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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평점 :
문과 출신 사람(이하 문과인)들에게 과학은 자신과 딱히 관련 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결코 적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과학은 과목자체에 대한 어떤 호기심보다는 단지 그냥 시험에 나오니까 공부해야 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보같은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우주에 갈 일도 없는데 왜 우주를 알아야 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은 도대체 왜 알아야 하며, 각종 물리법칙들은 실생활에서 어떤 쓸모가 있는건가 하는 회의감, 그리고 생물학 용어들은 왜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진짜 과학의 세부분야들에 대한 필요성과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게 과거의 나였다. 이렇듯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 였는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우연히 지난 5월에 《최재천의 곤충사회》 라는 책을 읽고 과학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연관된 책을 찾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다.
일반적으로 과학 관련 책들의 저자는 보통 이과 출신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문과 출신이라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 출신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책이 쓰여졌다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후기 부분을 보면서 저자가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순서로 목차를 정한 것이 그냥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문과인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호기심을 서서히 키워가는 방식으로 목차를 배열했다는 말을 보며 저자가 얼마나 목차에 신경썼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및 개략적인 책에 대한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독자인 내가 느꼈던 내용들 중 핵심적인 것들 위주로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가장 먼저 저자는 과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인문학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자아를 두 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하는데, 하나는 과학에서 말하는 물질로 존재하는 ‘나‘ 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이것을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느냐‘(p.30) 는 문장을 통해 독자인 내가 제대로 이해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추가로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문장 하나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p.32)
어쨌든 이 얘기를 통해 과학적인 시각과 인문학적인 시각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반쪽만 알고 나머지 반쪽은 전혀 모른채 살아왔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통일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이 나오는데 몇 가지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있다.‘(p.32)
이 두 문장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어떤 하나의 물체에서 모든 것이 진화했다는 일원론의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속에 내재된 근원의 물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통해 우주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universe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universal이 ‘보편적인‘ , ‘일반적인‘ 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p.32) 는 말을 하는데, 이는 인문학의 성격이 다소 주관적인 반면 과학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하여 말하는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떤 추론이나 추측보다는 명백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증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설령 인문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이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인문학자이다보니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는다. 저자는 과학이 객관성 측면에서 힘이 센 것은 맞지만,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학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어느 한 쪽이 힘이 쎄더라도 힘이 약한 쪽도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 관계의 모습과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인간의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뇌는 단지 기계일뿐 이 기계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 언급했던 과학에서 말하는 물질적인 ‘나‘ 와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나‘ 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p.39)는 얘기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뒤이어 저자는 물질적 실체에 대한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 에 대한 답으로 ‘나는 뇌다‘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대답을 사실을 기술한 문장이 아닌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p.47)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p.48) 였다고 말한다. 또한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독자인 나는 물질인 뇌와 물질이 아닌 철학적 자아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나온 대답인 ‘나는 뇌다‘ 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 깊이 와닿게 느껴졌다. 얼핏 보면 단순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분이 나온다. 과학자는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만 인문학자는 잘 몰라도 일단 아는 것처럼 둘러댄다는 것이었다(p.68).
이러한 과학자와 인문학자 간의 시각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로 ‘사람은 변한다‘ 라는 말과 함께 ‘전향‘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향이라고 하면 ‘무슨 사상을 전향했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전향'이라는 행동을 인문학과 과학 이렇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인문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자유의지'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현상을 설명하는 것임에 반해 과학에서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특정한 행동이 발생되는 것(p.94)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좀 더 설명하자면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p.96)을 전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인문학의 설명 방식과는 달리 물질의 움직임에 기반하여 설명하였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부분을 통해 독자인 나는 인문학과 과학이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패러다임이 아예 뿌리부터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전향‘ 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과학적 시각과 인문학적 시각을 비교 분석해보면서 둘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 중에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패턴에 영향을 준다‘(p.99) 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 쓰자면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p.99)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단지 과학에서 말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우리의 자아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생각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신경전달물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인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의 과학적 근거를 알고나자 그동안 알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믿음이 좀 더 확고해졌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p.97) 는 말과 함께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p.100)는 말도 덧붙인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자아에 데이터를 공급함으로써 자아가 어리석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애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독자인 나 또한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는 뇌과학 파트를 마무리하면서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자신의 행동이 변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단지 뇌라는 하드웨어가 퇴화된 것이라 여겨달라(p.100) 는 말과 함께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p.101) 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저자의 이 말을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또한 뇌라는 하드웨어의 퇴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일단은 저자의 말처럼 악과 누추함을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p.101)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을 듯하다.
뒤이어지는 생물학 파트에서 저자는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p.123)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앞에 나왔던 뇌와 비슷한 느낌으로 여기는 듯하다. 즉, 뇌과학에서 말하는 뇌와 생물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 둘 다 과학의 관점에서는 단지 물리적 실체일 뿐 어떤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의미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결국 삶의 의미라는 것은 과학에서 찾을 수 없기에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이 효용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이것을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는 말로 멋지게 표현한다. 즉, 인문학이 각 사람의 어떤 철학적인 삶의 의미를 찾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는 보완재 성격으로 인문학을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 부분을 통해 인문학의 쓸모 혹은 유용성에 대해 보다 더 깊이있게 알 수 있었다.
뒤이어지는 내용 중에 저자가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꽤나 눈길을 끄는 내용이었다. 이유인즉, 진보 성향의 저자가 진보적 성격에 가까운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점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본문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능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로 인해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솔직히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이상대로만 현실 사회가 구현되었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없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문학적 지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에 대한 과학적 사실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실패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과학적인 사실(여기서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잠깐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간 본능에 따라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패 사례가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
‘국민 대다수가 ‘태만‘ 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p.143)
위에서 내가 주저리주저리 적어놓은 말들보다 p.143에 나온 이 문장이 훨씬 임팩트 있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뒤이어서 흥미를 느꼈던 사례 중 하나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심사평가원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저자가 과거 참여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서술한 것인데, 이 사례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독자들이 보다 잘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례를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의료서비스 시장에는 수요자인 환자와 공급자인 의사가 있다. 여기서 공급자인 의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결국 의사들의 뇌 또한 다른 사람들의 뇌와 동일하게 생존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나머지, 자신의 병원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지 가벼운 처방만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과잉진료를 하고 공단에 과다한 금액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들의 이기적인 본능으로 인해 과잉청구된 금액을 적정한 금액으로 바로잡고 이외의 추가적인 감시감독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 바로 건강보험공단의 심사평가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감시감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기관이 있음으로 해서 의사들의 과잉진료로 인한 부담금 과잉청구 같은 불합리한 일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생존 본능과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임팩트 있는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 (p.144)
이 문장과 위의 심사평가원 사례를 통해 독자인 나는 본능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어떠한 제도나 기구를 만들 때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 역행하지 않도록 과학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뒤이어지는 화학파트에서는 먼저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저자가 본문에 언급한 화학제품들의 목록들을 보다보면 화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본문에 나온 몇 가지 나열해보면 립스틱, 화장품, 선크림, 미백크림, 살균제, 소독약, 항생제, 일회용기저귀 등을 비롯해 농축산물 생산에 쓰이는 비료, 농약 등 분야를 막론하고 참으로 다양하다. 저자는 ‘현대인의 삶은 화학에서 시작해 화학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167) 라는 말로 화학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많음을 독자들에게 말해준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바로 화학인만큼 단지 문과라는 이유로 화학에 무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화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화학은 생명을 해치는 사악한 마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p.168)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화학 자체보다는 화학을 오남용한 사람들의 잘못이 화학에 대한 오해를 키워왔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화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저자가 탄소에 대한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원인이 탄소라고 지적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 독자인 나는 요즘 전지구적인 기후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탄소 중립을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저자께서 왜 저렇게 탄소를 감싸려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문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 많은 탄소는 다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서 온 게 아니다. 원래 지구에 있었다.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탄소가 풀려나 산소, 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위기가 생겼다. 오로지 인간 탓인 건 아니다. 화산 폭발과 자연발화 산불도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p.187)
‘인간이 집을 데우고 자동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띄울 때마다 거기 들어있던 탄소가 풀려났다.
...(중략)... 숲을 훼손해 도시와 경작지를 만든 탓에 나무가 광합성으로 흡수 고정하는 탄소량이 줄었다.(p.188)
윗 문장들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탄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탄소 자체의 잘못보다는 원래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탄소를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해 우리 인간들이 오남용한 결과가 지금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탄소에 대한 오해는 마치 살인범이 칼을 비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p.188)는 비유를 들며 탄소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에 대한 제대로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읽다가 눈에 띈 개념 중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환원還元(reduction)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것으로 쪼개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대상을 이런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을 ‘환원주의‘ 라고 하는데, 여기 나오는 화학 뿐만 아니라 과학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환원주의에 기반하여 연구를 한다고 하니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자는 이러한 환원주의에 입각하여 문과인 독자들이 그래도 비교적 이해하기 용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소금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를 통해 원소와 원자, 분자, 전자 등 기초화학에 나오는 개념들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원소들을 원자번호와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주기율표를 읽는 방법이라든지 화학에 나오는 각종 결합 방법 등 기초적인 개념들을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과학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나같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주기율표의 경우 본문의 내용을 통해 각각의 원소, 원자들의 특성이 마치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같은 걸 보면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16가지로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과 비슷하게 주기율표에서도 각각의 원소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에 따라 원소가 위치하는 자리가 달라지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뒤이어 나온 내용 중에서 저자가 탄소의 화학적 성질을 정치학 언어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한 예로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p.188)라는 문장과 함께 탄소의 성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런 식으로 과학을 배우면 '문과출신들도 과학을 조금이나마 덜 낯설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복잡한 수식이나 산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의미로 딱 와닿는 게 좋았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마도 저자가 과거에 정치에 몸담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어지는 물리학 파트는 개인적으로 가장 읽기가 어려웠던 부분이다. 불확정성 원리를 비롯해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나마 물리학 파트에서 독자인 내가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생각한 내용인 원자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겠다. 먼저 원자의 상대적인 위치에 대해 이해하기 좋은 문장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물의 몸은 세포의 집합이다. 세포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원자의 결합이다.‘(p.228)
이 문장을 좀 더 쉽게 풀어보자면 먼저 생물을 인간이라고 봤을 때, ‘인간의 몸은 세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세포들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그 분자 하나하나는 원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져있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저자는 그렇다면 ‘우리 몸의 원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p.228) 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환원주의(큰 것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분석하는 과학의 연구 방법)와도 일맥상통하는 질문이었다.
본문에서 저자는 문과적 감성을 덧입혀 위의 질문을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p.228)라는 좀 더 직관적인 말로 변환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는데 이 질문에 물리학은 ‘별에서 왔지‘(p.228)라는 말로 대답한다.
아니 갑자기 난데없이 ‘별에서 왔다‘니... 독자인 나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뒷 부분에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별에서 왔다‘ 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론만 보면 원자 제조법은 간단하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좁은 공간에 집어넣고 전자를 양성자 수만큼 오비탈에 뿌리면 된다. 양성자와 전자의 수가 같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달리 고려할 게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간단하지 않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가까워지면 서로 강하게 당기거나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핵에 욱여넣으려면 엄청나게 높은 온도에서 엄청나게 강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 지구에는 그런 일을 할 만큼 온도가 높은 곳이 없고 그 정도로 강한 압력을 만들 방법도 없다. 그러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지구 밖에서 왔다.‘(p.228)
위에 나온 말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지구에는 원자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온도와 압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지구 밖, 즉 별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어서 별에 대한 얘기를 읽던 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별의 이름은 인간의 시선을 반영한다. 신성新星(nova)은 갑자기 밝아진 별이고 그중에도 유난히 밝아진 별이 초신성超新星(supernova)이다. 초신성은 하루 사이에 몇 만배 밝아지기도 한다. 육안으로 우주를 관측하던 시대에 그 별이 새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p.231)
여기서 독자인 나는 특별히 초신성超新星이라는 뜻을 가진 supernova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 단어는 인기 아이돌 그룹인 에스파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 독자인 나는 이 노래 후렴부분의 멜로디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문득 노래의 구체적인 가사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가사 중에 ‘우린 어디서 왔나‘ , ‘불러낸 내 우주를 봐봐‘ , ‘내 모든 세포 별로부터 만들어져‘ 등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 가사들 중 특별히 ‘내 모든 세포 별로부터 만들어져‘ 라는 가사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던 '별에서 왔지'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좀 놀랐다. 아이돌 노래의 가사들이 그냥 아무런 근거없이 쓰여지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노래를 작사하신 분도 우주에 존재하는 별에 대한 배경지식들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기에 이러한 가사들을 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사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책에서 읽어봤던 내용들을 실생활에 나오는 것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우주나 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좀 더 샘솟는 듯하다.
다음은 수학 파트인데, 가장 먼저 독자인 나는 수학 파트를 읽기 전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것은 ‘책 제목이 엄연히《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인데 왜 수학에 대한 얘기를 책에서 다루지?‘ 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본문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풀릴 수 있었다.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과학자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선호한다.‘(p.262)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왜 수학 파트가 과학을 주로 다루는 이 책에 함께 수록되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수학은 이 책의 앞선 파트에서 다뤘던 물리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저자가 책의 순서를 물리학 바로 다음에 수학으로 배치한 것도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저자는 수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직전 파트였던 물리학의 물리적 실재(reality)에 대해 간략히 정리한 후에 이어서 수학적 실재 및 수학의 정리(theorem)에 대해 말한다. 본문에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계절이 돌고 화산이 터지고 땅이 갈라지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물리 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물리학은 그런 물리적 실재實在(reality)를 설명한다.‘ (p.261)
‘수학도 물리학처럼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수학적 실재를 서술하는 학문이라면 수학의 정리定理(theorem)는 수학적 실재에 대한 관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p.261)
독자인 내가 위의 두 문장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키워드 2개는 바로 ‘인간‘ 과 ‘무관하게‘ 였다. 물론 두 번째 문장에서는 의식이라는 말이 생략되었지만 문맥상의 의미로 봤을 때 물리학과 수학 모두 인간의 의식과는 무관하며 단지 그 실재實在(reality), 즉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만을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리뷰의 앞부분에 썼던 내용 중에 인간의 의식을 나타내는 철학적인 자아에 대한 설명은 인문학의 영역이지만, 인간의 의식이 아닌 존재하는 실재에 대한 설명은 과학의 영역이라고 했던 말이 있었는데 물리학과 수학도 결국에는 이러한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과학을 공부하는 데 수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과학과 수학은 용어가 다르기에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본문을 읽다보면 과학자와 수학자의 차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먼저 과학자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주로 선호하지만, 수학자는 과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물리 세계와는 관계없이 그저 수학 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며(p.262) 수학을 기호와 논리로 하는 지적 유희로 삼는다(p.261)고 한다.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수학이 ‘순수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반해 과학은 순수한 것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지는 내용을 읽다가 독자인 나는 수학이 새로운 언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수학자는 논문을 쓸 때 인간의 언어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수학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p.262)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 는 소위 문자로 이루어져있는 한글 혹은 알파벳 등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문자로 이루어진 언어‘ 정도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의에 근거해서 생각해본다면 독자인 내 생각에 수학은 ‘기호로 이루어져있는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기호들을 생각나는대로 떠올려보면, 집합, 함수, 삼각함수, 지수, 로그, 행렬, 시그마, 극한, 적분, 순열과 조합 등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호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수학자들은 수학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기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각종 원리들을 증명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 기호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언어‘와는 다르다보니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수학이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소위 말하는 ‘수학을 포기한 자들‘ 이라는 뜻의 ‘수포자‘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것도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호와 수식이 가득한 언어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다음에 나오는 내용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수학의 매력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 데 여기서 몇 문장을 간단히 소개해보겠다.
‘인간은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원한 그 무엇을 추구한다.‘(p.269)
‘수학의 성과는 다른 무엇보다 오래간다. 문명과 언어와 권력은 사멸해도 수학의 아이디어는 불멸한다.‘(p.269)
‘수학은 한 번 진리로 판명되기만 하면 영원히 진리로 남는다. 이것이 수학의 매력이다.‘(p.270)
‘수학자는 산을 오르거나 사막을 헤매거나 지하동굴을 탐험하지 않는다.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만으로 영원불멸의 진리를 선포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p.270)
위에 나온 문장들을 통해 독자인 나는 수학이 가진 매력이라는 것이 결국 ‘영원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대리만족 시켜줄 수 있는 도구로써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좋게 남기고 싶어하는 일종의 ‘명예욕‘ 있는데, 어떤 수학적인 진리를 입증하게 될 경우 앞서 언급한 ‘영원성‘과 ‘명예욕‘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기에 수학의 매력이 그만큼 커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수학자는 어떤 육체적인 수고보다는 단지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는 행위만으로도 ‘영원성‘과 ‘명예욕‘을 추구할 수 있기에 육체적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도 반反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매력이 있는 수학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수학적인 재능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수학이라는 것이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저자는 수학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과 함께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수학자의 삶을 너무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본문을 읽다보면 유명한 수학자들 중에 평범하게 살다간 사람보다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정신병에 걸려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걸 보다보면 어느 한 쪽에 재능이 극도로 쏠려있는 경우 나머지 영역에 있어서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도 독자들에게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듯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이 다르므로 남 부러워할 것 없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행복하면 된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이어서 후기 부분에 나온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과학자는 현상을 관찰하는데서 출발해 실험과 분석과 추론으로 대상의 실체에 다가선다. 그렇지만 연구결과를 이야기할 때는 반대로 한다. 자신이 알아낸 대상의 본질을 먼저 밝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인지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p.290)
윗 문장을 독자인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풀어보자면 과학 연구를 할 때는 어떤 ‘현상‘을 보고 ‘본질‘을 탐구한다면,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할 때(이것을 ‘과학의 스토리텔링‘이라 지칭함)는 탐구한 ‘본질‘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한 뒤 거기에 살을 붙여서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는 말이다.
문맥상 여기서 좀 더 중요한 것은 연구된 결과를 이야기하는 ‘과학의 스토리텔링‘이었는데, 저자는 본문에서 소개했던 소금물 이야기(소금물이 결합되고 용해되는 과정을 서술한 것)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이는 원자로 대변되는 ‘본질‘에서 출발해 다른 각종 물질들이 결합했다가 다시 그 결합이 해체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식의 패턴이다. 독자인 나는 이 사례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과학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추후에 다른 과학 관련 책을 읽을 때도 이런 '과학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중간중간 복잡하고 난해한 부분들이 있었기에 완독하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저자의 설명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노력하면서 이렇게 리뷰까지 쓰고나니 확실히 과학에 대한 앎의 깊이가 조금이나마 깊어졌음을 실감한다.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과학 분야를 조금이나마 친숙한 분야로 바꿔주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게 도와준 저자께 감사드린다. 이 책을 계기로 하여 과학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관련 분야의 독서도 병행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특별히 저자가 본문 하단에 주석으로 달아놓은 책들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읽어보면 여러 모로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