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겼다. 마치 세계수의 수정강에 피어오른 백합화처럼... ‘우리가, 이 케렌시아의 꽃이었어...... 우리가 사라진 세계수의 꽃이라구......‘ 이 대결은, 사실상 시작과 동시에 끝을 맺고 있던 것이었다.
수정강물은 단지 세계수의 옆에 있는 강이 아니었다. 케렌시아의 펫들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노래와 함께 사막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나무의 잎이 다 떨어지고, 사막에서 새 잎이 자라고 있어...‘ 이건 마치 부기웨이와 다른 친구들이 말했던 ‘대결의 마지막 때‘와 똑같지 않은가. [설마 대결이 끝나고 있는 건감??] 뇌령땃쥐는 놀라서 팔짝 뛰었다. 만약 뇌령땃쥐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 대결은 처음부터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지 미리 고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닷! 그렇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이긴거나 마찬가지였어-!‘
어떻게 이길지까지 처음부터 알려졌다면. 이 다음에 있을 싸움도 당연히 이길 확률이 높았다. 또한 그 승리의 이유는, 사막에 있는 맵토에게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규어와 부기웨이. 크로투스와 페어리밍고까지 얼싸안고 기뻐한다. 과거에 싸웠던 일은 모두 비와 함께 씻겨내려간 것 같았다.
뇌령땃쥐는 수정강물의 비를 맞고 바닥에 떨어진 계약펫들을 보며 생각했다. ‘땃, 나중에 이 계약펫 친구들과 잘 지내야 하는 거구나...‘ 케렌시아를 덮은 눈물. 그 눈물을 맞고도 마음이 굳은 상태였기에. 이들은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뇌령땃쥐는 그제야 케렌시아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대결의 뜻을 이해했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간땃. 실망하지 않고... 계속 웃으면서 가는거땃! 그래야 앞으로 들어오는 모든 친구들을 맞이할 수 있을꺼야, 땃. 우리는 그때를 위해서 강해져야 했던 거였다구!!‘
[우리가 케렌시아의 꽃이야. 우리가 케렌시아의 꽃이었다구!] ...(중략)... [그래, 땃. 우리가 꽃이었어. 이 물을 맞고 자라난 꽃.] 모든 식물이 사라진 케렌시아에 피어난 새로운 백합화들. 그들에게 과연 수정강물이 무섭겠는가.
이미 너무 많은 순간을 놓쳐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 후에 먹는 승리의 물고기!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게 있을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자기들이 했던 게 생각나는 모양이군.]
[우리는 이 케렌시아의 주인이 아니다. 단지 나중에 들어올 펫들을 위해 먼저 왔을 뿐이다. 너희들을 맞이하는 게 우리들의 임무란 말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곳이 생긴다고 생각해라. 우리는 그 땅을 얻을 것이다. 그 장소에 뭐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질 거다.]
‘선대 펫들이 중간에 길을 몇 번 잃긴 했지만, 뇌령땃쥐도 그렇고, 맵토도 그렇고, 모두 자기 일을 완벽히 수행했다.‘ 권민수는 펫들이 과거를 떠올리고 상황을 역전시킨 게 자랑스러웠다.
이제 그들 사이에서 드리모어를 바라는 펫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뭉쳤지만. 선대 펫들에게 한 짓을 떠올려보면 그들도 인간과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었다.
권민수는 무슨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챘다. ‘케렌시아가, 지구로 내려가고 있어....‘ 원과 원이 만나서 교집합이 생기는 것처럼. 케렌시아의 영역이 지구 차원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케렌시아와 지구가 합쳐 진다....!‘ 과거, 탑에서도 층간 차원 간섭에 의해 교차 지역이 발생했는데. 이렇게 되면 지구 전체와 케렌시아가 일종의 ‘교집합‘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케렌시아로 가는 문을 여는 게 아니야. 땅에 눈으로 볼 수 있는 실물 케렌시아가 생기게 된다!‘ 지금까지는 케렌시아에 있어도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지구 차원과 교차 지역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케렌시아의 실체를 똑바로 목격할 수 있게 될 거야.‘ 권민수는 능력이 사라진 이유를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다시 열 수 없는 게 아니라. 문이 항상 열려 있기에 그런 능력을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드리모어는 먼저 케렌시아가 지구로 오는 현상을 균열이 열리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여 사람들의 불안감을 끌어올렸다.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은 곳에 있다가 좁은 곳으로 오니까 힘들다.‘
[록 님은 스스로 몬스펫을 만들면서 인간과 다를 게 없어졌다. 인간을 욕하지만 인간이 되었다.]
‘나는 바닥부터 시작해서 정상으로 올라왔지.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록의 명령을 따르는 펫들이 많이 없었다. 돌렌시아 펫들의 얼굴에는 전과 달리 걱정이 가득했다. 록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에 명령에 충성하고 싶은 마음 또한 약해진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돌렌시아의 용맹성과 단단함을 상상하면서 싸우는 펫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게 다 깨져버리니, 저들과 싸우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깨달은 몬스펫들. 그들은 록의 명령에도 무거운 돌처럼 가만히 있었다.
몬스펫들이 펫들을 데려올 때. 권민수는 인간을 데려와야 한다. 선대 펫들이 자신을 연단하는 대결 끝에 계약펫들을 맞이했듯. 권민수 또한 수호자답게 그동안 피해 다녔던 이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었다. ‘펫들의 대결이 끝나고, 이제 내 대결이 시작됐다...‘ 퀘스트에 자세한 내용이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권민수는 그렇게 느꼈다.
‘언젠가 이길 100%면, 그 언젠가가 평생 안 오게 하면 그만이다.‘
그들은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다. 권민수는 케렌시아를 뒤에 두고, 드리모어는 온 세상을 뒤에 둔 채. 쾅-!!! 최종 격돌이, 온 하늘의 구름을 지우며 시작되었다.
"언제까지 의미없는 복수심으로 인간과 펫을 전부 희생시킬 생각이지?"
권민수는 드리모어의 강력한 방어 심리를 포착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인간과 안 좋았던 기억이 있는 모양이었다.
‘계속 싸울 수는 없다. 이참에 강하게 눌러서 드리모어를 약체화시키는 게 좋겠어.‘
내가 뭘 잘못했는지 깨닫게 해줘. 그리고 인간과 다시 잘 지내게 해줘.
"너는 네 잘못된 점을 알아차리기 위해 이곳에 온 거였어."
인간에게 복수하겠다고 했으나, 드리모어의 행동은 인간 못지않게 사악했다.
‘인원이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검성은 맵토가 귀찮았으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맵토를 지키고 있는 강대한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케렌시아가 맵토라는 몬스펫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중이었다. ‘수호영물에 가까운 생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되는군.‘ 검성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권민수의 펫이기도 하기에 맵토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드리모어는 과거의 목표와 현재의 목표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해서, 드리모어는 케렌시아의 퀘스트인 드리모어 돌아오기, 와 기존의 목표인 케렌시아 파괴를 적절히 조합했다. 그것이 바로 ‘케렌시아에 돌아와서 자폭하기!‘ 드리모어 자신이 진짜 케렌시아에 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폭하기 전에 뭔가를 알려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터지기 전에 케렌시아에서 제거될 것이다. ‘짹, 이게 내가 내린 판단 방법이다.‘
하늘의 천체와 연결되어 스킬 등록을 한 이상. 아무리 강한 만개 각성자라 할지라도 드리모어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건 불가능한 것이었다.
[목표가 이뤄졌다. 문제는 그 목표는 과거의 내가 원하는 것이고, 지금의 나는 원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기분이 안 좋다.]
[나는 인간에게 복수한 다음 지구에 몬스펫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문제는, 내가 원래 원했던 소원이 인간과 잘 지내는 것이고. 내가 공격하던 케렌시아가 그 소원과 가장 잘 맞는 장소였다는 것이다.]
드리모어가 케렌시아를 싫어하는 이유는 인간 수호자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펫들도 수호자가 되었고, 첫 소원까지 그런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드리모어는 졸지에 자신이 원하던 땅을 열심히 공격하는 바보가 된 것이었다. 드리모어는 왜 첫 소원이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이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케렌시아로 오면 다 끝난 거 아니양?] [너는 단순해서 좋겠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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