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까지 거의 확실해보였던 기술유출의 범인이 로봇청소기 센서의 추적 결과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진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전개다.

"센서를 통해 수집된 자료로 청소구역을 매핑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래서 수집된 자료는 기본적으로 저장이 됩니다."
"....…그놈 기획팀에 남고 싶었나 보더군요. 자기 대신 남은 조유미에게 앙심을 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범행이 드러난 이상 죄인은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한다.
응당한 처벌은 녀석에게 줄수 있는 모든 처벌을 뜻한다. 이제 채동석은 법적 처벌은 물론 회사 기밀을 누설한 죄에대한 징벌까지 받게 될 것이다.
비즈니스를 위해 만난 사이가 아니니 명함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잠시 후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예의도 사라질 테니까.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배려따윈 필요 없다. 당돌한 손가락질에 더해 단숨에 접선책으로 지목된 남자.
꿈틀거리는 그의 얼굴에선 당황, 분노, 의혹, 모멸감 따위의 단어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적 앞에서 저런 표정을 들키다니. 저건 숫제 그냥 고백이다. ‘네 제가 범인 맞아요‘, 뭐 그런 고백 말이다.
조유미는 자신을 아프게 한 원흉을 같이 찾아가자는 내 제안을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리고 아주 버르장머리 없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번 일로 받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잘 떨쳐냈다.
"그 문 열고 나가시면 후회합니다. 다시 앉으세요." 그가 휘익 뒤돌아보았다. "뭐요?" "앉으세요. 그리고 이번 일 제대로 사과하세요." 이 얼굴 한계까지 일그러진다. "마지막 제안입니다. 제대로 사과를 하신다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그리고 승무패는 최소 몇 달은 지나야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를 굳이찾은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당신들이 먼저 유니콘의 여준선을 건드렸다.‘ 그걸 각인시키기 위한 것.
자신이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당했는지는 알게 해줘야 했다. 그래야 이번 전쟁이 이야기가 되고 이쪽 업계에 두루 퍼질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서는 내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쯧쯧....... 그러니까 죄짓고 살면 안 되는 건데."
스타일리스트 속 작업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옷을 털고 스팀을 뿌리고 다리미로 말리며 주름을 펴고.
신제품은 어렵다. 특히나 가전제품은 가격이 비싸기에 호기심만으로 제품을 선택하게 만들기 더욱 어렵다.
"이것도 카피, 저것도 카피.... 회사가 아니라 그냥 복사기였구만." "........아버지 그게." "시끄럽다 이놈아!" 노인의 입에서 노성이 터졌다.
자식을 내칠 마음을 먹었지만 그런다고 이 사태가 잠잠해지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힘들게 산산 조각났던 신뢰의 한조각을 힘겹게 되새겼다.
"시기가 참 적절했어. 날 추워지니까 스타일리스트 매출이 그냥 수직 상승이네." "네. 겨울은 외투의 계절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춥고 건조해지면 섬유에 냄새가 더 잘 스며들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회사의 성장은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상 부족한 인력은 뒤늦게 충원되었기에 갑자기 늘어난 일은 기존의 직원들에게 더해졌다.
모두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수 없이 노력해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서큘레이터의 작동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강력한 일방향 지향성을 가진 선풍기. 높은 지향성은 공기 흐름을 만들어준다. 서큘레이터가 있으면 에어컨의 효율은 크게 올라간다.
강력한 지향성으로 바람을 10미터 이상 보낼 수 있는 서큘레이터는 구석진 곳까지 냉기를 보내줄 수 있다.
"서클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면 좋겠구요. 특히 소음에 신경을 쓰셔야 할 겁니다."
강력한 효율에도 서큘레이터를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선풍기보다 훨씬 큰 소음때문. "풍절음이 구동부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방음에 대해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고장 난 기계에는 빨간색 경고등이 들어온다. 경하나도 그런 걸까? 삐걱거리는 그녀의 양 볼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작게 웃었다.
"제가, 아니,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가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어이없는 상황에 튀어나온 목소리는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사과하라고 했을 때 그랬어야 했습니 다. 늦은 거 알지만 부디 마음만은 알아주십시오." 무릎을 꿇은 그가 땅바닥에 닿을 듯 고개를 조아렸다.
사람 간의 일에 감정이 없을 순 없지만 감정으로 일을 풀 단계는 진작에 지나가버렸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앉으세요." 그가 무거운 몸놀림으로 자리에 앉았다. 팔짱을 끼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소비자가 등을 돌리는 건 기업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이다. 낙인이 새겨진 기업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낙인을 지울 수 없다. 때론 그 발버둥마저 왜곡되어 낙인이 더욱 진해지는 계기가 된다. 보명 전자 불매운동. 지금 보명 전자의 그 이마엔 내 손으로 새겨준 빨간 낙인이 생생하다. 오직 새긴 사람만이 그것을 지울 수 있다는 걸 한덕수가 알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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