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그 여정을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남긴 여행에세이다.

책의 맨 앞 표지 바로 뒷면에 그리스 아토스 반도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목차를 보면 그리스 파트 이야기는 이 지도에 나온 지역들을 차례대로 순회하며 진행되기에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글을 읽어나가기 위해 수시로 앞에 나온 지도를 참조하며 읽어나가면 될 듯하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 책의 첫 문장이기도 한데, 특별히 돌고 돌아 다시 거기로 돌아온다는 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생각나기도 했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모든 여행의 시작은 자신의 거주지이고 어디를 여행하든지 관계없이 결국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곳도 자신의 거주지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인생의 본질이라는 것도 결국 다 똑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먼저 우라노폴리스에서 배를 탄다.
아토스반도로 떠나는 순례의 여로는 그곳에서 출발하여 그곳에서 끝나게 되어 있다. 거기서 출발해ㅡ다시 돌아올 마음이 있다면ㅡ거기로 돌아온다. - P9

우라노폴리스는 아토스반도의 뿌리 부분에 붙어 있는 바닷가의 작은 리조트 타운이다. - P9

우라노폴리스는 질서 없이 어지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속세의 인간들이 속한 마을인 반면, 다프니는 보편성과 청렴과 신앙으로 가득 찬 성스러운 영역에 속한 마을이다. - P10

우라노폴리스는 ‘천국과도 같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 P10

이곳은 현실 세계의 막다른 장소다. 욕망의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리얼 월드의 프런티어인 것이다. - P11

문득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의식儀式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시간과 희생을 거쳐 철저하게 양식화된, 미의 핵심으로 돌진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의식, 그런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정도로 바다는 아름다웠다. - P16

한번 사라져버리면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머릿속에서 희미해진다. - P16

아토스는 이쪽 세계와는 전혀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다. 그 원칙이란 바로 그리스정교다. 이 땅은 그리스정교의 성지이며 사람들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때문에 이 땅은 그리스 국내이면서도 종교적 성지로서 완전한 자치를 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 P17

수도원에 도착하자 우선 담당 수도사가 그리스 커피와 물을 탄 우조, 그리고 루쿠미라는 달콤한 젤리 과자를 내왔다. 어느 수도원에 가더라도 루쿠미라는 과자가 반드시 나온다. 이 과자는 정말 이가 들뜨고 턱이 근질근질해질 정도로 달다. - P39

우조란 그리스의 소주 같은 것으로 알코올 도수가 굉장히 높다. 냄새는 코를 찌르듯이 강렬하고 물을 섞으면 뿌옇게 변한다. 그리고 값이 싸다. - P40

우리는 이것을 ‘아토스 3종 세트‘라고 불렀는데, 알코올과 당분으로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이 3종 세트의 기본 목적인 것같다. 그래서 이것들은 피곤하면 피곤할수록 맛있게 느껴진다. - P40

수도원에 도착하면 어떤 수도원이든 제일 먼저 ‘아르콘타리키‘라고 불리는 사무실에 가야 한다. 아르콘타리키를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순례자 담당, 숙박 담당부서‘라고 할까. 수도원의 수도사는 종교적 의무 외에도 여러 가지 일상적인 노동을 할당받고 있는데, 순례자를 접대하는 것도 노동의 하나로 담당 수도사가 따로 정해져 있다. 그 수도사가 우리 같은 방문자에게 다과를 내어주고 잠자리 준비를 해준다. 수도원에서 숙박하는 것은 무료다. 반도에 들어올 때 카리에스의 사무실에 한 사람당 2천 엔 정도의 돈을 지급하는데 그 돈으로 각 수도원에서의 경비가 모두 충당된다. - P42

이비론이라는 이름은 고대 이베리아(캅카스 남부)에서 유래되었다. 이 수도원의 창설자가 이베리아에서 온 수도사였기 때문이다. 아토스에 있는 수도원의 절반 정도는 정교를 믿는 여러 나라(대부분 동유럽이다)에 의해 기증되거나 설립되었다. 그래서 각 나라의 문화와 양식에 따라 수도원의 특색도 조금씩 다르다. - P48

그리스정교는 성가의 반주를 금지한다. 조각상도 금지되어 있다. 반주가 없기 때문에 찬송이 마치 일본의 불경처럼 들리기도 한다. - P52

그리스인은 가끔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은 때론 나의 기분을 어둡게 하고 때론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 P53

이비론은 아토스반도 안에 있긴 하지만 이런 보물들의 수량과 가치에 있어서는 1, 2위를 다툴 만큼 중요한 수도원으로 ‘박물관 수도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비교적 유연한 수도원인 것이다. 적어도 타협을 모르는 강경한 수도원은 아니다. - P53

아토스에 있는 스무 개의 수도원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완전히 공동체적인 수도원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개인을 인정해주는 유연성을 갖춘 수도원이다. 후자의 경우, 기도는 모두가 함께 하지만 식사와 노동은 개인의 재량에 맡긴다. 이비론 수도원은 후자에 속한다. - P54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같은 수도원에서 이틀 밤을 머물수 없는 것이 아토스의 규칙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 P57

그때 우리는 미처 몰랐다. 아토스반도 남동부에서는 함부로날씨를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째서 이 지역의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러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아토스산이라는 존재가 날씨를 뒤흔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기서는 아무리 날씨가 맑다 해도 눈 깜짝할 사이 산에 구름이 끼고 어느새 큰비가 내린다. 반도 북부보다는 남부, 서부보다는 동부 쪽이 날씨 변화가 심하다. 이 사실을 모르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날씨만 놓고 본다면 이 지역은 너무나 그리스답지 않은 곳이다. - P60

하여튼 토속주라는 것은 그 지역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맛이 깊어지는 법이다. 이탈리아 키안티 지역을 여행했을 때는 와인만 마셨다. 미국 남부에서는 매일 버번소다를 마셨다. 독일에서는 시종일관 맥주에 절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아토스에서는... 그렇다, ‘우조‘인 것이다. - P65

필로테우는 이비론에 비하면 훨씬 규모가 작다. 보기에는 고즈넉하고 안온한, 뭐랄까 가정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수도원 주변을 높은 벽이 감싸고 있고 입구에는 러시아풍의 아름다운 장식 문탑(중세 도시나 성곽의 문 옆에 방어나 전망을 목적으로 세운 탑)이 붙어있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색깔은 밝았으며 아침부터 내린 비에 젖어 물기를 머금은 색조로 바뀌어 있었다. - P69

하지만 하루에 두세군데의 수도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모두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법이다. 미안한 일이긴 해도. - P70

카라칼루에서는 커피와 바닐라 물이 나왔다. 바닐라 물이란 물을 담은 컵에 바닐라 덩어리를 풍덩 집어넣은 것이다. 바닐라가 물에 녹아 달콤해진다. 우선 물을 마시고 난 뒤에 스푼으로 바닐라를 떠먹는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달아서 나로서는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다. 냄새를 맡고 날아온 벌이 컵의 가장자리에 달라붙어 물을 핥는다. 그 정도로 달다. - P72

"즉 우리는 당신들과는 다른 시간대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시간성으로 비잔틴 타임이라고 불립니다. 비잔틴 타임으로 보자면 하루는 밤 열두 시가 아니라 일몰 시각에 시작됩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한밤중은 우리의 오전 네 시가 되는 것이지요." - P78

"열두 시에 일어나면 우리는 우선 자기 방에서 개인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오전 한 시에 모두 모여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는 대략 서너 시간 계속됩니다. 특별한 날에는 열 시간 정도 기도를 올릴 때도 있습니다." - P78

기도가 끝나면 그들은 각각의 장소로 흩어져서 노동을 하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고, 또 기도를 한다. - P81

이교도는 입지가 좁은 것이다. - P81

나는 종교 전반에 관해 그다지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그리스정교라는 종교는 가끔 이론을 초월한 동방적인 기운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특히 계단 구석에 숨어 한밤중의 예배를 훔쳐볼 때는. 그곳에는 확실히 우리의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럽과 소아시아가 역사의 근원에서 절충하는 듯한 근원적인 다이너미즘. 그것은 형이상학적 세계관이라기보다는 한층 신비적이고 토속적인 육체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리스도라는 수수께끼로 가득 찬 인간의 소아시아적 분위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것이 그리스정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 P90

이탈리아인들은 대부분 단체로 행동하면서 무척이나 큰 소리로 떠들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금방 알 수 있다. "케 벨로(좋다)"라든가 "베니시모(최고)"라든가 "체르토(정말)" 등등, 시끄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 P101

대라브라는 카라칼루와 달리 정교도와 이교도가 함께 식사를 한다. 넓은 식당에 모두 모여 기도를 들으면서 저녁 식사를한다. 식당 오른쪽에는 수도사들의 테이블이 있고 왼쪽에는 순례자들의 테이블이 있다. 막다른 곳에 기도를 올리는 수도사들의 테이블이 있다. - P101

대라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토스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도원이다. 역사도 가장 오래되었다. 그래서 설비 또한 크고 제대로 갖춰져 있지만 가정적인 맛은 그만큼 떨어지는 편이다. 식당만 해도 너무나 크다. 긴자의 ‘라이언 비어 홀‘만한 크기다. - P109

대라브라부터는ㅡ아토스산을 우회한 건너편에는ㅡ더 이상 정식 수도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훨씬 작고 터프한, 말하자면 ‘수도원 현지 출장소‘ 같은 것들이 있을 뿐이다. 이 출장소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크기순으로 스케테, 켈리온, 칼리베, 카티스마, 헤시카스테리온이라고 불린다. 수도원에는 각각 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인원수가 정원을 넘으면 나머지 수도사는 수도원을 떠나 각 출장소로 가야만 한다. - P111

논 에 베로? (내 말이 틀린가?) - P112

(모든 스케테는 어딘가의 수도원에 속해 있다) - P113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친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사랑은 사라져도 친절은 남는다‘라고 한 사람이 커트 보니것이었던가? - P126

피곤에 지친 몸에 올리브 절임의 소금기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을 좋게 해준다. - P127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 P132

비가 그치고 나면 회복은 빠르다. - P132

배를 타지 못한다면 여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흘밖에 허가를 받지 않았는데 나흘을 머물러도 되는 것인지였지만 다른 수가 없으니 어쨌거나 머물 수밖에 없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 P133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국땅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장소ㅡ그곳이 바로 타향이다. 그렇기에 모든 일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 P134

정말로 세상은 넓은 곳이다. - P138

좋은 날씨가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 P142

레몬을 언제나 가지고 다닐 것! 이것이 여름에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배운 교훈 가운데 하나다. - P143

어쨌거나 걸을 수밖에 없었다. - P144

아토스에 들어가고 아토스에서 나오려면 반드시 다프니에 들러야 한다. 다프니에서 우리는 긴 바지로 갈아입는다. 신의 정원에서 반바지는 불경스러운 것이다. - P149

아토스의 길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처럼 지저분한 수도사로부터 "다음에 올 때는 마음을 바꿔서 정교로 개종한 뒤에 오시게"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일을 묘하게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가 정교로 개종하는 일 따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도사의 말에는 신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 그것은 종교보다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확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P152

확신이라는 점에서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아토스처럼 농밀한 확신에 가득 찬 땅은 아마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 그곳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에 가득 찬 리얼 월드인 것이다. 카프소칼리비아의 그 고양이에게 곰팡이가 핀 빵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현실 세계인가? - P152

튀르키예에서는 군인과 경찰을 사진 찍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거리의 풍경을 찍을 때도, 우선 그곳에 군인과 경찰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 뒤에 찍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찰이나 헌병대가 "잠깐 오시오" 하며 끌고 가서 조사하고 필름을 압수한다. 아무리 군인이나 경찰을 찍을 의사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 모습이 찍혀 있으면 불쾌한 일을 겪게 된다. 시간 낭비는 물론이고 기분도 상한다. - P159

(그렇다, 사복경찰이 무척 많다.) - P160

튀르키예와 그리스 국경은 민감한 곳이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견원지간이기 때문에 가끔 총격전이 벌어져서 양측의 군인이 죽는다. 사소한 분쟁은 자주 있는 일이고 그때마다 양국 신문의 1면 기사 첫머리에는 애국적인 문구가 춤을 춘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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