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소개된 음악들을 들으며 해당 노래를 설명하는 글들을 읽다보면 간혹 의미심장한 것들을 보게 되는데, 다양한 뮤지션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전해지는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오늘 밑줄친 문장들도 그러한 것들의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말 외에도 정말로 다양한 메시지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뇌리에 박힌 것이 저런 류의 말이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이 메시지를 머릿속에서 한 번 씩 떠올려주면 좋을 듯하다.


또한 다양한 음악들을 듣다보면 내가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것도 있는 반면, 뭐 이런 음악도 있었나 싶은 그런 생소한 음악들도 만나게 되는데, 뭐 음악이라는 건 다 각자의 취향이니 각기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은 지금으로썬 ‘그냥 내가 들었을 때 즐거우면 그만이다‘ 라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보는 수준인데, 이 분야도 다양한 뮤지션들과 그들이 작사작곡한 노래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파고들다보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깊은 분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가사하나하나에도 어떤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의미 혹은 철학 같은 것들이 녹아들어가 있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멜로디나 다양한 악기들의 변주가 셀수없이 다양한 것들을 보면서 앞서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진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살아가는 게 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들만의 방식을 찾아가라 - P609

"But I don‘t sit idly by / I‘m planning a big surprise / I‘m gonna fight for what I want to be (난 그저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야 / 난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지 / 난 내가 되고자 하는 걸 성취하기 위해 싸울 거야)..." - P609

"이 곡이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능력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라킴Rakim, 1988 - P607

"I have to raise ya /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but remember. You‘re not a slave(난 널 키워야 해 / 요람에서 무덤까지 / 하지만 기억해. 넌 노예가 아니야)." - P607

"만일 사람들이 진심으로 마음만 먹으면요." 그가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나 팔을 뻗어 제대로 된 삶을 움켜쥘 수 있죠. 현실세계에서는 경쟁이 격심하기 마련이니까요." - P607

"로큰롤이란, 여러 이중적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를 증오해가면서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거였죠."
로우 바로우, 2005 - P606

"so fucked, I can‘t believe it(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 P606

"When I need a friend, it‘s still you(내가 친구가 필요할 때면 여전히 너를 찾아)" - P606

이 곡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밀고 가보라고 - P605

"욕망을 억누를수록 그 욕망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 P605

"터무니없을 만큼 편한 느낌이었죠."  ....(중략)... "그게 모든 것의 비결임이 분명해요." - P605

"Promises me I‘m as safe as houses / As long as I remember who‘s wearing the trousers (내가 집만큼 안전할 것이라 약속하지 / 누가 주인인지를 내가 잊지 않는 한)" - P604

"어떤 실제 경험에 기반한 게 아니에요. 완전히 꾸며낸 거죠." - P601

"전 ‘사랑‘이라는 말을 넣어서 노래를 쓰고 싶었죠." ...(중략)... "왜냐하면 전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 P601

‘그리오(griot)‘-서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에 존재하는 세습적 음악가 계급 - P599

코라는 서아프리카에서 유래하는 21현 하프 - P599

"전 멜로디를 항상 먼저 쓰죠. 그리고 가사를 후에 떠올려요. 시인이 아니에요... 그저 느낌을 말로 해석할 뿐입니다." - P596

"So I look back upon my life / Forever with a sense of shame/ I‘ve always been the one to blame (내 삶을 돌아보면 영원히 수치심을 떨치지 못한 채 / 항상 잘못은 나 스스로에게 있었어)." - P595

‘마지막 단계까지 버티는 데 많은 투쟁이 필요했다.‘ - P594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저 아주 아주 많은 돈이 들어갈 거라는 거죠." - P593

"전 신의 존재에 대해 제가 품고 있던 회의의 마지막 파편까지 낱낱이 없애버리고 싶었어요." ...(중략)... "제가 어렸을 때 그들이 제 머릿속에 심어놓은 그 모든 걸 말이에요." - P585

"하우스는 4분의 4박자 비트에 사운드를 좀 입혀놓은 겁니다. 성공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겠어요?"
_팔리 "잭마스터" 펑크(funk), 2006 - P584

"Now this is how it started, my dream‘s all broken-hearted (모든 것이 이렇게 시작됐지. 내 꿈은 깊이 상처받았어)." - P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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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일행은 그리스 아토스 반도 여행을 마치고 튀르키예로 넘어온다. 튀르키예 파트의 첫번째 소제목은 바로 ‘군인의 나라‘인데, 여기에는 튀르키예만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서쪽으로는 그리스, 북쪽으로는 러시아, 동남쪽으로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바로 튀르키예인데, 이 주변국들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물리적 충돌 및 각종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관계가 썩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군사력을 키우다보니 자연스럽게 ‘군인의 나라‘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하여 튀르키예에서는 군사기밀 유출 방지 목적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의도와 관계없이 군인의 사진을 함부로 찍었다가는 현지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저자 일행도 이스탄불에서 의도치 않게 험한 일을 당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얘기들은 각종 여행 유튜브나 튀르키예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TV방송 프로그램들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것들이라 뭔가 새로웠다. 그리고 저자 덕분에 간단하게나마 튀르키예의 역사나 분위기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나름대로 의미있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튀르키예는 진귀할 정도로 일관되게 고독했던 나라다. 일찍부터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이었고 20세기 초반까지 주변 나라의 국민들을 군사적으로 가혹하게 지배한 만큼 그 과정에서 생긴 역사적 알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선 그리스와는 철저하게 사이가 나쁘다. 아마 회복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 P165

(튀르키예는) 러시아로부터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통을 받아왔다. 뼛속까지 원한이 서려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반러시아라는 입장에서 나토에는 가입했지만 EC (유럽연합의 전신)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에는 튀르키예를 신용하지 않는 공기가 짙게 흐르고 있고 이민문제에서도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몇 세기에 걸쳐 튀르키예인들이 저지른 피로 피를 씻는 격렬한 투쟁이 서구인의 기억에서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P165

그뿐 아니라 키프로스 문제 때문에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북키프로스의 독립을 승인한 나라는 튀르키예뿐이다. - P165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동남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과는 같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영토 문제나 소수민족, 난민문제 등으로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코 친밀하지 않다. - P165

이 나라(튀르키예)는 수많은 소수민족을 포함해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분리 독립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언제나 내분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다. - P165

요컨대 이 나라는 어느 방향을 향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정말로 절친한 친구도 없다. 그래서 언제나 다소간의 긴장 상태가 계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군인의 수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튀르키예는 원래 싸움을 통해 상대방을 때려눕혀 여러 가지 것들을 손에 넣어온 드센 기질을 가진 마초 기풍의 나라다. 그래서 군인이 국가 엘리트로서 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 P167

나는 갑자기 생각난 듯 "당신들의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하고 중위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다들 긴장하고 있으니 오히려 이쪽에서 친근하게 대하면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쪽이 긴장하면 상대방도 따라서 긴장하게 된다. 뭐, 꼭 사진을 찍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 P173

차이(튀르키예식 홍차) - P176

튀르키예인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갖게 되면 반드시 얘기가 길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 많고 호기심이 왕성한 데다 시간에 대한 감각이 일본인보다 조금 희박하고 느슨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지는 것이다. - P177

튀르키예군 장교들 중에는 인텔리가 많아서 장교와 보통 군인은 얼굴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요컨대 ‘출생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 P177

쇼토칸류(근대 가라테의 시조로 불리는 후나코시 기친이 창설한 가라테 유파) - P179

본고장에서 온 일본인에게 가라테를 배우는 것은 미시시피 출신의 흑인에게 블루스 기타 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일이다. 앨런 래드(서부영화 「셰인」의 주인공 역 배우)에게 권총을 빨리 쏘는 법을 배우는 것과도 비슷하다. - P179

"좀 더 허리를 낮춰." "다리를 좁혀. 급소를 차이지 않도록." - P180

튀르키예 요리는 고기 요리가 중심이다. 그것도 대부분 양고기다. - P183

예전에 나폴레옹 3세가 황후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오스만제국 황제가 부부를 만찬에 초대했다. 만찬을 즐긴 황후가 감동받아 수행하던 궁정 요리사에게 튀르키예 요리사를 찾아가 요리법을 배워 오라고 명령한 적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요리다. - P184

흑해를 도는 동안에는 생선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흑해 연안을 통해 소련 국경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내륙을 향해 남하하자 식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전부 양고기뿐이다. 어디를 봐도 양, 양, 양이다. 길을 걷다 보면 빈번하게 양과 조우하고, 정육점을 들여다보면 가죽을 벗긴 양이 매달려 있고, 레스토랑에 들어가도 양고기밖에 없다. 마을 전체에서 양고기 냄새가 난다. 화폐 대신 양을 쓰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양중심의 문화다. - P187

튀르키예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차이하네에 들어가게 된다. 잠깐 휴식을 취하기에 편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튀르키예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차이를 마시고 싶어진다. 몸이 차이를 원하게 된다. 어쩌면 기후 탓일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조금 오래 있다 보면 그런 식으로 기호가 변하는 경향이 있다. - P194

차이하네는 기묘한 곳이다. 튀르키예 전국의 차이하네에는 대부분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국민 영웅,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초상이 걸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차이하네에 앉아 국가의 이익에 공헌할 만한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두 가지뿐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도박. - P195

(특히 그리스 관광지에서는 관광객용 카페와 원주민용 카페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잘못 들어가면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 P197

튀르키예 마작은 중국식 마작과 브리지의 중간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숫자는 아라비아숫자로 1에서 13까지 있으며 패는 도미노 조각 정도의 크기로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네 가지 색깔로 나뉘어 있다. 이것을 2단짜리 목재 카드 랙에 쌓아 자기 앞에 놓는다. 그리고 중앙에 놓여 있는 패를 하나 가져오고 자기 패에서 하나를 내놓는다. 마작과 똑같다. 하지만 버린 패는 점점 쌓여가기 때문에 이제까지 무엇을 버렸는지 알 수 없다. 패를 완성하는 자세한 원리는 아직까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한 명이 패를 맞추어 완성하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난다. - P197

점수는 기록을 담당하는 사람이 득점표에 기입한다. 이것은 브리지와 같다. 아마 돈도 조금 걸려 있을 것이다. - P198

인간의 행동이란 세상 어디를 가나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 P198

차이는 작은 유리잔에 나온다. 잔 아래에는 접시가 놓여 있다. 스푼도 딸려 나온다. 잔은 처음에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조금 식힌 뒤에 마신다. 처음에는 유리잔에 뜨거운 홍차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잔 속에 담긴 뜨거운 홍차가 얼마나 아름다운 색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바닥에 찻잎이 조금 가라앉아 있다. - P198

튀르키예에서는 아무리 덥고 땀을 흘렸을 때라도 따끈따끈한 차이가 신기하게도 맛있다. 차가운 것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그늘에 들어가 후우 불어가면서 따듯한 차이를 마신다. - P199

차이는 원래 평범한 홍차에 불과하지만 신기하게도 차이는 차이일 뿐 홍차가 아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차이는 차이 맛이 나고 홍차는 홍차 맛이 난다. - P199

그곳 공기는 그 어느 곳과도 다른 뭔가 특수한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부에 와닿는 감촉도 냄새도 색깔도, 그 모든 것이 내가 이제까지 맡아왔던 그 어떤 공기와도 달랐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공기였다. 나는 그때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 P203

예감은 그것이 구체화될 때만 설명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런 예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다. 그저 몇 번쯤. - P203

튀르키예는 넓은 나라다.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선 인식해야만 한다. - P207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제일 처음 느낀 점은 이 나라의 넓이와 다양함이다. ‘튀르키예‘, ‘튀르키예인‘이라고 하면 보통 단일국가,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돌아보면 지역마다의 큰 차이를 보고 놀라게 된다. 튀르키예는 지형적으로 몇 가지 얼굴로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그리고 각 지역에 따라 풍경도, 기후도, 사람들의 생활도, 혹은 인종마저도 전혀 달라진다. - P207

유럽에서 차를 몰고 가면 우선 유럽풍의 튀르키예가 있다. 트라키아 지방이다. 이것이 첫 번째 튀르키예. 지형적으로는 그리스 북부와 거의 다를 바 없다. 경치는 동유럽에 가깝다. 사방을 둘러보면 메마른 해바라기밭 위를 제비가 날아다니고 있다.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점도 동유럽과 비슷하지만 우선은 비옥한 토지가 눈에 띈다. 어디를 가도 밭이 펼쳐져 있다. 볼 만한 것은 거의 없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는 데다 도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곧게 뻗어 있어서 운전하는 사람은 잠과 싸우는 것이 제일 고역이다. - P209

그리고 이스탄불이 있다. 이곳은 예외로 간주해서 튀르키예의 얼굴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많은 대도시가 그렇듯이 이곳은 특수한 장소다. 이스탄불에 가까이 갈수록 도로 부근의 풍경이 지루함에서 추악함으로 변해간다. 이스탄불로 통근하는 신新중산계급을 위한 끔찍스러운 집합주택과 전문 부동산업자가 지어 팔아넘기는 주택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혐오스러운 풍경이긴 하지만 이곳은 특히 심하다. 어느 집이나 아파트를 봐도 신축이고, 싸구려 같고, 취향이라곤 전혀 없고, 획일적이다. 하얀 벽, 빨간 지붕, 모두 다 똑같다. 구획마다 보기 흉한 부동산 간판이 내걸려 있다. 모든 간판에는 너무나도 중산층다운 생활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보고 있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풍경이다. - P209

이스탄불을 뒤로하고 보스포루스해협의 다리를 건너 아시아풍의 튀르키예로 들어간다.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기분이 우울해지는 공업지대가 한동안 계속된다. - P212

흑해 연안ㅡ이곳이 제2의 튀르키예다. 멋진 지역이다. 조용하고, 관광객이 적고, 풍경도 아름답다. 단, 에게해 연안에 비하면 도로와 호텔의 질이 말도 안 되게 형편없다. 비가 자주내리기 때문에 눅눅한 분위기의 땅이다. - P212

여기서(흑해 연안에서) 시계 방향으로 소련, 이란, 이라크와의 국경 방면이 제3의 튀르키예다. 녹색지대가 많은 흑해에서 산으로 접어들어 산등성이를 넘으면 그곳은 이미 동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로, 건조할 대로 건조한 중앙아시아풍의 튀르키예다. 여러 민족이 패권을 다투며 이 땅을 짓밟고 지나갔다.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긴장을 감추고 있는 땅이다. 경치도, 기후도 너무나 살벌하다. 흙먼지투성이고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곤 양뿐이다. 도로와 호텔은 말할 것도 없다. - P212

남쪽으로 내려와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에서 지중해까지 걸쳐 있는 중부 아나톨리아ㅡ이곳이 제4의 튀르키예, 아랍 색채가 진한 튀르키예다. 호텔과 도로 사정은 조금 나아진다. 여름의 열기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지독하지만 여성들의 복장이 눈에 띄게 화려해진다. - P214

서쪽의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의 튀르키예ㅡ이곳이 제5의 튀르키예다. 여기까지 오면 경치가 환하게 밝아진다. 내륙 지방의 먼지 날리던 공기에서 해방된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진 듯한 느낌이다. 아름다운 해안이 펼쳐지고 고급 리조트가 여러 군데 있다. 세련된 요트 정박지가 있고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다. 튀르키예 정부가 관광지로서 공들여 정비하고 있는 지역이다. 외국인 관광객과 중상류층 튀르키예인이 우아하게 휴가를 즐긴다. 그런 곳이다 보니 당연히 물가가 비싸다. - P214

카라데니즈ㅡ튀르키예어인 이 말은 문자 그대로 ‘검은 바다‘다. 에게해가 ‘흰 바다‘라고 불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흑해는 어디까지나 ‘검은 바다‘인 것이다. 왜 검은 바다라고 불리는지는 실제로 가보면 알 수 있다. - P221

유럽에서 튀르키예로 들어가면 처음에는 분명히 사람들의 응대에 당황하게 된다. 유럽인과 튀르키예인은 ‘친절‘이라는 관념의 정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도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하지만 튀르키예인의 친절함은 그런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책임을 지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길을 가르쳐준다. - P234

흑해에는 거의 파도가 없기 때문에 수영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치 아침에 수영장을 혼자 빌려서 헤엄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도 깨끗하고 기분도 좋다. 물은 보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 P251

트라브존에서 호파까지의 지역을 ‘튀르키예의 샹그릴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해안 도로에서 한 걸음 산 쪽으로 들어가면 자욱한 안개의 세상이다.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려 있고 수목이 우거져 있다. 아름다운 계곡물이 흐르고 돌다리가 놓여있다. 작은 마을의 집들은 나무와 기와로 만들어져 있다. - P251

이 부근(트라브존에서 호파까지의 지역)은 이아손이 인솔하는 아르고 원정대가 황금 양털을 찾아서 왔던 것으로 유명한 콜키스 왕국이 있었던 땅이다. 이아손은 여기서 자신에게 첫눈에 반한 왕녀 메데이아의 인도로 황금 양털을 손에 넣고 무사히 그리스로 귀환한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에 나오듯이 이아손은 나중에 자신의 영달을 위해 메데이아를 배반하고 다른 여자를 선택한다. 나라를 버리고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이국땅에서 비운의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 P253

이곳에는 콜키스 왕국의 후예라 할 수 있는 라즈족이 살고 있다. 라즈족은 금발에 눈이 파랗고 독특한 풍속과 습관을 지켜오고 있다. 책에 따르면, 라즈족 사람들은 자립심이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에 건조한 유머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튀르키예인 중에서도 유달리 이채로운 민족이다. 그들은 메데이아의 혈통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고향을 떠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어서 튀르키예 부동산업자의 태반이 라즈족이다. 또한 그들은 튀르키예의 제빵업계도 장악하고 있으며 레스토랑 경영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 P253

비가 많이 오는 기후는 홍차 생산에 적합하기 때문에 이 부근은 홍차 산지로 유명하다. 튀르키예의 홍차 생산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튀르키예에서 홍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때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커피 대신 홍차가 튀르키예인의 국민 음료가 되어버렸다. 커피 가격이 세계적으로 오른 것이 큰 이유다. 어쨌거나 튀르키예인들이 차이하네에 앉아 수다를 떨고 도박을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맛있게 마시는 차이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마을에는 홍차공장이 있고 큰 굴뚝에서는 뭉게뭉게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 P254

인간은 나약하고 인생은 유한하다 - P261

반 호수는 해발 1,720미터쯤 되는 곳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수면이 높은 호수 가운데 하나다. 호수의 물이 빠져나갈 하천이 없기 때문에 염분 농도가 30퍼센트나 된다고 가이드북에 쓰여 있다. 물고기는 거의 살지 않는다. 호수의 물은 상당히 기묘한 맛이 난다고 한다. - P272

반은 이 부근에서는 상당히 커다란 도시다. 일설에 의하면 반은 이란인 망명자와 밀수업자들로 붐비는 도시라고 한다. 산을 넘어 도망쳐 온 망명자(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대부분이 징병 기피자였다)는 우선 이 도시에서 한숨 돌린 뒤 당국에 출두하여 정식으로 망명 절차를 밟게 된다. 밀수업자들은 아편과 헤로인을 동방에서 이곳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음 운반책에게 넘겨준다. 어느 쪽이든 이 도시가 그 루트의 중계점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색출하기 위해 튀르키예 동남부 군대와 치안 당국 본부가 여기에 위치해 있다. 풍경이 아름다운 반면 상당히 위험한 지역인 것이다. 국경 도시란 대부분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 법인데 이곳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봐도 실로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276

반에 있는 호텔 프런트 직원들은 반드시 어딘가 융단 가게와 연결되어 있다 - P284

이상주의가 지역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 P288

하카리 지방은 눈이 많이 온다는것 외에 치안이 가장 나쁜 곳으로도 유명하다. 쿠르드인 분리주의자들의 활동 거점이기 때문이다. - P289

대부분의 튀르키예인은 외국인에게 자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괜찮습니다. 노 프라블럼"이라는 공식적인 견해로 끝내버리려고 한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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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분야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몇 년 전에 유현준 교수의 책들을 몇 권 읽었었는데, 저자께서 다양한 건축물들에 대해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시작하는 이 책은 ‘죽기 전에 꼭 ~ 해야 할‘ 시리즈 중 하나로, 특별히 전 세계의 다양한 건축물들을 다루고 있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한 번 쓱 훑어봤는데, 눈을 즐겁게 하는 멋진 건축물들의 이미지들이 페이지 곳곳에서 보여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 책 시리즈에 붙은 1001 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나름대로 서문을 쓰신 분이 그럴싸하게 썰(?)을 잘 풀어내신 듯하다.





왜 1001 인가? 사실 맨 마지막의 1이라는 숫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1,000개의 중요한 건축물 외에도 선택될 가치가 충분한 건축물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이기 때문이다. - P6

건축을 단순히 정치, 경제와 동떨어진 문화적인 측면만을 고려하며 바라볼 수는 없다. - P7

다양한 건축물이 수없이 세워지는 오늘날, 우리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건축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건축과 나쁜 건축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며, 더불어 과거와 현재의 건축을 통해 미래에 생겨날 건축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P9

좋은 건축물이란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P10

건축물은 일상생활의 배경을 이루는 요소이다. - P10

건축은 건축가에 의해 완성되고, 우리는 그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건축은 감정에 관한 것 같다. - P10

모든 것에서 배울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 P11

마크 어빙 : 그렇다면 과연 좋은 건축의 출발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피터 세인트 존 : 그것은 물론 건축물이 지어지는 배경과 상황에 있다. 이것이 바로 좋은 건축을 위한 최선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건축을 설계할 때는 기억 속의 친숙한 것에서 출발하며, 이 과정을 통해 생긴 기본 아이디어에 보다 신선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더해 각 건축물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건축은 변하게 된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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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8-12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있어요. 아주 좋습니다!ㅎㅎ 이 책은 정말 유용하고 시각적인 즐거움도 줍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6-08-12 14:19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저도 멋진 건축물들이 많아보여서 눈이 즐거울 것 같다는 기대가 있습니다ㅎㅎ 그리고 yamoo님이 극찬하실정도면 글 내용도 사진 못지않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 즐독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그 여정을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남긴 여행에세이다.

책의 맨 앞 표지 바로 뒷면에 그리스 아토스 반도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목차를 보면 그리스 파트 이야기는 이 지도에 나온 지역들을 차례대로 순회하며 진행되기에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글을 읽어나가기 위해 수시로 앞에 나온 지도를 참조하며 읽어나가면 될 듯하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 책의 첫 문장이기도 한데, 특별히 돌고 돌아 다시 거기로 돌아온다는 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생각나기도 했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모든 여행의 시작은 자신의 거주지이고 어디를 여행하든지 관계없이 결국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곳도 자신의 거주지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인생의 본질이라는 것도 결국 다 똑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먼저 우라노폴리스에서 배를 탄다.
아토스반도로 떠나는 순례의 여로는 그곳에서 출발하여 그곳에서 끝나게 되어 있다. 거기서 출발해ㅡ다시 돌아올 마음이 있다면ㅡ거기로 돌아온다. - P9

우라노폴리스는 아토스반도의 뿌리 부분에 붙어 있는 바닷가의 작은 리조트 타운이다. - P9

우라노폴리스는 질서 없이 어지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속세의 인간들이 속한 마을인 반면, 다프니는 보편성과 청렴과 신앙으로 가득 찬 성스러운 영역에 속한 마을이다. - P10

우라노폴리스는 ‘천국과도 같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 P10

이곳은 현실 세계의 막다른 장소다. 욕망의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리얼 월드의 프런티어인 것이다. - P11

문득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의식儀式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시간과 희생을 거쳐 철저하게 양식화된, 미의 핵심으로 돌진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의식, 그런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정도로 바다는 아름다웠다. - P16

한번 사라져버리면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머릿속에서 희미해진다. - P16

아토스는 이쪽 세계와는 전혀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다. 그 원칙이란 바로 그리스정교다. 이 땅은 그리스정교의 성지이며 사람들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때문에 이 땅은 그리스 국내이면서도 종교적 성지로서 완전한 자치를 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 P17

수도원에 도착하자 우선 담당 수도사가 그리스 커피와 물을 탄 우조, 그리고 루쿠미라는 달콤한 젤리 과자를 내왔다. 어느 수도원에 가더라도 루쿠미라는 과자가 반드시 나온다. 이 과자는 정말 이가 들뜨고 턱이 근질근질해질 정도로 달다. - P39

우조란 그리스의 소주 같은 것으로 알코올 도수가 굉장히 높다. 냄새는 코를 찌르듯이 강렬하고 물을 섞으면 뿌옇게 변한다. 그리고 값이 싸다. - P40

우리는 이것을 ‘아토스 3종 세트‘라고 불렀는데, 알코올과 당분으로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이 3종 세트의 기본 목적인 것같다. 그래서 이것들은 피곤하면 피곤할수록 맛있게 느껴진다. - P40

수도원에 도착하면 어떤 수도원이든 제일 먼저 ‘아르콘타리키‘라고 불리는 사무실에 가야 한다. 아르콘타리키를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순례자 담당, 숙박 담당부서‘라고 할까. 수도원의 수도사는 종교적 의무 외에도 여러 가지 일상적인 노동을 할당받고 있는데, 순례자를 접대하는 것도 노동의 하나로 담당 수도사가 따로 정해져 있다. 그 수도사가 우리 같은 방문자에게 다과를 내어주고 잠자리 준비를 해준다. 수도원에서 숙박하는 것은 무료다. 반도에 들어올 때 카리에스의 사무실에 한 사람당 2천 엔 정도의 돈을 지급하는데 그 돈으로 각 수도원에서의 경비가 모두 충당된다. - P42

이비론이라는 이름은 고대 이베리아(캅카스 남부)에서 유래되었다. 이 수도원의 창설자가 이베리아에서 온 수도사였기 때문이다. 아토스에 있는 수도원의 절반 정도는 정교를 믿는 여러 나라(대부분 동유럽이다)에 의해 기증되거나 설립되었다. 그래서 각 나라의 문화와 양식에 따라 수도원의 특색도 조금씩 다르다. - P48

그리스정교는 성가의 반주를 금지한다. 조각상도 금지되어 있다. 반주가 없기 때문에 찬송이 마치 일본의 불경처럼 들리기도 한다. - P52

그리스인은 가끔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은 때론 나의 기분을 어둡게 하고 때론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 P53

이비론은 아토스반도 안에 있긴 하지만 이런 보물들의 수량과 가치에 있어서는 1, 2위를 다툴 만큼 중요한 수도원으로 ‘박물관 수도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비교적 유연한 수도원인 것이다. 적어도 타협을 모르는 강경한 수도원은 아니다. - P53

아토스에 있는 스무 개의 수도원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완전히 공동체적인 수도원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개인을 인정해주는 유연성을 갖춘 수도원이다. 후자의 경우, 기도는 모두가 함께 하지만 식사와 노동은 개인의 재량에 맡긴다. 이비론 수도원은 후자에 속한다. - P54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같은 수도원에서 이틀 밤을 머물수 없는 것이 아토스의 규칙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 P57

그때 우리는 미처 몰랐다. 아토스반도 남동부에서는 함부로날씨를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째서 이 지역의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러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아토스산이라는 존재가 날씨를 뒤흔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기서는 아무리 날씨가 맑다 해도 눈 깜짝할 사이 산에 구름이 끼고 어느새 큰비가 내린다. 반도 북부보다는 남부, 서부보다는 동부 쪽이 날씨 변화가 심하다. 이 사실을 모르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날씨만 놓고 본다면 이 지역은 너무나 그리스답지 않은 곳이다. - P60

하여튼 토속주라는 것은 그 지역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맛이 깊어지는 법이다. 이탈리아 키안티 지역을 여행했을 때는 와인만 마셨다. 미국 남부에서는 매일 버번소다를 마셨다. 독일에서는 시종일관 맥주에 절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아토스에서는... 그렇다, ‘우조‘인 것이다. - P65

필로테우는 이비론에 비하면 훨씬 규모가 작다. 보기에는 고즈넉하고 안온한, 뭐랄까 가정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수도원 주변을 높은 벽이 감싸고 있고 입구에는 러시아풍의 아름다운 장식 문탑(중세 도시나 성곽의 문 옆에 방어나 전망을 목적으로 세운 탑)이 붙어있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색깔은 밝았으며 아침부터 내린 비에 젖어 물기를 머금은 색조로 바뀌어 있었다. - P69

하지만 하루에 두세군데의 수도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모두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법이다. 미안한 일이긴 해도. - P70

카라칼루에서는 커피와 바닐라 물이 나왔다. 바닐라 물이란 물을 담은 컵에 바닐라 덩어리를 풍덩 집어넣은 것이다. 바닐라가 물에 녹아 달콤해진다. 우선 물을 마시고 난 뒤에 스푼으로 바닐라를 떠먹는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달아서 나로서는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다. 냄새를 맡고 날아온 벌이 컵의 가장자리에 달라붙어 물을 핥는다. 그 정도로 달다. - P72

"즉 우리는 당신들과는 다른 시간대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시간성으로 비잔틴 타임이라고 불립니다. 비잔틴 타임으로 보자면 하루는 밤 열두 시가 아니라 일몰 시각에 시작됩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한밤중은 우리의 오전 네 시가 되는 것이지요." - P78

"열두 시에 일어나면 우리는 우선 자기 방에서 개인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오전 한 시에 모두 모여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는 대략 서너 시간 계속됩니다. 특별한 날에는 열 시간 정도 기도를 올릴 때도 있습니다." - P78

기도가 끝나면 그들은 각각의 장소로 흩어져서 노동을 하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고, 또 기도를 한다. - P81

이교도는 입지가 좁은 것이다. - P81

나는 종교 전반에 관해 그다지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그리스정교라는 종교는 가끔 이론을 초월한 동방적인 기운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특히 계단 구석에 숨어 한밤중의 예배를 훔쳐볼 때는. 그곳에는 확실히 우리의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럽과 소아시아가 역사의 근원에서 절충하는 듯한 근원적인 다이너미즘. 그것은 형이상학적 세계관이라기보다는 한층 신비적이고 토속적인 육체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리스도라는 수수께끼로 가득 찬 인간의 소아시아적 분위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것이 그리스정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 P90

이탈리아인들은 대부분 단체로 행동하면서 무척이나 큰 소리로 떠들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금방 알 수 있다. "케 벨로(좋다)"라든가 "베니시모(최고)"라든가 "체르토(정말)" 등등, 시끄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 P101

대라브라는 카라칼루와 달리 정교도와 이교도가 함께 식사를 한다. 넓은 식당에 모두 모여 기도를 들으면서 저녁 식사를한다. 식당 오른쪽에는 수도사들의 테이블이 있고 왼쪽에는 순례자들의 테이블이 있다. 막다른 곳에 기도를 올리는 수도사들의 테이블이 있다. - P101

대라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토스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도원이다. 역사도 가장 오래되었다. 그래서 설비 또한 크고 제대로 갖춰져 있지만 가정적인 맛은 그만큼 떨어지는 편이다. 식당만 해도 너무나 크다. 긴자의 ‘라이언 비어 홀‘만한 크기다. - P109

대라브라부터는ㅡ아토스산을 우회한 건너편에는ㅡ더 이상 정식 수도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훨씬 작고 터프한, 말하자면 ‘수도원 현지 출장소‘ 같은 것들이 있을 뿐이다. 이 출장소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크기순으로 스케테, 켈리온, 칼리베, 카티스마, 헤시카스테리온이라고 불린다. 수도원에는 각각 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인원수가 정원을 넘으면 나머지 수도사는 수도원을 떠나 각 출장소로 가야만 한다. - P111

논 에 베로? (내 말이 틀린가?) - P112

(모든 스케테는 어딘가의 수도원에 속해 있다) - P113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친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사랑은 사라져도 친절은 남는다‘라고 한 사람이 커트 보니것이었던가? - P126

피곤에 지친 몸에 올리브 절임의 소금기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을 좋게 해준다. - P127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 P132

비가 그치고 나면 회복은 빠르다. - P132

배를 타지 못한다면 여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흘밖에 허가를 받지 않았는데 나흘을 머물러도 되는 것인지였지만 다른 수가 없으니 어쨌거나 머물 수밖에 없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 P133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국땅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장소ㅡ그곳이 바로 타향이다. 그렇기에 모든 일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 P134

정말로 세상은 넓은 곳이다. - P138

좋은 날씨가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 P142

레몬을 언제나 가지고 다닐 것! 이것이 여름에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배운 교훈 가운데 하나다. - P143

어쨌거나 걸을 수밖에 없었다. - P144

아토스에 들어가고 아토스에서 나오려면 반드시 다프니에 들러야 한다. 다프니에서 우리는 긴 바지로 갈아입는다. 신의 정원에서 반바지는 불경스러운 것이다. - P149

아토스의 길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처럼 지저분한 수도사로부터 "다음에 올 때는 마음을 바꿔서 정교로 개종한 뒤에 오시게"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일을 묘하게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가 정교로 개종하는 일 따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도사의 말에는 신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 그것은 종교보다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확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P152

확신이라는 점에서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아토스처럼 농밀한 확신에 가득 찬 땅은 아마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 그곳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에 가득 찬 리얼 월드인 것이다. 카프소칼리비아의 그 고양이에게 곰팡이가 핀 빵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현실 세계인가? - P152

튀르키예에서는 군인과 경찰을 사진 찍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거리의 풍경을 찍을 때도, 우선 그곳에 군인과 경찰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 뒤에 찍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찰이나 헌병대가 "잠깐 오시오" 하며 끌고 가서 조사하고 필름을 압수한다. 아무리 군인이나 경찰을 찍을 의사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 모습이 찍혀 있으면 불쾌한 일을 겪게 된다. 시간 낭비는 물론이고 기분도 상한다. - P159

(그렇다, 사복경찰이 무척 많다.) - P160

튀르키예와 그리스 국경은 민감한 곳이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견원지간이기 때문에 가끔 총격전이 벌어져서 양측의 군인이 죽는다. 사소한 분쟁은 자주 있는 일이고 그때마다 양국 신문의 1면 기사 첫머리에는 애국적인 문구가 춤을 춘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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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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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 제목에 라오스가 들어가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라오스 여행에 관한 내용인줄로 알았는데, 목차를 보니 라오스(루앙프라방) 관련 내용은 일부만 나오고 보스턴, 아이슬란드, 포틀랜드, 그리스의 섬(미코노스 섬, 스페체스 섬), 뉴욕의 재즈 클럽, 핀란드, 이탈리아 토스키나, 일본 구마모토 등 세계 여러 나라들과 도시들에 대한 얘기가 병렬적으로 구성된 책이었다.


리뷰는 순서대로 구성된 챕터를 읽으면서 본문에 나온 대략적인 내용들과 더불어 수시로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맨처음 나온 '찰스 강변의 오솔길'은 저자의 다른 에세이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읽어봤던 것과 얼추 비슷한 내용들이 나온다. 배경이 그때와 동일한 보스턴이라 그런 것도 있고 실제로 달리기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외에도 보스턴 찰스강 주변의 사계절의 변화 모습을 유려한 문장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가다보면 계절의 변화 양상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다음에 나온 '푸른 이끼와 온천이 있는 곳 - 아이슬란드' 는 작가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렸던 '세계 작가회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그 나라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기록해놓은 글이다. 아이슬란드는 지리적인 특성상 북극에 가까워서 하루 중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실내에서 주로 머무르며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인구수대비 작가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아이슬란드라고 하며, 과거 1955년에 할도르 락스네스라고 하는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락스네스의 대표작인《독립한 민중》이라는 소설을 라디오에서 몇 주에 걸쳐 낭독하고 온 국민들이 그 라디오를 청취할 정도로 독서에 진심인 나라라고 한다.

이외에도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가 적었던 탓에 자연환경이나 고유의 언어, 문화 등이 잘 보존되어있는 편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특별히 p.56에 수록된 레이캬비크의 블루 라곤 온천 사진을 보면서 이 지역의 자연환경이 인간의 손길이 많이 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상태를 잘 보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추가로 인터넷에도 이 온천을 검색해보니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나름대로 이름있는 관광지임을 알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정도로 굉장히 좋아보였다.


세번째로 나온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라는 글에서는 미국 동서 해안에 각각 자리한 포틀랜드라는 지역의 레스토랑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서쪽에 있는 건 오리건 주 포틀랜드이고, 동쪽에 있는건 메인 주 포틀랜드인데, 이 두 지역은 공교롭게도 레스토랑의 수준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두 포틀랜드 지역의 역사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데, 저자가 본문에서 이와 관련된 얘기들을 조리있게 잘 설명해줘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유들을 수긍할 수 있었다.

지역에 대한 이야기 이후에는 저자가 직접 방문해본 레스토랑과 거기서 먹어본 메뉴들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만약 동부든 서부든 포틀랜드에 갈 일이 생긴다면 이 책에 나왔던 식당에 방문해서 식사를 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말미에는 저자의 취미로 알려진 LP 레코드판 수집과 더불어 저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가구장인에 대한 얘기도 만나볼 수 있었다.


네번째로 나온 '그리운 두 섬에서 - 미코노스 섬, 스페체스 섬' 에서는 저자가 이 두 섬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시작한다. 본문에선 약 24년 전에 저자가 이 그리스 섬에 약 3달정도 살았다는 말이 나온다. 이탈리아 로마로 들어가기 전에 그리스에서 잠깐이나마 살아보고 싶었다는 게 저자의 고백인데, 이 시간 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서《먼 북소리》라는 여행기를 내기도 했으며, 특별히 미코노스 섬에서는 저자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알려진《노르웨이의 숲》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여러 모로 저자에게 이 두 섬에서의 생활이 도움이 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었다.

24년만에 다시 방문한 이 두 섬에서 저자는 현지인들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 집을 방문해보기도 한다. 세월이 세월인 만큼 과거에 젊었던 사람들은 어느덧 노인이 되어있기도 했고, 오래 전 있던 건물들은 과연 자신이 지냈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해있는 듯 보였지만, 섬 사람들의 따뜻한 심성만큼은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며 저자는 안심한다.

마지막으로 섬을 떠나며 다시 원래 자신이 있던 일상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섬에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한 문장 한 문장 정리하면서 이 챕터의 글은 마무리된다.


다섯번째 글 '타임머신이 있다면 - 뉴욕의 재즈 클럽' 에서는 저자가 본업인 글쓰기 외에 취미로 즐겨하는 음악 감상, 여기선 특별히 째즈 음악에 대해 언급한다. 저자는 만약 자신에게 타임머신이 있어서 그것을 딱 한 번만 쓸 수 있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클리퍼드 브라운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이 뮤지션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기에 잘은 모르지만 어쨌거나 저자의 째즈 음악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클리퍼드 브라운 외에도 수많은 째즈 관련 뮤지션들이 본문 중간중간에 소개되는데, 독자인 나는 호기심에 각각의 뮤지션들을 유튜브 검색창에 검색해서 앞에 등장하는 몇 곡을 들어보기도 했다. 들어본 결과 저자가 선호하는 음악이 대략 어떤 느낌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곡마다 멜로디는 제각각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동소이하게 느껴졌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딱히 싫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을 확 사로잡을 정도로 땡기는 것도 아닌 그냥저냥한 음악들이었다. 물론 저자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저자의 취향에 맞다고 독자인 나까지 꼭 그 취향에 맞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근데 취향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아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줬다는 측면에서는 저자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저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이런 음악들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을테니 말이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 충족(?) 뭐 이런 차원에서 저자의 글이 내게 유익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여섯번째로는 '시벨리우스와 카우리스매키를 찾아서' 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독자인 나는 생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는데, 두 사람은 모두 핀란드에서 태생으로 시벨리우스는 음악 관련된 인물이고 카우리스매키는 영화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한다.

저자는 핀란드에 가서 카우리스매키 형제가 헬싱키에서 경영하는 '카페 모스크바'라는 바를 방문해서 거기서 우연히 만난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시벨리우스가 오랜기간 지냈다고 알려진 '아이놀라' 산장에도 방문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일화들을 독자들에게 풀어놓는다.

막판에 핀란드라는 나라의 이미지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면서 글이 마무리되는데, [덧붙이며] 라는 글에서 저자의 작품 중 하나인《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핀란드를 배경으로 하여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책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이후 일곱번째 이야기는 '거대한 메콩 강가에서' 라는 라오스 루앙프라방을 배경으로 하는 글이다. 이제서야 이 책의 제목에 나왔던 라오스가 등장한 것이다. 맨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솔직히 독자인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였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라오스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여러 나라들 중에 일부분으로만 수록된 관계로 약간 아쉬운 감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렇게라도 라오스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이나마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직접 가려고 하면 솔직히 엄두가 잘 나지 않는 나라라... 물론 간다면 갈 수야 있겠지만. 책을 통한 간접 체험도 그닥 나쁘지 않다는 주의라, 그냥 저자의 시각을 통해 라오스를 경험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근데 이야기 서두를 읽다보니 왜 저자가 제목을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라고 지었는지 어느정도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일본에서 라오스까지 직항으로 가는 노선이 없기에 방콕이나 하노이를 경유해야 했는데,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현지인이 저자가 라오스를 간다고 말하자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거기 뭐 볼 게 있냐는 식으로 말이다.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만약 독자인 내가 저자였다면 이 말을 듣고 속으로 그닥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가겠다는데 뭔 상관인가 싶기도 할 것 같고, 기분좋게 설렘을 안고 떠나는 여행에서 기분을 헝크러뜨리는 이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저자는 이러한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는 말을 하며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도 아직 라오스에 가보지 않았기에 지금 당장은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볼만한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가는 거라는 의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런 태도는 독자인 나도 배워뒀다가 적절한 순간에 마음을 다잡는데 써먹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듯하다.


라오스는 독실한 불교 국가인데 그 중에서도 루앙프라방은 특별히 신앙심이 돈독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원도 많고 승려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본문에는 이 승려들이 탁발을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저자는 그 속에서 느껴지는 어떤 영(靈)적인 힘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어쩌면 이런 게 라오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위에서 베트남 사람이 던진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 중 하나로도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저자가 라오스를 천천히 거닐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위에서 라오스가 불교 국가라고 했었는데, 특별히 저자가 크고 작은 조각상들을 보면서 소회를 밝힌 부분이 개인적으론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라오스를 대표하는 강인 메콩 강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현지 레스토랑과 라오스 고유의 음악 등 여러가지 얘기들이 나오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직접 읽어보며 느껴보시길 추천드린다.

막판에는 라오스 여행을 마치면서 저자가 이 나라만이 간직한 고유한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글을 마무리하는데, 반드시 엄청나게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대상이 주는 고유한 느낌 또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소박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시시하다는 식으로 평가절하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냉소적인 태도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면서 거기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것을 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저자의 모습을 통해 여행지가 어디든 관계없이 여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그 여행의 가치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여덟번째 이야기는 '야구와 고래와 도넛' 이라는 제목이고 보스턴2 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맨 앞에 나왔던 보스턴1 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나온 듯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스타벅스보다 던킨 도너츠 매장에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본문에 딱히 적어놓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저자가 아는 현지 지인의 말에 따르면 그냥 옛날부터 쭉 그래왔다고 한다. 독자인 나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역사적인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부분에는 고래 관광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건 좀 생소했다. 저자는 보스턴 항으로 가서 뱃머리 즉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라고 조언하는데, 아마도 보다 실감나게 즐기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고래를 보며 잠시나마 철학적인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인생의 덧없음 혹은 인생무상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홉번째 이야기는 '하얀 길과 붉은 와인' 이라는 제목의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글이다. 저자는 80년대 후반 색다른 기분으로 집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몇 년간 거주하면서 장편소설인《노르웨이의 숲》, 《댄스 댄스 댄스》를 쓰고, 단편 소설도 한 권 썼다고 한다.

집필 활동 외의 시간에는 복잡한 로마 시내를 벗어나 이태리 시골 도시들을 자동차로 투어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 나온 지역이 바로 앞서 언급한 토스카나라는 곳이다. 저자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맛있는 와인을 사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본문을 읽다보면 저자가 와인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단편소설의 한 에피소드에 와인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하나 집어넣었다고 할 정도이니 저자의 와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다. 독자인 나는 와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저자의 글을 통해 앞으로 와인 쪽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될 듯하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와인은 1983년산 콜티부오노 레드와인 이라는 것인데, 자신이 썼던 단편소설이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이후 우연히도 해당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 주인이 저자의 소설을 읽고 저자에게 콜티부오노 레드와인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저자가 토스카나에 방문했을 때 이 와이너리 주인과 연락이 닿았는데, 그 주인이 저자에게 자신이 생산하는 와인을 좋게 써줘서 고맙다며 토스카나 여행시 숙소가 필요하면 숙소를 기꺼이 제공하겠다고 했다는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독자인 나는 이 일화를 보며 이런 게 진정한 상부상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가 소설가로써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가는 모습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겠지만 어쨌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문에는 토스카나 땅의 특성상 와인 재배가 용이하다는 점이 나와 있고 와인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와인의 배합 비율 같은 것에 대한 얘기도 등장한다. 평소 와인에 관심있는 분들이 읽어보면 나름대로 흥미로울만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드디어 마지막 열번째 이야기는 저자의 조국인 일본 구마모토를 배경으로 한 '소세키에서 구마몬까지' 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도쿄에 주로 거주하는 저자가 구마모토를 방문하게 된 이유는 지인들과의 모임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모임 구성원 중 한 명의 고향이 구마모토였기에 좀 더 수월하게 방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어두면 이런 식으로라도 언젠가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읽다보니 저자가 약 40년 전에 이곳 구마모토에 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냥 무작정 혼자서 여행을 왔던 것이었다면 이번에 40년 만에 다시 방문하는 것은 모임의 지인과 함께였다는 게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제목에 나온 소세키는 책 좀 읽어본 독자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다. 독자인 나는 개인적으로《나는 고양이로소이다》,《마음》이렇게 2권정도 그의 작품을 읽어봤는데, 오늘 본문에서 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조금이나마 접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소세키와 구마모토는 그닥 궁합이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소세키가 구마모토에서 교수로 근무할 시절 지냈던 집이 소개되는데, 소세키가 구마모토에서의 생활에 그다지 커다란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얼마 안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이외에도 만다 갱이라는 탄광과 히토요시라는 도시, 바다 위에 지어져 있다는 아카사키 초등학교,
'구마몬'이라는 구마모토 캐릭터 등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구마모토를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가까운 거리인 것으로 나오는데, 기회가 된다면 하루키가 갔던 여정을 따라 한 번쯤 여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책으로 읽기만 하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총 10편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저자가 다녀왔던 세계 곳곳을 독자인 나도 함께 여행하고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글을 가이드 삼아 해당 지역의 역사, 자연환경, 음식, 음악, 각종 문화 등을 만나보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보다 더 깊이있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여행에세이를 통해 그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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