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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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시대의 슬픔을 껴안고 타오르는 글로 저항하기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책을 마주했을 때, 설렘 그 자체였다. 책의 목차에서 볼 수 있듯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려는 이브 엔슬러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이 된다. 그러면서도 슬픔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 슬픔이 더 증폭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속도를 줄이는 것과 되돌아보고, 보고, 진정으로 다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책임과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순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히도 외로운 우리가 갈구하는 손길, 잃어버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벽을 허무는 이야기, 벽을 세운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자문하는 이야기다. 에이즈의 시대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페미사이드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슬픔, 트라우마, 지독한 바이러스,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사유에 관한 이야기다. p.13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브 엔슬러는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모두 마주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산문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 편지, 에세이 등의 글에서 그녀가 겪은 슬픔이 묻어나고 있다. 파괴와 폭력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희망과 나아갈 수 있는 미래를 찾았다는 이브 엔슬러처럼 나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읽어나갔지만 슬픔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순간, 그 고통이 계속되기보다 고통에서 벗어난 시간들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기도 했다.

엄마의 뱃속에서 자신과 연결시켜 준 탯줄이 있던 자리인 배꼽을 통해 마치 독약이 온몸으로 퍼지는 거 같다고 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출생보다는 죽음이 더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탄생, 죽음, 그 흔적 속에서 죽음이 빠져나오려는 듯 죽음이 두렵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강간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알렸을 때 어머니는 그녀를 안아주며 슬픔을 보듬어주기보다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이곳이나 그곳이나 매한가지인 듯 아버지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녀는 편하되고 고통받던 몸을 버리고 비워진 후에야 비로소 삶을 얻었다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어 그 고통스러움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브 엔슬러의 슬픔과 타인의 슬픔은 한대 뒤섞여 슬픔이라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 글을 쓰고 있는 이브 엔슬러는 결국 자신이 겪었던 가정폭력과 강간, 그리고 전쟁으로 겪게 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의 슬픔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런 슬픔들을 한데 모아 글로 표현하면서 현실에서 마주한 슬픔의 섬뜩함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슬픔을 외면했던 방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거라는 생각해 본다. 이브 엔슬러가 외면하지 않고 마주했던 슬픔의 이야기,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시간들. 그 고통의 시간을 넘어 희망이 피어나는 미래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사유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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