반성이 담긴 '죄책감', 소중한 것을 잃은 상실의 마음인 '슬픔', 두려움, 믿음, 쑥스러움, 안심, 불안.

자존감은 내가 믿는 내 모습이에요.
호기심은 나와 다른 것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생겨나요.
싫고 꺼려지는 마음을 혐오라고 해요.
좌절감은 애쓴 것들이 물거품이 됐을 때 너무 속상해서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에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만날까? 《내 감정이 하고 싶은 말》 속에 드러난 감정 이외에도 우리는 많은 감정을 만난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감정은 쉽게 설명할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더 많은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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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상증후군 토마토미디어웍스
이누준 지음, 전성은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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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의 고민들을 해결해 주는 심야 특급열차, 그 낭만적인 하룻밤 이야기

켄타가 말했다.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살아가고 있다고. 누구나 고통스러운 고민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기쁨과 행복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p.333 ~ p.334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북상 증후군》 속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2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의 폐업으로 하루아침에 백수 신세가 되어버린 코토하. 함께 다니며 교제를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사를 가버린 연인 카이토와의 장거리 연애마저 고토하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기에 더욱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 고토하의 상황을 듣게 된 나츠미의 조언으로 무작정 카이토가 있는 삿포로로 가게 된다. 난생처음 타게 된 심야 특급열차는 1인실이 아닌 4인실이어서 당혹스러웠던 코토하에게 먼저 말을 거는 낯선 남자 켄타를 만나게 된다.

4인실에 하나둘 사람들이 차게 되면서 그들의 고민을 알게 된다. 사랑만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다 별거를 결심하고 무작정 집을 나온 히로코, 엄마와 다투고 가출을 한 뒤 할머니 댁으로 가기 위해 심야 특급열차에 탔다는 코하루.켄타와 코토하는 두 사람의 고민을 듣고 난 후 고민을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히로코를 대신해서 그녀의 남편과 통화를 나누고 그녀의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그의 마음까지 정확하게 듣게 된다. 그리고 코하루 대신 코하루의 엄마와 통화하면서 코하루의 상황을 알게 되고, 코하루의 마음과 코하루 엄마의 진심을 서로 알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고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카이토와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코하루. 사랑 앞에서 고민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에 기뻐하고 사랑에 아파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들을 대하는 시선은 따스하게 느껴진다. '노인 돌봄 지원 전문원'이라는 작가님의 특이한 이력답게 사람을 대하는 시선도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님의 이력을 생각하다 보니 심야 특급열차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아오모리에 살고 있다는 타카오씨의 이야기가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3년에서 5년 안에 호흡기 마비까지 올 수 있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삶을 자신의 결정으로 인공호흡기를 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결정이 옳았던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환자의 의지가 아닌 남편인 타카오씨의 의지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어떨지 헤아릴 수조차 없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털어놓지 못해도 낯선 사람들에게 주저하면서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심리. 그런 마음을 이야기 속에 담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애쓰는 모습 또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북상 증후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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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인생 수업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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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국민정신과 의사와 내 인생을 만들어준 사람들

마흔을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여전히 찾고 있다. 그런 나에게 국민정신과 의사이신 《이시형의 인생 수업》은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살아왔던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으며, 후회로 가득한 날들이 많지만 다시 나아가기 위해, 《이시형의 인생 수업》을 통해 다시금 나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책에 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내가 만난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의 사연을 썼다. 이미 이승을 떠난 사람도 있고 지금은 통 만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내 곁에 가까이 있다. 그들과의 인연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그리고 앞으로 나와 함께 인생 수업을 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p.28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의 편견이었음을 《이시형의 인생 수업》에서 보여준다.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와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내온 세 명의 친구 이야기, 배움을 이어가던 대학시절과 유학 생활, 그리고 인생의 계속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우리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전하고 있다. 닫는 글에서 언급되었듯, 소위 말하는 자서전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자서전이었다면 조금 더 딱딱하고 과장된 부분이 있었겠지만, 자서전보다는 의사이기 이전에 이시형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친숙하게 다가왔다.

인생 수업 9교시에는 고통, 존재, 타인, 친구, 부모, 자녀, 부부, 고독, 행복이란?. 9가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시련 없는 인생은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고통은 찾아온다. 그 고통이 젊어서 가볍게 느껴지거나, 나이 들어서 무겁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모든 고통은 똑같이 힘들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룬 것보다 타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을 이용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이시형 작가님께서는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려지고 있다."라고 표현하셨다.

고독만큼 무서운 병은 없다. 그런 고독을 떨치기 위해, 우리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어느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연락조차 끊어졌다. 그러다 가끔 전해져오는 연락은 나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서 건네는 위로의 말이라 대하기 부담스럽고 불편하기도 하다. 더 나이 들어 고독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귈 필요가 있음을 느끼면서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 챙겨야 할 존재인 부모와 기쁨도 슬픔도 가져다주는 자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종종 다툼이 벌어지겠지만 타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선을 지켜야 할 부부. 행복해지려면 가기에게 만족할 줄 알고 객관적이고 합리적 판단이 있어야 함을 알려준다.

인생은 길고, 살아보면 내리막이 반드시 있다. 앞으로 너의 삶에는 이보다 더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인생에 오르막, 내리막이 있기에 지금의 아픔을 그저 그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주세요. p.326

심리상담가이자 문화심리학자로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 박상미의 가족 상담소 등의 책을 쓰신 박상미 교수님과의 인생수업 인터뷰에서 이시형 저자님은 90년 인생을 살아보시고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인생에서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게 될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들려주고 계셔서 더욱 공감이 갔다. 여전히 삶을 살아가야 하고, 어디까지 인생이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이시형의 인생수업》 속 인생수업 9교시를 통해 나의 인생을 되짚어보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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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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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시대의 슬픔을 껴안고 타오르는 글로 저항하기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책을 마주했을 때, 설렘 그 자체였다. 책의 목차에서 볼 수 있듯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려는 이브 엔슬러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이 된다. 그러면서도 슬픔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 슬픔이 더 증폭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속도를 줄이는 것과 되돌아보고, 보고, 진정으로 다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책임과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순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히도 외로운 우리가 갈구하는 손길, 잃어버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벽을 허무는 이야기, 벽을 세운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자문하는 이야기다. 에이즈의 시대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페미사이드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슬픔, 트라우마, 지독한 바이러스,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사유에 관한 이야기다. p.13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브 엔슬러는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모두 마주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산문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 편지, 에세이 등의 글에서 그녀가 겪은 슬픔이 묻어나고 있다. 파괴와 폭력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희망과 나아갈 수 있는 미래를 찾았다는 이브 엔슬러처럼 나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읽어나갔지만 슬픔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순간, 그 고통이 계속되기보다 고통에서 벗어난 시간들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기도 했다.

엄마의 뱃속에서 자신과 연결시켜 준 탯줄이 있던 자리인 배꼽을 통해 마치 독약이 온몸으로 퍼지는 거 같다고 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출생보다는 죽음이 더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탄생, 죽음, 그 흔적 속에서 죽음이 빠져나오려는 듯 죽음이 두렵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강간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알렸을 때 어머니는 그녀를 안아주며 슬픔을 보듬어주기보다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이곳이나 그곳이나 매한가지인 듯 아버지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녀는 편하되고 고통받던 몸을 버리고 비워진 후에야 비로소 삶을 얻었다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어 그 고통스러움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브 엔슬러의 슬픔과 타인의 슬픔은 한대 뒤섞여 슬픔이라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 글을 쓰고 있는 이브 엔슬러는 결국 자신이 겪었던 가정폭력과 강간, 그리고 전쟁으로 겪게 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의 슬픔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런 슬픔들을 한데 모아 글로 표현하면서 현실에서 마주한 슬픔의 섬뜩함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슬픔을 외면했던 방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거라는 생각해 본다. 이브 엔슬러가 외면하지 않고 마주했던 슬픔의 이야기,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시간들. 그 고통의 시간을 넘어 희망이 피어나는 미래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사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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