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소피의 비염이한 방에 나을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위중한 병일 때는 기적적으로 깨끗이 치료될 민간요법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그나마 효과가 있는 것들을 복합적으로, 최선을 다해 면역을 키우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생명에 지장을 주지않는 가벼운 질환들도 이러한 현상이 있을 수 있었다. 소피의 경우가 그랬다.
"일단 식염수로 코 세척하는 법 아세요?" 내가 묻자 소피는 질색을 했다. "해본 적은 없지만, 본 적은 있어요." "요즘은 아이튜브 같은 데 찾아봐도 바로 나오죠? 가능하시면 따라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건...... 고민 좀 해볼게요." "비염 개선을 위해서는 하셔야 될 겁니다."
"유산균 따로 챙겨드세요?" "유산균이요? 아니요?" "프로바이오틱스가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을 개선하는 데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꼭 비염 때문이 아니 어도 도움이 되니 챙겨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네, 그거야 어렵지 않죠."
"그리고 스피루리나도 도움이 될 거에요." 소피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래요? 전혀 몰랐어요." "스피루리나 역시 유산균처럼 다방면에서 몸에 도움이 되니 드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녹차도 좋고요." 나는 벽과 테이블 등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청결하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너무 건조해도, 습해도 안좋아요. 본인의 관리도 중요하지만, 환경적으로도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오랜만에 건강상담을 하고나니 기분이 묘했다. 내 능력은 관여한 모든 제품들에도 영향을 미쳤고, 궁극적인 목표에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큰 차이가 느껴졌다. 역시 직접 고민을 가진 사람과 마주앉아 상담을 통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무조건 내 편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거라." "예?" "나는 말이다, 네가 좋은 일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긴하다. 그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게 하기를 바라." "예, 물론이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거기에만 매달려 있을 필요도 없어." "네......?"
"쫓기듯이 하지 말거라. 네가 원치 않아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순간이 올 게야. 그러다 또 한가해지고. 원래 인생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 그러니 뭐가 오든 간에 묵묵히 받아들이고, 거기에 휩쓸리지 말거라."
"정한 대로만 해.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스스로를 못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없단다."
사후세계는 결코 편하고 아름답기만 한 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력을 쌓아서 후손들을 지켜보고, 위할 수 있고, 남들에게 베풀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 공력이라 함은 결국 선하게 살아가는 것.
언제나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언행이든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완벽한 것을 판매하더라도 유입 자체가 없으면 망하는 법.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생각하면 마이너스였지만,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일 거라고 확신했다.
"나참, 김밥 1줄로 되게 답답하게 구네" "죄송합니ㅡ‘ 그때 내가 노우민의 말허리를 자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죄송하다고 하지 마. 죄송한 거 없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이거 고작김밥 1줄 더 못 주겠다는 거예요?" "손님께 그냥 드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그거 5달러 덜 번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손님에게 1줄 더 드리지 않는 건 다른 손님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참...... 고작 김밥 1줄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그래요?" "고작이 아닙니다. 생계와 꿈이 걸린 겁니다."
"됐어요, 그럼. 안 먹어요." 그녀는 그대로 구시렁거리며 몸을 돌렸다. "사람이 장사를 하려면 융통성이 있어야지, 저래서야 원...." 놓고 간 김밥은 1줄뿐이었다. 노우민은 멀어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러면서 가져갈 건 또 가져가네요." "그러게 말이다."
"참....... 별의별 사람이 다있네요" "잊었냐?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것들을 생각해 봐라. 저런 사람은 약과지. 화낼 필요도 없어. 사과할 필요도 없고. 그냥 단호하게 굴어. 저자세로 나가지 마. 손님이 왕이라는 건, 손님답게 굴 때다." "네, 알겠습니다."
"세상에 별의별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데, 예전에는 나도 그런 사람들 생각만 해도 참 화가 많이 나고 그랬거든? 어떻게든 엿을 먹이고 싶기도 했고." 노우민이 조금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냥 가엾게 생각해. 이까짓 일로 화를 내고 저렇게 받아들이지를 못하잖아.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하겠냐? 뭐만 해도 화가 날 텐데. 그러니까 그냥 가엾게 생각해라."
평소에 혼자 있는 것은 지금까지 없던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하겠지만, 인간인지라 결국 외로운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람은 주기적으로 대화와 감정을 나눌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 몸의 건강만 건강이 아니다. 정신과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아파지고, 마음의 병이 몸의 병도 불러일으키는 법.
연애가 꼭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란 법은 없었다.
남자가 쓰러진 원인은 음식물이 걸린 것이었다. 이럴 때 최고의 대처법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임리히법. 나는 남자의 뒤로 돌아가 복부를 감쌌다. 그리고 강하게 아래서 위로 올려주듯 확 당겼다.
"앞으로는 꼭꼭 씹어 드세요. 급하게 드시면 목에 걸릴 위험도 있지만, 속에도 안 좋으니까요."
나는 아직까지도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종교도 부정하지 않는다. 사후세계를 알게 됐으니 어찌 부정하겠는가. 종교들은 결국 같은 가르침을 전한다. 나는 ‘깨닫고, 선하게 살며, 사랑으로 가득한 것‘이 본질이라고 여긴다.
"예수님은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고, 신자와 함께하시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교회아니겠습니까! 자신 스스로가 교회가 되고,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니겠어요?"
"저는 그래도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게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교회에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기간 신념을 가지고 믿어온 게 있을 터. 조금 전에 처음 본 내가 뭐라고 떠든다고 바꿀 수 있는게 아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누군가로 인해 바뀌던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더군다나 종교의 영역은 함부로 입을 놀릴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더 조심스레 말하긴했지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교인이면 교회에 나가야 하는 건맞지만, 불가피하게 그래야 할때가 있을 수도 있고요. 성경의 말씀대로 살고, 진짜 믿음이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잖습니까,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요." "하하, 맞습니다. 그러셨죠."
"원래 말이라는 게 꼬리에 꼬리를 물잖습니까."
"넌 왜 그렇게 쳐다보냐?" "대표님." "엉?" "교회 다니세요?" "넌 나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그걸 이제 와서 물어? 나 교회 가는 거 본 적 있냐?" "없죠." "그런데 뭘 물어봐. 그리고 정치나 종교 얘기는 하는 거 아니야."
"아시다시피 미국은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병원에 가는게 좀 많이 부담되거든요. 바로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곳들은 진짜 질이 낮은 편이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당연히 해드려야죠.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해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남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인가요?" "네, 정말로요."
"감사합니다. 미국은 진짜 의료 수준이 굉장히 높기는 한데, 솔직히 보통 사람들은 진료 보는 게 무서울 정도거든요. 진짜 그냥 감기 걸려도 타이레놀, 배가 아파도 타이레놀, 암이 걸려도 타이레놀이에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능하면 단박에 끊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그래야 끊을수 있어요. 줄여가면서 끊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한 번에 끊으시는 경우가 많죠. 특정한 계기를 겪으면서 굳은 결심을 하곤 하는데요." 대부분 금연의 사유는 공포다. 아픔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대부분 본인이 건강에 이상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이 아픈 걸 보고 그러죠." "그런...... 가요." "예. 지금까지 주변에서 끊으라고 해도 못 끊으셨잖아요. 그쵸?" "그렇긴 하죠." "이번 기회에 끊으세요. 어쨌든 본인의 선택으로 비싼 돈까지 쓰면서 피운다는 건 기분 좋으려고 피우는 거잖아요? 그렇죠? 스트레스도 풀고, 습관도 됐고."
"그렇게 돈 주고 걱정하면서 피울 가치가 있을까요?"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끊기 어렵고...... 안 피우면 집중도 잘 안 되고......." "그것도 금방 적응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담배 피우신거 아니잖아요? 그전에도 할 거 다 했잖아요. 그렇게 겁내면서 태우실 거면 끊으세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담배가 폐에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신체 전체에 부담을 줍니다. 그러니까 담배는 꼭 끊으셔야 합니다. 지금 목이 아픈 것도 위산이 역류하면서 생기는 증상이고, 그에 따라 가슴도 답답한 느낌이 들고 그러는 거예요."
"물 충분히 드셔주세요. 한번에 많이 마시는 게 아니라, 적당히 자주 마시는 게 좋습니다. 당분간은 식사 30분 전과식사 30분 후에는 물을 조금 자제해 주시고요. 매운 음식, 짠 음식, 튀긴 음식도 자제하세요."
"과식도 자제하시고요. 그렇다고 너무 안 드셔도 문제가 됩니다. 금식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거든요. 오늘 하루는 가장 베스트가 따뜻한 차만 좀 드시다가 이른 저녁에 미음이나 흰죽 같은 것만 조금 드시면 제일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에 가장 좋은 것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위 건강에 정말 좋고, 그 외에도 효과가 많으니꼭 챙겨드셔야 할 식품입니다."
"네, 생 양배추 있죠? 양배추만 잘 챙겨 드셔도 속이 금방 편해집니다. 생강도 좋은편이고요. 다른여기서 흔한 다른 것 중에서는 레몬밤 정도가 있겠네요. 그래도 저는 양배추를 가장 추천하는 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국이었으면 양배추즙으로 챙겨서 드셔도 괜찮은데"
"역류성 식도염도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당장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어도 만성이 되면 삶의 질이 상당히 떨어져요. 다른 질환들을 유발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관리하세요. 담배 꼭 끊으시고요."
건강상담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가능하면 이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도 대표님 본받아서 꼭 어려운 사람들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너부터 챙겨라. 네 가족들부터 챙기고. 그래도 여유가 되면 도와. 그걸 무슨 의무처럼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할 수 있으면 해. 나도 그랬고."
"그리고 건강상담을 하실때,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냥 손님이라서, 친절하게 대하자는 마음으로는 그런 표정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요. 정말 즐거워하시는 게 보이거든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본인들도 알고 있는 건데, 남의 입을 통해서 확인해야만 안심하는 경우가 많지. 덕분에 나를 의지하면서 건강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있고.
"너무 겸손하시지만 말고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아니겠냐."
내가 진정으로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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