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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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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의 저편에서 눈부시게 반작이는 단 하나의 풍경, 그리고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죽은 ‘왕녀’ 곁에 선 ‘시녀’가 상징하는 것은 비단 주인공의 못생긴 연인만이 아니다. 그것은 80년대에 대한 추억 그 자체다. 그것은 록 음악이기도 했고, 소설이기도 했으며, 늘 성공을 꿈꾸던 우리네 서민들의 삶 자체이기도 하다. 마돈나,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의 온갖 삼류영화들 틈바구니에서 문득 자신들의 비루한 삶에 눈물을 삼키곤 했던, 그래서 예뻐지고 싶고, 부유해지고 싶고, 세련되고 싶었던 지나간 우리의 모습들이다. 자본주의의 꽃인 부와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을 이끌고 구속하는 그 ‘꽃의 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해 왔듯이,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를 사로잡아온 역사, 결국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시스템 오류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처음엔 소설의 순수한 흐름만으로 즐겁고 빠르게 읽었던 것 같다. 못생기고 가족과 남편에게 헌신만 하다 버림받은 화자 '나'의 어머니의 불행을 공감하는 글을 토대로 그의 지내온 환경을 이해하였고, 같은 직장동료인 백화점 요원 추녀를 사랑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화자'나'는 소설 지망생으로 삶을 그저 '일상'으로 덮고 지내지 않을 만큼 추녀에 대한 반감도 없다. 그가 아버지의 유전자를 닮은 미남이지만(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렸지만), 그는 오히려 못생긴 '그녀'에게서 진정한 내면의 사랑을 찾게 되고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의 외로운 삶에 동료인 백화점 주차요원 주임인 '요한'이 단짝이 되면서 세상을 비웃는 거침없는 말들도 즐겁게 호응하며 읽었다. 그들만의 삼총사 모임 장소인 '켄터키 치킨' 가게가 'hof'를 'hope'로 입간판을 꿋꿋이 달고 있는 것이 그들에겐 희망을 마시는 듯했다. beer를 bear로. 그 80년대엔 그렇게 마구잡이로 영어가 난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이상한 시대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켄터키 옛집의 닭들을 다 먹어치울 만큼 추억을 쌓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신기하게도 나의 80년대를 거슬러 순간이동한 듯한 기분에 야릇한 추억으로 콧등이 시큰거렸다.
못생긴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못생긴 그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희생양이고 비주류였고 비판의 공공연한 대상이었다. 외 모 이데올로기에 젖어 사는 우리는 그녀를 부끄러워한다. 똑같이 생리를 시작해도 여성으로써 대접받지 못하는 그녀의 삶을 과연 얼마나 우리는 이해하고 있을까. 그들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상'인 '생활(자아 없이 돌아가는 일들)'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그녀는 그 '생활'이 그와의 이별의 순서로 받아들이고 이별을 예감한다. 늘 그렇게 '추녀'로 살아왔던 시간들을 인정했던 것처럼, 그녀의 편지를 읽을 때 마음이 아려왔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화려한 20살의 시절이 13년이나 지난 뒤, 독일에서 그들의 해후에서는 정말 가슴이 아프고 행복해서 오랜만에 책을 껴안고 많이 울었다. 하지만 박민규 작가님께는 터무니없는 반전으로 나를 아연질색하게 만들고 끝을 낸다. 난 마지막을 인정할 수 없을지라도 그렇게 끝나버렸다.
이 책이 출간된지 17년 만에 양장으로 재출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책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던 것 처럼, 그 시대에도 외모지상주의는 존재했음을 소설속에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돋보이기 위하여 자신보다 키가 작거나 못생기는 사람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들러리 세우는 사람들의 심리도 어쩌면 열등감이 아닐까. 남들에게 보여지는 외면의 아름다움을 내세우기 위한 처절함. 나도 그런 처절한 세상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인간의 심리가 담겨 있었던 박민규 작가님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통해 다시금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위뷰1기 자격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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