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4 page에 걸쳐 저자가 우리 사회에 세 가지 세대가 있다고 논하는 부분이 있는데 공감이 많이 되었다.

문화란 흐르는 물이고, 향수와 같은 것, 알게 모르게 젖어 있어 자신은 모르지만 타인은 그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문화는 하나의 뿌리에서 성장한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하다. 이것을 제대로 알고 인정할 때 올바른 우리를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것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서로의 동질성을 공감할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P75
우리가 즐겨 먹는 전통 음식 청국장이 사실은 청나라의 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로 동북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이 청국장은 때로는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때로는 명주실처럼 가는 흰줄이 쩍쩍 늘어붙는 청국장을 맹물에 풀어먹기도 한다. 일본인들 역시 이 청국장에 와사비와 양념을 섞어 날것으로 먹는데, 작은 것을 좋아하는 그들인지라 콩알조차 자그마한 것들로 청국장을 만들어 먹는다. "일본사람들도 우리 전통 음식을 좋아한다."고 으쓱해 하다가는 머쓱해지기 십상이다. - P76
나는 한국사회의 발전, 아니 한국이라는 문화의 테두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권과 삶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인간적 권리가 질식되고 있는 이유를 유교에서 찾아냈다. - P85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검은 곰팡이처럼 자라고 있는 유교의 해악을 올바로 찾아내고 솎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때문에 나는 이 글에서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잘못된 단초들, 말하자면 우리의 본래적인 삶이 영위해야할 아름다움을 끝내는 망가뜨려 버리고야 마는 우리 문화 속의 독소와 같은 요소들을 가능한 한 많이 꺼내 펼쳐보이고자 한다. - P85
문화란 카멜레온보다도 민감하게 주변에 반응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의 집합체다. 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이 새로운 외부 환경에 적합하도록 유연하고 탄력 있게 변해갈 때 그 문화는 더 건강해지고 매력적인 것이 되어 주변으로 쉽게 확산된다. - P91
우리 사회에는 세 가지 세대가 있다. 하나는 유교 문화의 마지막 진수를 맛본 사람들이다. 이제 천수를 다해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여전히유교의 마지막 그림자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권위와 복종을 인간사회의 마지막 이데올로기로 착각하고 있는 유교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명령에 익숙하며 토론에 약하다. 입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고, 눈꼬리는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나 심각하다. 이들에겐 공자가 절대 수호신이다. 이들은 붓으로 글씨를 배웠다. - P92
다른 하나는 유교 사회의 폐해를 심각하게 입은 세대들이다. 6·25를 전후해서 태어난 이들 세대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유교 교육만이 교육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세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동시에 6·25 이후, 태평양을 건너온 초콜릿, 옥수수빵, 우유 가루 등의 구호품을 먹으며 자라야 했다. 해서 이들 세대의 옆구리에는 언제나 두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한문책과 영어책이었다. 이들은 영어책을 한문책처럼 읽었고,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에만 몰두했다. 영어가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 결과 단어들의 깊은(?) 뜻은 알지만 말은 못하는 쪼다들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글에는 강하지만 기계에는 젬병이다. 그 결과 컴퓨터와 영어가 인간 가치의 척도가 된 오늘날 길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이젠 재교육의 기회도 시간도 없다. 그러나 남은 인생은 길다. 이들은 공자와 유교가 자신을 얼마나 망쳐놓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도 은밀한 음모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필을 깎아 글씨를 썼다. - P93
마지막은 잘 나가는 요즘 세대들이다. 나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지만 해마다 늘 19세의 신입생들을 맞는다. 그들을 통해 나는 세대를 이해하고 나를 점검한다. 이들에게는 한문책도 영어책도 없다. 그들의 옆구리에는 만화책이 있다. 그들은 강의 시간에도 모자를 쓴다. 책가방에서는 시도 때도없이 핸드폰이 운다. 그들은 칠판 글씨를 싫어하며 설명을 싫어한다. 15초 꼴로 한 번씩 웃겨주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는 폐강을 각오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성별이 없다. 이놈 저녁 끌어안고 밀치며 장난에 빠져든다. 이들은 컴퓨터에 익숙하다. 그들은 빠른 컴퓨터 커서에 익숙하다. 책을 읽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컴퓨터로쳐낼 수 있다. 이들은 글씨를 거의 쓰지 않는다. 때로 샤프로 글씨를 쓰긴 하지만 주로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긴다. 이 세대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과 삶의 형태로포맷된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세대들이다. 이들은 어느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으며 어떤 폭풍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소한 자유의 한 조각일지라도 그것을 위해 목숨을 버릴 만큼 자유론자들이다. 이들은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남녀 교제에 있어서도 기존의 굴레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학 간판에도 크게 마음 두지 않는다. 두세 개의 외국어에 능통하며 장롱 대신 멋진 배낭을 사놓을 세대들이다. 개인적 삶의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바로 네오리버럴리즘의 시대로 돌진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공자를 모른다. 그들에겐 이미 공자는 죽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에도 낯설다. 이것은 큰일이다. - P94
이들 세 세대가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누구에게 기준을 맞추어야 할까? 우리들의 삶의 공간이 좀더 따뜻해지기 위해서 우리는어떤 문화적 타협과 가치의 빅딜을 해야 할까? 해답은 공자의 몇마디로 재구성된 허구의 세계인 유교, 그리고 그 픽션의 허구를 따라가며 허공에 지어놓은 유교 문화에 대한 반성적 해체에서 얻어질 수 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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