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 즉 저자의 할머니를 전쟁 통에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었고, 이로 인해 저자의 아버지가 술로 슬픔을 달랜다는 얘기도 간략하게 나마 나왔었다.

저자의 가정사가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저자의 할머니가 동유럽 국가인 크로아티아 내전 때 돌아가셨다는 것은 이번 독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동유럽 국가들 간의 내전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는 다른 국가나 대륙들에 비해 동유럽 쪽 역사에 내가 무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동유럽 쪽 국가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뭐 아직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를 살펴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6.25와 비슷한 전쟁이 당시의 크로아티아에서도 있었던 것 같다. 관련된 내용들을 검색해보면 더 자세한 내용들을 알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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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어어 읽다가 저자의 누나, 삼촌에 관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가족 이야기와는 별개로 중간중간에 동유럽 쪽 관련 지명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동유럽 쪽에는 배경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인지라 이렇게 새롭게 접하는 지명들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서 관련 사진들을 구경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기도 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동유럽 여행을 직접 가봐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기존에 익숙한 서유럽이나 북미 쪽에 비해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것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러한 것들은 이 책을 통해 얻어갈 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었는데 속된 말로 얻어걸린(?) 느낌이다. 비록 우연이기는 하나 이런 식으로 잘 몰랐던 세상을 간접 경험하는 것도 독서의 묘미라면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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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쭉 읽어 나가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저자가 자신이 살던 동네에 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자기 공을 빼앗는 아이에게 돈을 주겠다고 내기를 걸고 공놀이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얼핏보면 그냥 가벼운 놀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자 본인이 공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기 위한 훈련의 연장선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하여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그것을 놀이로 승화시켜 즐기려고 하는 저자의 태도는 가히 본받을만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힘든 일일지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한다면 실력은 실력대로 늘면서 동시에 그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보스니아의 비옐리나Bijelina 지방 출신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벽돌공으로 일했고, 가족과 친지들도 모두 그 지방에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비옐리나 지방은 유린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다시 무슬림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세르비아인들은 도시에 쳐들어가 수백 명의 무슬림을 살육했다. 아버지가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이 그때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 가족과 친지들은 고향을 두고 떠나야만 했다. 비엘리나는 완전히 세르비아인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비옐리나로 넘어와 빈집들을 차지하고 살았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버지 집에 쳐들어와 주인이 된 것이다. - P50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도 이해가 간다. 아버지는 저녁 내내 텔레비전 앞에서 고향 소식이 들려오거나 고향에서 전화가 걸려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전쟁은 아버지를 집어삼켜 버렸고, 아버지는 내전의 추이를 지켜보는 데 집착했다. 아버지는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서 술을 마시며 비통해했고, 유고슬라비아 노래를 들었다. 그런 날 나는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 집은 또 다른 세계였다. - P51

나는 이소룡처럼, 또 무하마드 알리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 - P52

크라구예바츠Kragujevac 시의 라드니치키 Radnicki 복싱 클럽 ...(중략)... 네레트바Neretva 강 - P53

스웨덴의 영웅, 이를테면 전설적인 스키 선수 잉게마르 스텐마르크Ingemar Stenmark 같은 선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 P53

하지만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는 전설적인 선수였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지껄이든 알리는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다. 그는 절대 변명하는 법이 없었고, 그 모습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진짜 멋진 남자였다. 나도 알리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최고다‘고 자부하는 알리의 당당한 태도를 흉내 냈다. - P53

로센고드에서는 만만하게 보이면 살기가 어려웠다. 어떤 녀석이 헛소리를 지껄이면 ㅡ 가장 심한 욕은 계집애 같은 놈이라고 놀림 받는 것인데 ㅡ 맞받아쳐야 한다. - P53

제 발등을 찍지 말라는 말 - P54

매년 11월 30일이면 ‘위대한 전사‘로 추앙받는 스웨덴 왕 칼 12세 Charles XII의 죽음을 기념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모여 행진을 하는데, - P54

로센고드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으르렁거리며 살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늘 세상에 각을 세우고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 P54

내가 억누를수록 그 기억은 더욱 나를 괴롭혔다. - P54

아버지들의 세계에서 사는 남자라면,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사나이처럼 당당히 맞서야 한다. 그 세계에서는 이른바 신세대 남성들의 유약함은 통하지 않는다. 배가 아플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지만, 그딴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P56

나는 어릴 때도 양면적인 데가 있었다. - P59

나는 규율이 잡혀 있지만, 사나운 야성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나름대로 정립한 내 신조가 있다. 말과 행동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까짓 게 뭐야. 나야말로 대단한 놈이야" 하고 말만 뱉으면 곤란하다. 당연히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 P59

나는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었고, 또 그에 걸맞게 우쭐대며 살고 싶었다. - P59

발칸반도 출신 사람들은 한 번 뒤틀리면 아무도 못 말린다. - P60

돌에 새긴 계명을 바꿀 수 없듯이 우리가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 P61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 P62

들장미를 뜻하는 퇴른로센Törnrosen - P62

나는 멋진 트릭 플레이로 아이들을 놀래주고 싶었고, 그러려면 그 동작이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해야 했다. - P63

두뇌 회전과 발이 빨라야 인정을 받았다. - P63

키가 작고 몸집이 빈약한 나는 쉽게 태클로 저지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아이들의 탄성 소리를 듣지도 못할 것이고, 나를 시합에 끼워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 P63

나는 축구공을 껴안고 잠드는 날이 많았고, 잠자리에 누워 이튿날 보여줄 묘기를 궁리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 보듯 반복해서 그 동작을 머릿속에서 그렸다. - P63

어머니 동네 축구장이 워낙 비좁아 나는 자연스레 좁은 공간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움직임을 익힐 수 있었다. - P67

"즐라탄을 보자마자 뭐가 돼도 될 줄 알았다" "그가 아는 것은 모두 실질적으로 내가 가르쳤다" "즐라탄은 최고의 동료였다" 어쩌고저쩌고하며 떠벌이는 사람들은 넌더리가 난다. 죄다 헛소리다. 나를 알아봐준 사람은 없었다. - P67

이랬느니 저랬느니 나중에 말들이 많았지만 그런 말들은 사실이 아니다. 빅클럽에서 나를 찾아와 우리 집 문을 두드린 적도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허세 가득한 아이일 뿐이었다. "타고난 소질이 있는 놈이니 지금부터 잘 보이자"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보다는 ‘누가 이 촌놈을 받아준거야?‘ 하는 분위기였다. - P67

나는 약자인 만큼 이를 악물고 연습하고 분투했다. 이미 말했지만,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P68

살려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나는 내 처지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P68

친구들이나 나나 앞뒤 분간 못하고 놀았고, 그저 센 놈이 되기만을 바랐다. - P68

나는 그 시절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나 같은 놈이 존중을 받으려면 다른 애들보다 다섯 배는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열 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력도 없는데 나같은 놈에게 기회라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 P71

코치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치들의 말을 듣고 부분 전술과 전략 등필요한 축구 기술을 모두 배워야 한다. 하지만 코치들의 말을 무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드리블을 계속하고 발재간을 부리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코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무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내 신조였다. - P74

대개는 내 방식대로 행동했다. 그것이 내 무기였다고 할 수 있다. 나처럼 허름한 공동주택 단지에 사는 녀석들이 도련님 흉내를 내는 걸 지켜봤지만, 게네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도련님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정반대로 행동하기로 작정했다. 내 방식을 더 세게 밀고 나가기로 한 것이다. "20크로나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는 대신에 "땡전 한 푼 없어"라고 대답했다. 그러는 편이 훨씬 멋져 보였다. 덕분에 갈수록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 P75

나는 로센고드 출신의 불량아였고,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그게 나였고 나도 차츰 나다움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모범적 태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다. - P75

나는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 P77

‘남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다‘도 내 신조였지만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또한 내 신조였다. - P77

나는 공을 받을 때 가능한 한 단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했다. - P78

컴퓨터를 쓰고부터는 호나우두와 호마리우가 하는 속임동작이나 발재간이 담긴 영상을 족족 내려받은 뒤 그 기술이 몸에 밸 때까지 연습했다. 우리는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 보며 동작을 확인했다.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저런 동작을 할 수 있지? - P78

우리는 그런 동작이 몸에 익을 때까지 연습을 거듭했고, 됐다 싶으면 실전에서 써먹기도 했다. 토니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갔다. 나는 동작을 더 세분해 더욱 정교하게 기술을 재현했다. 사실 나는 미친 듯이 거기에만 매달렸다. - P78

나는 남다른 선수가 되고 싶었다. 나는 코치들의 가르침도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날이 갈수록 실력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마음 상하는 일도 많았다. 우리집 문제도 분명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구단에서 겪는 문제 말고도 내게는 골치 아픈 문제가 많았다. - P79

재미도 재미지만 뭔가 강력하게 나를 내세울 거리가 필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 같은 놈은 애들에게 주목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 P84

남들보다 센 척하고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게 어린 맘에는 멋져 보였지만, 그런 태도는 장기적으로 보면 득 될 게 없었다. 정말 중요한 자리에는 틈만 나면 브라질 선수처럼 개인기를 부리는 다혈질 악동이나 이민자 출신을 원하지 않았다. - P87

나는 잃을 게 없었다. 그래서 내 실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갔고, 당연히 사람들은 나에 대해 쑥덕거렸다. "저 녀석은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멋대로 지껄여라!"라고 중얼거리면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나는 계속해서 발재간을 부렸고, 선배들을 거칠게 밀어붙였다. - P89

나는 멋진 선수가 되는 꿈을 꾸며 훈련장에서 춤을 추듯 공을 갖고 놀았다. - P89

내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보여줄 것이 더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했다. 나 같은 애들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타 선수가 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나는 끝났다. 내 기대는 틀려먹은 것이었다. 다른 길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거기에 뛰어들 기운이 없었다. 하릴없이 축구를 계속할 뿐이었다. - P90

"즐라탄, 이제 애들하고는 그만 뛰어야지." - P91

"이젠 어른들하고 뛸 때가 되었다." - P91

공중으로 10미터는 붕 떠오른 기분이었다. - P91

조깅 시간에는 이따금 해찰했지만, 말뫼 구단 트레이닝 세션에는 단순히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 동네에 있는 축구장에 가서 하루에도 몇 시간이고 기술 훈련을 했다. - P94

내가 즐겨 쓰는 수법이 하나 있었다. 로센고드 동네로 가서 아이들에게 "나한테서 공을 빼앗는 놈 있으면 지폐 한 장 줄게" 하고 외치는 것이다. 겉모습은 놀이였지만 내게는 기술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다. 공을 지키기 위해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터득할 수 있었다. - P94

동네 애들을 데리고 노닥거리지 않을 때는 축구 비디오게임을 하곤했다. 한 번 앉으면 10시간까지 게임에 몰두한 적도 있었고, 게임을 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내 실제 경기에서 써먹는 일도 많았다. 거의 온종일 축구를 하며 지낸 셈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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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2-17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라탄이란 축구 선수를 잘 몰랐습니다.
어쩌다 가끔씩 동영상 속의 그의 모습 속에서 어렴풋이 이소룡의 흔적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역시 이소룡과 알리가 되는 꿈을 꾸었었군요..ㅎㅎ
소년들의 로망은 세계 공통이었네요..ㅎㅎ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2-17 17:23   좋아요 1 | URL
예 저도 저자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자세한 사항들은 미처 몰랐었는데, 다른 책들이랑 번갈아 읽느라 초반부만 살짝 읽어봤는데도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자가 어릴 때 자라온 가정 환경과 주변 환경들이 결코 순탄치 않았기에 이소룡이나 알리같이 강하고 멋진 사람이 되기를 꿈꿨던게 아닐까 짐작해봅니다..ㅎㅎ 그리고 말씀 주신바와 같이 저자가 축구하는 스타일을 보면 이소룡의 발차기가 연상되는 듯한 모습들이 종종 나오곤 하는데 어릴적 꾸었던 꿈을 현실에서 바람직한 방법으로 실현시킨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국적은 다를지 몰라도 동양이든 서양이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어느정도는 비슷한 로망들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