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플라우프 요제프 부인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이 나왔었다. 이후 저자는 ‘부패의 일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기 시작하는데, 오늘 읽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과학분야에서 각종 화학반응 및 생물반응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전문 용어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독자인 나는 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것을 보며 저자가 자신의 과학관련 지식 수준이 꽤나 높다는 것을 어느정도는 과시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시체의 부패과정을 이렇게 까지 상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만약 독자분들 중에 과학관련 지식들이 비교적 풍부한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분들은 오히려 이 부분을 흥미롭게 읽어나가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배경지식으로라도 끝까지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애쓰다보니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읽었던 칼 세이건의《코스모스》가 문득 생각났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핵심은 모든 것이 먼지처럼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오늘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묘사한 것도 바로 이와같은 것이었다. 우리 몸을 구성하던 원자들이 산산조각나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처음엔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생소한 과학 용어들이 왜 이리 많이 나오는가 하는 의구심이 많았지만, 이런 교훈을 알고나서 다시 돌아보니 원자를 좀 더 세부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표현의 일부로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배경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표현의 방식도 좀 더 다양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막상 쓰고보니 너무 당연한 말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늘 본문을 통해 이 당연한 말의 의미를 좀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완전한 정체가 전쟁터에 널리 퍼졌고, 그 시체는 안정적인 밀랍, 내용 없는 존재, 시간의 유일한 공백으로 바뀌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멈춰버렸다. 그런 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깨어나서, 시체는 얼음의 억류에서 탈출했고, 다시 한번 공격은 한층 사납게 덤벼들라며 지휘에 나섰다. - P515

근육 단백질에서 저항할 수 없는 일방적인 이화작용의 대사가 축적되고, 아데노신트리포스페이트 분해효소는 일반 에너지 수준의 중심 요새, ATP 공격을 계속하고, 이 결과 결합 분할에서 에너지가 나와, 상당히 방어가 어려운 요새에서, ATP의 영향을 받는 액토미오신 결합 변환과 연결되어, 자연적으로 근육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지속적인 분해로 당연히 아데노신트리포스페이트가 감소되지만 산화 혹은 당분해로 에너지 공급원을 충당할 수 없었고 재합성의 완전 부재로, 재고는 고갈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축적된 젖산의 동시다발적 협력으로, 근육의 수축은 사후강직이 물려받게 되었다. - P515

중력의 법칙에 따라 피는 수집 네크워크의 가장 낮은 지점에 모이게 되고, 공격의 주요 목표가 되어ㅡ적어도 최종 절멸의 패배까지ㅡ핏속 피브린 내용물에 두 갈래의 공격을 마주하게 되었다. - P515

첫 번째 공격의 단계에서 포위공격 발효되기 전부터 심혈관계를 순환하고 있던 피브리노겐은 이미 활성화된 트롬빈으로 두 쌍의 펩티드를 잃었고, 그 결과 곳곳에서 형성된 피브린 분자는 서로 결합해 상당히 저항성 높은 핏덩이로 엉겨 붙었다. 이들의 어떤 것도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죽음과 관련된 무산소증의 반란에 따라 플라스미노겐이 플라스민으로 활성화돼서 피브린 사슬들을 폴리펩티드로 쪼갰기 때문이었다. - P515

그래서 전투는ㅡ이제는 다른 방향에서 피브린 분해 특성을 지닌 엄청난 물량으로 아드레날린이 공격해대어ㅡ판세를 뒤집어 혈액이 흐르게 되었고, 지혈에 대항하라고 위임된 부대들은 신속하고 확고한 성공을 다졌다. 이들은 어떻게 덩어리를 어렵사리, 더욱 중요하게는, 두말할 필요 없이 훨씬 천천히 형성했고, 그래도 남아 있던 용액 상태 매질로 임무, 그러니까 임박한 다음 단계, 적혈구의 제거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 P516

액체를 담아두는 조직의 능력이 현격하게 소실되어 세포 내 물질은 주요 정맥을 따라 느슨한 조직들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 결과 혈구들의 막도 투과성이 높아져, 혈색소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혈색을 띠던 요소들은 적혈구들을 떠나, 저항능력을 잃은 용액들과 섞여들고, 이후 조직들을 통해 스며나가 혈색으로 물들였고, 파괴의 무자비한 무력들이 또다른 중요한 승리를 확보했다. - P516

이런 잘 조화된 군사작전의 전선들 뒤에, 근육과 혈액의 전방위 공격과 동시에, 죽음의 바로 그 순간에, 한때 경이로웠으나 이제는 무력한 왕국의 내부 반대세력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진군의 어떤 장애물도 이런 탄수화물이니, 지방이니, 특히나 한때 아무도 흉내 못 내는 우아한 메커니즘의 단백질도 모조리 쓰러뜨리며 ‘궁정 쿠데타‘와 상당히 비슷하게 괴멸시켰다. 이른바 발효된 세포ㅡ조직으로 이뤄진 부대와, 사후자가분해라고 알려진 형태의 군사작전을 펼치지만, 이런 어쨌든 공평무사해 보이는 명칭은 단지 사건의 슬픈 상태의 본질을 흐릴 뿐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는 ‘아랫사람들의 봉기‘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 P517

궁정 혁명(쿠데타). 보통 지도층 내부, 측근, 2인자에 의한 비폭력적인 체제나 권력의 전복을 일컫는다. - P516

모반을 일으킨 하인들은, 유기체가 여전히 든든한 요새의 삶으로 부산할 때조차 완전히 억제체제를 배치하여 계속 억누르고 있어야만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들이, 제국의 곡창에 들어갈 식량들을 부수고 준비하는 일에 제한됐어야하는 역할이건만, 지정된 임무의 한도를 툭하면 넘으려 들거나 그들이 섬겨야 할 바로 그 모체를 공격하는 일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삼엄한 경계와 감시하에서만 활용해왔었다. - P517

단백질을 분해하는 단백분해효소들이란, 원래는 펩티드 결합을 부숴, 단백질 영양분의 가수분해를 촉매 작용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이 중 위에서 활동하는 펩신이라는 효소는 강력한 뮤신의 활동으로 염산과 더불어 위의 단백질성 구성 물질을 몰살하지 못하도록 저지되고 있었다. - P517

탄수화물과 지방도 거의마찬가지 신세라서 여기서는 NADP와 코엔자임ㅡA가 한쪽에서 지질분해효소와 지방산 탈수소효소가 다른 쪽에서 억제제 부대의 관리하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들 없이는 어떤 것도 파괴를 위해 동맹을 맺고 통제를 벗어난 효소들이 조직을 파괴해나가는 일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들을 늦출 것도 없었고, 물론 아무 저항도 없었다. 그래서 우호적인 기온의 시작과 함께 가장 최적의 장소에서 ‘최측근 반란‘은 이미 발발했고, 아니 지속됐고, 위장 점막에 있던 정맥의 피가 산酸헤마틴으로 변해 위장 벽을 군데군데 녹였고, 그래서 주로 염산과 펩신을 기반으로 이뤄진 군대는 복강내 동맹국들에 대항해 공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 P518

하인배 효소 특수부대의 노력의 결과로 간 내 글리코겐은 단순한 분자들로 분해됐고 또한 췌장의 자기분해가 뒤따랐다. 자기분해, 꼬리를 감춘 진실에 가차 없는 빛을 던지는 단어,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그 속에 자체 파괴의 씨앗을 담고 다니고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산소의 공급 때문에 오직 천천히만 진행할 수 있지만, 부패는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즉 유기체 내 질소 함유화합물들은 미생물의 발효가 이런 단백질 분해의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 P518

미생물들이 곧 최전방 부대들과 협공하며, 엄청난 숫자로 온상을 이루던 장들 속에서 작전을 시작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 그들은 전체 왕국 너머로 그들의 지배를 뻗쳐나갈 수도 있게 되었다. - P518

몇몇 혐기성 미생물과 별도로, 포열은 주로 호기성 부패균들로 이뤄졌다. 하지만 그들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부대를 열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것이다. 왜냐하면, 프로테우스 불가리스, 수브틸리스 메센테리쿠스, 파이오사이네오우스, 사르키나 플라바, 그리고 스트렙토코커스 파이오게네스를 포함해 세균 종류도 다양하지만, 엄청난 양의 미생물이 결정적인 전투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충돌은 가장 먼저 피부 아래 혈관에서 일어났고, 그런 뒤 복벽들에서 비롯되어 사타구니, 나중에는 갈비뼈 사이에서 쇄골 아래와 위 수로 속으로 퍼졌으며, 여기서 부패의 과정에서 생성된 황화수소가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되어 한편으로 베르도글로빈을 생성하고 혈색소 속에 함유됐던 철분과 결합해, 한편으로 황산제일철을 생성했고 이런 일들은 이후로 근육과 내부 장기 전체로 번져나갔다. - P519

다시 중력의 힘 덕분에, 색깔을 내는 피를 함유하는 체액들은 계속 분해되고 있는 조직들에 차분히 스며들어갔으며 이런 기본 구성 재료들의 느린 탈출은 이들이 피부에 이를 때까지 지속됐고, 이후 이 지점에서 더욱 깊숙한 곳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 P519

계속 전개되는 이종 용해에 클로스트리듐 페르프린젠스라는 혐기성 미생물의 위업이 병행됐다. 이들은 새로운 시작 초창기부터 장 속에서 급속하게 자라던 아주 효과적인 박테리아인데, 배와 혈관 바깥에서 그 외부작전을 시작했지만 곧 재빨리 전체 시스템으로 퍼졌고, 심방과 심실에, 폐의 늑막 아래로 물집을 만들고, 썩어가는 피부에 부풀기 시작한 수포의 생성에도 상당히 기여했고, 이렇게 부푼 피부들은 결국에는 벗겨져 나갔다. - P519

한때는 어느것에도 끄떡없던 단백질의 왕국이, 처음에는 그렇게 복잡한 외관에도 아주 사리에 맞아떨어지게 작동하던 세상이 이제는 거의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 단백질성 펩톤들, 뒤를 이어 아미도 그룹, 질소성과 비질소성 방향족 물질, 마침내 유기 지방산이 분해됐고, 이들로부터 개미산, 초산, 낙산, 길초산, 팔미트산, 스테아르산 등의 각종 산과 수소, 질소와 물 같은 몇몇 비유기적 최종 산물이 만들어졌다. - P520

땅속에 있던 아질산균과 질산균의 도움으로 암모니아는 아질산으로 산화됐고, 염류의 형태로, 식물의 좁은 뿌리를 타고 올라서 그들이 나왔던 세상으로 돌아갔다. - P520

분해된 탄수화물 중 일부는 이산화탄소로 공기 중에 녹아들어갔고 그래서ㅡ이론적으로는 적어도ㅡ그들은, 한 차례, 광합성에 참여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양하고 섬세한 가닥들을 따라 모든 것을 유기적 그리고 비유기적 존재로 깔끔하게 가르며, 상위 유기체에게 회수될 수도 있었다. - P520

기나긴 저항 끝에, 결합조직, 연골 그리고 마지막으로 뼈가 희망 없는 몸부림을 포기했을 때, 겹겹으로 강화됐던 요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원자는 하나도 잃지 않았다.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비록 어떤 점원도 모든 구성성분의 물품 목록을 만들 수없기는 해도 오롯이 거기 있었다. 하지만 한때 한때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딱 한 번만 존재했던 왕국은 영원히 사라졌다. 질서의 결정結晶들이 존속하는 내부의 끝없는 혼돈, 사물들 간의 저지할 수 없는 무심한 교통으로 이뤄진 혼돈의 운동량에 의해 극소의 조각들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이는 제국을 탄소, 수소, 질소와 황으로 바수었고, 이로써 섬세한 섬유들은 조각들로 부서지고 흩어지고 소멸했다. - P520

어디 헤아릴 수 없이 머나먼 명령이 집어삼켰기 때문이고, 이 책 역시 여기, 지금 마지막 마침표에서, 마지막 단어 뒤에 갉아먹힐 것이다. - P521

화성 음악 이전, 다성부 음악처럼 꼭 붙어서 또 따로 떨어져 진행되는 소설의 두 축, 에스테르와 벌루시커 - P523

파편들의 경구로만 남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 중에 "전쟁은 같이 참가하는 것이며 대립은 정의이고, 모든 것은 (대립에 따라) 지나가기 마련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 P523

‘모든 것은 흐른다‘ - P523

작가의 데뷔작 《사탄탱고》는 ‘용수철 공책‘처럼, 혹은 무한히 닫힌 원처럼 시작해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붙어 있지만, 《저항의 멜랑콜리》는 현실이라는 껍질에 가상이라는 알맹이, 이성이라는 표지로 겉을 싸고 광기라는 내용물로 가운데를 기웠다. - P524

소설은 프라하의 봄이 있었던 1968년 이후, 인류의 달 착륙 이후 70년대 초, 어느 평범한 부인의 불안한 삶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불안의 극단적 현실로 끝을 맺는다. 다른 성부의 음악처럼, 한편으로 각자의 시선이라는 전제하에 처음은 알지 못할 가상에 불안해하는 현실로 시작해서 복수를 끝낸 암사자, 메데이아처럼 앉아, 알려고 하지 않는 가상에 흡족해하는 현실로 마무리한다. 그 사이 내용들은 앞서 예시한 ‘reszletek‘처럼 전사반복anadiplosis, 즉 중복되는 단어의 사슬로 음악의 반복계기처럼 연결해놓았고, 그 중간이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라는 소제목에 펼쳐지는, 현실로 들어온 가상의 세계들이다. - P524

한낮의 악마라고도 했던 멜랑콜리 죄 - P526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물에 다시는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지만, 흐르는 강에도 또 그를 건너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그렇게 동일하지 않은 반복, 차이로 굴곡을 이루는 내용은 기시감과 생경함 속에서 널을 뛴다. - P529

이 증상(멜랑콜리)의 근본적인 두 언어는 ‘두려움(공포)‘과 ‘슬픔(실의)‘이라고 했다. - P530

코스모스를 일주하던 벌루시커는 켜켜이 쌓이는 카오스에 그렇게 흘렀다가 멈추고, 얼어붙은 지옥의 카오스를 보고 자신을 벗어난 에스테르는 수없이 움직이는 코스모스를 경험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하모니로 세상의 하모니에 화답하던 벌루시커는 대공의 추종자들 때문에 불협화음조차 몰라 일을 그르치고, 불협화음에 자신을 채찍질하던 에스테르는 포기에 이르러 하모니로 돌아간다. 비록 둘의 정지 상태가 하나는 결박, 하나는 예속으로 다를지라도 ‘상반되는 전쟁, 낮과 밤처럼 그 통일성을 목격‘
하게 된다. 바로크 음악의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 P531

달은 이울었다 차고, 해는 떴다가 지고, 만물은 흐른다니, 광기의 극단이 이성의 극단과 맞닿아 끝까지 밀고 가면 다른 끝에 닿는다니, - P532

‘문제의 해법에만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음‘ - P532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은 음악으로 대신한다‘. -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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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하는 소설 속 상황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혼란‘ 또는 ‘혼돈‘ 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지난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인물 중 한명인 에스테르라는 사람은 ‘혼돈이 진짜 세상의 자연스러운 조건이며 이는 결코 종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의 향방을 예측하는 일은 꿈도 못 꾼다‘(p.395) 는 견해를 피력했었는데,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일들이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사람들은 종종 질서가 있는 것이 정상이고 무질서한 것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인 에스테르는 이러한 경향과는 정반대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찌보면 에스테르의 관점이 오히려 더 타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학분야에서 종종 등장하는 엔트로피 개념이 문득 생각났다. 원래 무질서가 당연한 게 현실의 세상인 것이다. 다만 그러한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시도들은 현실의 혼란을 조금이나마 단순화시켜서 세상을 보려는 인간들의 몸부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예상 못하게, 서로서로가 엄청난 압력에 으깨지고, 시달리고, 물어뜯기고, 조각조각 찢어발겨졌다. 전쟁, 싸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암울한 분쟁,ㅡ벌루시커는 그 자신 앞에 으스러진 풍광을 바라봤다ㅡ각 사건이 달리 말이 필요 없이 자명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러니 놀랄 일은 아무것도 없어, 혼란의 더미 정점을 마무리하듯, 탱크 하나가 갑자기 열두 명가량의 군대를 동반하고 나타났을 때조차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P396

움직임에 방향성은 있으나 목적은 없다는 자가당착의 상황 - P398

모든 일이 그 자연스러운 혼돈 속에 있으니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 P398

그는 ‘공책에 있는 그 남자‘가 아니었다. 그의 ‘운명은 결정된 것도 아니‘거니와 그는, 자신이 ‘사냥꾼‘같은 탱크와 군인들에게 내몰린 ‘사슴‘ 같은 것도 아니라고ㅡ떼는 발자국마다 따라다니는 평행한 비유比喩를 부정하며ㅡ고개를 저었다. - P401

그는 하지만 진행 방향의 선택이 자신의 의지로 결정되지 않은 지가 제법 되었고, 잠재적인 휴식처에 가까이 가기보다 더욱더 멀어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했다. - P401

자꾸 적대적으로 튀어나오는 공책의 문장들이 마음을 어지럽히자, 그는 남아 있는 힘 어디 하나라도 낭비하는 일은 분명 심각한 실수가 될 터이니 그냥 그 공책을 멀리 던져버리기로 결정했다. - P401

‘우리는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모조리 알아.‘ - P402

네가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 그런 뒤 무슨 헛간이든 어디든 피신처를 찾아 들어가, 그런 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알아볼 거야. - P404

‘모든 것은 괜찮아질거야‘ - P405

‘집으로 가‘ - P408

성공하지 않는다면 다시 또다시 용맹하게 나서면 그만이었다. - P411

아무 대안도 남아 있지 않다면 저지선을 뚫기라도 해야 한다 생각했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광장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 그가 없는지, 아니 어쩌면 그가 있는지 알아내러 가야 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가장 나쁜 일, 그가 지금은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하는 가장 끔찍한 가능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확인해야 했다. - P412

공황에 질려 너무 허둥대지 말라고 스스로 타일렀다. 절제력이 급선무다. 그의 심장을 움켜잡는 공포가 그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길은 그가 이제껏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른쪽도 보지 말고 왼쪽도 보지 말고 죽 앞만 보고 가보자, 사실 그랬다. - P412

‘모든 것을 부수고 깨버리고 싶은 끔찍한 충동‘을 극복하고, 자제력을 되찾고, ‘폭력적으로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는 일처럼 ‘일을 그르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 된다. 이후로 상당히 다른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그는 결심했다. - P414

그는 건초 가리에서 바늘이라도 찾을 작정이었다. 그 바늘이 벌루시커라면... - P417

그는 움직이고 싶었다. 기어서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일에 겁을 집어먹었다. 자리를 떠서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진실을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은, 실제로 벌루시커를 그들 사이에서 찾을 길 없더라도,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면상을 곰곰이 짚어보며 거기 서 있는 일보다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 P418

어느 목소리가 ‘하지 마!‘라고 속삭였지만, 그 말을 순순히 따르자마자 다른 목소리가 ‘해!‘라고 속삭였고 - P418

그가 느끼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예전에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것, 다르게 말해서 왼편도 보지 않고 바른편도 보지 않고 오직 발아래 땅에만 눈을 계속 고정하자고 느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는 머리를 들어올렸다. 마치 봉사같이 무작정 헤매고 다니면 어떤 것도 어떻게 해도 절대 구할 수 없다. 마음을 다잡아야한다. 확실성에 직면하는 일을 이렇게 질질 지속적으로 미루는 일은 해악만 더 끼친다고 그는 스스로 타일렀다. 무엇보다도 무의미하기 짝이 없잖은가. - P418

결정을 내린 일은 어느 것이나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이익을 꾀하도록 열과 성의를 있는 힘껏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 P425

어떤 공공건물이든 비상시에는 감옥이나 시체안치소 역할을 할 것이니까. - P426

‘폐허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 P437

그 순간에 그는 그 이야기가 아주 사소한 점까지 사실이었음을 알았다. 현재의 보고가 그가 새벽에 들었던 내용으로 보증됐고, 반대로 새벽의 보고는 어떤 의문의 그림자도 없이 견고하게 새로운 소식을 입증했다. - P448

그는 일어난 모든 일을 선명한 그림으로 조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양한 증인들로부터 정보를 모으고 적절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닫아걸고 오로지 여기만 집중하자, 그리고 몇 문장 뒤에, 현재 목격자, 이웃해 앉았던 거대한 남자는 다름 아닌 서커스 매니저, 아니, 단장이라는 감이 잡혔다. - P449

그는 예상치 못하고 충격적이며 기상천외한 면모가 위대한 예술의 불가피한 한 측면이며, 그러다 보니 혁명적인 ‘참신한‘ 예술적 변화를 마주한 관중이 ‘준비가 안 된‘ 것이나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일도 매한가지 등속이라고 설명했다. - P450

대중은 예상을 뛰어넘는 참신함만큼 크게 쳐주는 것도 없다, 더 참신할수록 더 좋다, 그러지만 그들은 애초에 아주 못마땅해 ‘변덕스럽게‘ 대하던 것들을 다른 한편으로 끝도 한도 없이 게걸스럽게 요구해댄다, - P450

자신으로서는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게 가슴 쓰라리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예술과 그 작품이 향하고 있는 관객들의 부족한 준비 사이에 이미 예견된 갈등은, 괜히 기우의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아주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대단원을 맞을 희망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창조주가 이들을 영원토록 호박琥珀 속에 박아두기라도 한 듯이‘ 일반 대중은 이런 미성숙한 태도에 붙박여 있을 테니까. 그러니 누구든 기상천외 구경거리에 진력을 다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슬픈 종말을 맞게 된다, 슬픈 종말,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단장은 되풀이했다. - P451

행동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 P457

그녀의 과업은 사건의 가능한 진행을 막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최대한 그들이 왕성하게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두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473

모든 세부사항의 시기와 조화 외에도, 성공 여부는 일의 시기에, 즉 가장 중요한 시기를 완벽한 순간에 결정하고, 감지하는 일에 달렸다는 점은 대낮보다 명백한 일이었다. - P476

계획, 사소한 일들, 전체의 조화, - P476

파괴자들이 날뛰고 번성하도록 화를 키운 환경은 ‘전반적인 기율의 부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P478

삶은 전쟁이며 세상은 승자와 패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시하려고 드는 사람들, 그들이 꼭 그러듯이 나태하게 틀어박혀 약골은 운명의 보호를 받으리라는 거짓 환상에 뭉그적대며, ‘신선한 공기는 모두‘ 베개로 틀어막아버리려는 사람들도 같이 쓸어버려야 한다. - P478

요약하자면, 그들은 현실감각 대신에 달달한 신기루에 취해 있다, - P479

하지만 그녀도 물론 ‘생선은 머리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말처럼, 일이 틀어지면 먼저 그 우두머리 탓인 줄은 잘 안다. - P479

보이는 그게 다였다. 더 이상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 두 인물ㅡ정확하게 여덟 시 정각에 도착한 중령, 더이상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던 그녀 자신ㅡ은 완전히 강렬한 열정으로 만났고, 열정은 서로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으며, 두 영혼은 그들의 영원한 결합을 그에 상응하는 ‘육체의 결합‘으로 경축했기 때문이었다. - P483

그녀는 오십이 년 세월을 기다려야 했지만, 헛되지는 않았다. 그 황홀한 밤에 진짜 남자가 그녀에게 ‘몸은 영혼 없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점을 가르쳤기 때문이며, 잠에 떨어지기 전 새벽까지 지속된 그들의 잊을 수 없는 조우는 감각적인 충족만이 아니라ㅡ그날 새벽에 그 단어의 사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ㅡ사랑도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 P483

지난 이 주 동안 지나간 일은 다 묻고 덮어두는 게 최선이라고 수백 번도 되풀이하지 않았던가, 왜냐하면 반드시 되어야 하는 일과 우리가 원하는 일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한 뒤에야 암울한 상황에 처음부터 시작해서 두 번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여론에 호소‘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 P491

‘나는 당신에게 혹은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생각해보았다. - P491

대중은 지도자 없이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신뢰없이 지도자는 무력하다. - P491

어쨌거나 자신이 원할 것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미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앗긴 것들을 되찾았고 그녀가 희망했던 모든 것을 얻었고, 권력, 진짜 최고 권력은 그녀 손안에 있었다. 그녀의 ‘최고의 업적은‘ ‘말 그대로‘ 그녀 품 안에 굴러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 P491

절대 ‘사람들은 선의를 지니고 있다거나 자애로운 신이 있다거나 무슨 선한 힘이 인간사를 책임진다‘와 같은 흔한 착각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다 허튼소리이며 거짓말이라 자신에게 그런 건 먹히지도 않는다. ‘아름다움!‘ ‘동료의식!‘ ‘우리 모두 안의 선의!‘, 참말이지 이건 아니다, 각 단어마다 퉤퉤 뱉듯 던지고, 아무리 시적으로 표현해본다고 해도 그 최선의 표현은, 다만 인간사회는 ‘속 좁은 이기심의 갈늪‘이라는 것이었다. - P506

‘지금은 묵묵히 일만 하고 수레만 끌고 있겠지만, 우리는 곧 당신의 영혼에 작업을 시작할 테니까...‘ - P507

하지만 너무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 에스테르 부인은 스스로를 꾸짖었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 놓인 일, 이를테면 장사 치르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 P507

‘모든 일이 시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가야 하는‘ 이처럼 중차대한 경우에 삐꺽거리는 어떤 차질도 빚어서는 안 된다, - P507

모든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 - P511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진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운명입니다. 문장 끝에 있는 마침표입니다. 오늘 태어난 아이조차 다른 식의 회피를 희망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 P512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 P513

당신의 기백, 당신의 기억, 당신의 기운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영웅적인 전범을 선보였고 우리와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속해 있습니다. 다만 스러진 것은 당신 육체입니다. 당신을 낳아준 이 땅으로 당신을 되돌려 보냅니다. 당신의 뼈가 티끌로 변한다고 울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존재가 여기 우리와 함께 영원히 있으며 오직 당신의 진토만 부패의 일꾼들은 공격할 것이기에.. - P514

부패의 일꾼들은 당분간은 작업의 사슬에서 벗어나 조건들이 바람직하게 바뀔 때까지 휴면기의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조건이 맞아들면 곧바로 중단된 싸움들을 재개할 것이고, 미리 내정된 반박의 여지 없는 무자비한 공격을 하여, 한때 그리고 단 한 번 삶을 산 생명체는 뭐든 해체하여 영원한 죽음의 침묵의 자락 아래 아주 작은 하찮은조각으로 격하시킬 것이다. - P514

불리한 상황은 몇 주 동안, 때론 몇 달은 지속됐다. 말하자면 바깥, 엄밀히, 외부 온도가 너무 낮았고 그 결과, 이미 끝장이 났어야 할 유기체가 바위처럼 단단히 얼었기 때문에 포위자들은 꼼짝없이 무기력에 발이 묶였고, 허물어야 할 요새도 같이 그렇게 단단하게 그 속에서 유예되어 어떤 일도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 - 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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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신장재편판 20 - 북산vs.산왕공고 5 / 완결
이노우에 타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 답게 극적인 승부가 연출된다. 주인공인 강백호는 치명적일 수 있는 등 부위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보여준다. 몸을 사리지 않고 오직 팀의 승리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중간중간에 나왔던 멋진 대사들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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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과 산왕의 쫓고 쫓기는 치열한 승부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경기 종료까지 시간은 2분 안쪽으로 접어든다. 산왕의 도진우 감독은 선수들에게 북산의 선수들을 앞선에서부터 압박할 것을 지시한다. 보통 이런 작전은 지고 있는 팀에서 하기 마련인데, 산왕의 감독은 추격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상대팀을 찍어누르려는 듯하다. 이러한 작전이 가능한 것은 산왕이 평소 체력 훈련을 치열하게 해두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피지컬이 실력이라는 말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지난 19권에서 강백호가 코트 밖으로 나가는 공을 살리려다가 등 부위에 심한 타박상을 입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오늘 20권에서는 이 부위의 통증을 참고 경기를 뛰다가 리바운드와 동시에 덩크를 하는 장면에서 그만 이 등의 통증이 다시 올라오고 만다. 이 부분의 소제목이 ‘천재박명天才薄命‘ 인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강백호의 몸상태가 심상치 않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디 괜찮아야 할텐데 말이다.

통증이 있음에도 강백호는 경기 출전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감독인 안 선생님에게 자신을 투입시켜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이 자신의 영광의 시대라며 강백호가 안 선생님에게 건넨 말은 진짜 명언 중의 명언이었다. 안 선생님은 부상을 입은 강백호의 몸상태를 걱정하면서도 그의 투지를 막을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그를 다시 코트에 투입한다.

코트에 투입된 강백호는 팀의 승리를 위해 투혼을 불사른다. 산왕의 슛을 블로킹하는 것을 비롯해 리바운드, 허슬 플레이, 패스 등 그가 가진 특출난 운동능력이 아니면 하기 힘든 플레이들을 보여준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지난 여름 지독하게 연습했던 슛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결정짓는다. 비록 화려한 덩크슛은 아니었지만 강백호의 골이 경기 종료와 동시에 들어가면서 북산은 그동안 무패행진을 달리던 산왕을 꺾는 이변을 연출한다. 정말 극적이었다. 특별히 마지막 순간에 나온 북산의 득점 장면들은 만화 속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의 눈물샘도 살짝 자극할 정도였으니 뭐 말 다했다.

전국대회 대진표상으론 산왕과의 경기가 2회전이었기에 그 뒤에도 계속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으나, 저자가 이 20권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물론 저자분도 계속해서 치열한 승부를 그려내는데 고충이 있을 것이기에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독자입장에서는 내친김에 전국대회 우승하는 것까지 스토리가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뭐 그래도 치열한 승부의 감동은 20권까지의 내용들로도 어느정도 충족되었다는 생각도 들기에 저자께 감사드린다.

맨 마지막에는 전국대회를 마무리하고 북산 농구부가 세대교체를 이루며 다시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이 나온다. 한편 강백호는 전국대회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재활훈련을 하러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머무르는데, 농구부 매니저로 새롭게 일하게 된 소연이에게 편지로 농구부의 소식을 전해들음과 동시에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겠다는 따뜻한 말도 전해 듣는다. 지루한 재활훈련을 하루하루 하면서도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자신이 천재라는 자부심을 마지막까지 보여주는 강백호의 무한 긍정 에너지가 참 보기 좋았다.

얌전히 달아날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전력 질주다. - P34

드리블이야말로 단신 선수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P35

정면돌파다!! - P43

이 4개월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 P63

지금이 가장 성장할 수 있는 시기다... - P68

슛 연습은 정말 즐거웠다. - P68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난 지금입니다!! - P89

영감님... 간신히 생겼어요. 영감님이 말했던 거.... 단호한 결의라는 것이... - P94

반드시 우승하는거지, 고릴라?! 저 녀석들 따위 통과점에 불과할 뿐이지?! - P100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부턴 마음의 승부다ㅡ얼마나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자신을 믿고 플레이할 수 있는지... 얼마나 갖은 고초를 헤쳐 왔는지를 생각해라. 파이팅. - P129

왼손은 거들 뿐.... - P206

다시 시작하자. 우리가 진 것이 얼마만이냐. 이번 경험은 커다란 재산이 될 것이다. - P232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위가 있다는 걸 잊지 마라. - P241

힘내! 백호야. 이 재활훈련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을테니까ㅡ. - P249

네가 아주 좋아하는 농구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P253

물론! 난 천재니까.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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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절반을 넘어온 시점인데, 어느 순간부턴가 분명히 글을 읽긴 했는데, 한 문장의 길이가 길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독자인 내가 전체적인 맥락을 좀 놓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냥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는데 너무 집중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단지 나의 독서력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일단은 여기까지 온 이상 꾸역꾸역이라도 읽어나가지 않을 수 없다.

독자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위와같은 난감함(?)을 과연 나만 느끼는 건지 아니면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시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이 책에 관해 리뷰를 써주신 분의 글을 읽어보았는데, 그 분도 이 책이 결코 쉽지 않은 책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아,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 같은 마음이랄까?

추가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헝가리 문학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면 헝가리 어가 주는 고유한 맛(?)이 다소 퇴색된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어려운 건 어려운 거고, 중간중간 눈에 띄는 문장들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기에 일단 밑줄을 쳐봤다. 비록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어렵긴 해도 속도가 느릴지언정 일단은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꾸역꾸역이라도 읽어나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독자인 나의 기질 상 시작을 했으면 뭐가 됐든간에 끝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웬만하면 끝까지 가보려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맥락을 잘 모르더라도 좀 더 읽다보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저자의 의도나 메시지 등에 대한 깨달음이 오는 경우들도 있기에 언제 만날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순 없지만 그런 걸 기대하면서 가보고자 한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 - P311

지속할 수 없기에 지속해서는 안 된다. - P312

‘생각은 다 폐기해야지.‘ - P314

‘자진해서 모든 독립적이며 명료한 생각은 마치 해로운 어리석음인 양 폐기할 거야. 더 이상 이성에 진력하는 일도 거부할 거야. 이 순간부터, 말할 수 없이 기쁜 포기의 환희에만 틀어박힐 거야. 딱 거기만 의지해야지‘ - P314

‘더 이상 잘난 척은 않고, 마침내 조용히, 입 벙긋하는 법 없이 조용해져야지. - P314

인간이란 것이 단순히 영원한 불안에 묵종하는 하인이라는 사실이 반드시 환멸이냐 찬탄이냐는 극명한 선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 P315

흡사 유산상속처럼, 이런 광경은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자신을 초월한다는 수용, 그가 지탱할 수 있는 범위만큼만 그가 깨칠 수 있도록 하는 역으로 이례적인 은총을 감수하는 일종의 체념, 일종의 인내였다. - P316

지성과 합리성은 세계의 고통스러운 빈틈이라기보다 부분으로 속한, 세상의 그림자라고 이해했다. 세상의 그림자. 지성은 끝도 없이 들쑤시는 대화 속에 우리의 존재를 조종하는 반사작용들과 동조하여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동조해서 움직여야 한다. 연결되어 움직이는 사건들의 진동에 따라 해석해야 하니까, - P316

자신의 역할을 놓친 사고력이 자신을 사고하는 과정으로 깨달음을 얻는 거지, - P317

하지만 그는 이제껏 그가 매달려 있던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주어야만 했다. 이는 지식은 대대적인 착각 혹은 짜증나는 우울로 이끈다는 자각, 이런 단순한 자각 과정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 P318

잃고 또 잃으면서도 가공의 직위에 고집스레 매달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던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순간에 종말을 고하고, 판단을 내린다는 바보 같은 속박에 종말을 고하고 나니, 현재로는, 마침내 그는 그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 다 끝났다. 모든 것에 종말을 고하자고, 에스테르는 생각했다. - P318

이런 기괴한 저녁에, 그는 실질적으로 그의 이전 삶이 전부 무너져 내리는 시끄러운 우당탕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삶이 이전까지 매분 매초 헤덤비며 다녔던 것처럼ㅡ ‘앞으로‘ 덤비고 무언가 ‘이룩하려‘ 덤비고 ‘달아나려‘ 덤비고 ㅡ점검의 여정을 마치고 나서 그가 망치로 두드려 박은 바로 그 마지막 널판으로 돌아오자, 당연히 그는 그가 헤덤비며 돌진하던 일이 중단됐다고, 그가 다시 되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발이 땅에 착륙했다고, 그 모든 준비 끝에 마침내 마음 든든한 ‘어딘가‘에 도착했다고 여겼다. - P319

신비로웠지만 복잡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순했기 때문에 그 주위의 모든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들의 원래 의미를 되찾았다. - P320

악몽 같은 쓰레기는 마치 ‘구렁텅이라는 이름의 절망‘에서 피어오르는 독에 미혹된 것처럼, 단순히 병든 마음이 본 슬픈 악몽이라고, 무언가 그에게 그렇게 귓속말을 했다. 어두운 예감에 떠돌던 병든 마음이 대상을 찾은 환시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바깥에 축적된 쓰레기는, 사람들이 비이성적이고 혼란스러운 서민들의 공포를 말끔히 지우듯이, 그렇게 종내 말끔히 정리할 수 있는 것들로 여겨도 되리라. - P321

약하게 째깍거리는 손목시계 소리를 알아채자, 갑자기 그가 삶 내내 탈출하고 있었음을, 삶은 지속적인 도피라는, 의미 없는 일에서 음악으로, 음악에서 죄의식으로, 죄의식과 자책감에서 논리적 추론으로의 도피, 마침내 그것에까지 탈출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음을 깨달았다. 운명을 관장하는 그의 수호천사가 교활하게도, 목표에서 반대 방향으로 마치 거의 바보 같은, 단세포적인 환희를 수용하도록, 그를 조종해간 것 같았다. 그 지점에서 어떤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세상에 이유가 있다면 이는 자신의 이해 범위를 훨씬 초월했고, 그러므로 그가 실제로 소유한 것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일로 충분하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지금 잠깐 몇 분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서 집 주변의 벨벳같이 부드러운 윤곽들만 오로지 의식하자, 그는 진짜 ‘사물들의 거의 바보 같은 단순한 환희 속으로‘ 후퇴하는 것이었다. - P322

행복한 기억으로 퍼 올리는 마음의 평정과 다른 점은 다만 계속해서 상기시키려는 분투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들은 존재하기 때문이며, 에스테르의 확신처럼 내리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P323

타블로 : 중세 미술의 벽화에 대조되는 말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판화tabula‘에서 유래했다. 성상이나 제단화가 이에 해당했고, 현대로 와 독립된 회화나 사진작품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며, 흔히는 작중에서처럼 극적인 한 장면을 묘사하는 타블로 비방tableauvivant, ‘활인화‘의 준말로 사용된다. - P326

‘이런 일은 밖에서 했어야지, 이 안에서가 아니라!‘ - P355

옛날 방식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고 느꼈다. - P372

그는 이런 암울한 낯선 마을에 선행했던 일들은 무엇이든,
모조리 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72

‘두 발로 서는 법을 배우더니 모든 것을 이해하는구나‘라고 그를 놀려먹은 말은 이제 쓸모없는 조롱밖에 안 된다고 - P375

전쟁 시기 인간의 법칙보다 더 높은 힘은 없기 때문에 그는 더이상 세상이 ‘황홀한 마법의 장소‘라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 P375

그들이 처음에는 무서웠다는 점을 부정할 수야 없지만 이제는 자신을 그들의 방식에 맞춰나갈 수 있겠다고 느끼고 ‘그들의 삶을 훔쳐볼 특별한 기회를 준 데 감사할 따름‘이다. - P375

우주는 광대하며 지구는 그 안에 든 무척이나 자잘한 점이긴 해도, 그 우주를 움직이는 동력은 궁극적으로 환희라는 착각으로 스스로를 달랬으니, - P375

진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속에 자리를 잡았다 - P376

내가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없어요, - P376

모든 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을 띠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불이 들어올 때 극장에‘ 있는 것과 같아요. - P376

어느 존재도 닿으면 만져지는 존재물entia을 넘어,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고, 어떤 요소도 그 자체를 능가할 수 없는 곳에서 각성한 것 같았다. 혹여 덧붙여 말한다면, 그는 마침내 아무것도, 지구나 그 지층에 흩어진 물체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엄청난 무게를 지닌, 엄청나게 견고한 존재이며, 자신 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의미는 어떤 것도 내포하지 않는다고 마침내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 P377

오직 악에 대한 설명만 있고 선은 없으니, 그러므로 ‘어디에도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으며, 상당히 다른 법칙이, ‘더 큰 힘을 쥐고 있는 권력이 절대적인 권력‘이라는 강자들의 법칙이 지배하는 줄도 안다. 이로부터 어떤 심각한 결론도 내릴 수도 없고, 내려서도 안 된다. - P377

더더군다나 ‘자신의 감정에 노예로 얽매이게 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다‘니 뭐니, 가당찮다, 전혀 아니다, 하고 설명을 했을 터였다. 왜냐하면 생전 처음으로 그는 그 자신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 감정 어느 것도 더 이상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377

그의 머릿속 병든 뇌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그냥 시간이 조금ㅡ진짜 많이는 아니고 조금ㅡ필요하다고, 지금 당장은 머리가 오직 욱신대고, 울려대고 쿵쿵 두드려대고만 있어서 머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는지라, - P377

그저 그에게 억수비처럼 쏟아졌던・・・ 좋은 충고들을 받아들기만 하면 된다고 - P379

벌루시커는 그 집 안락의자에 앉아 얼마나 자주 ‘세상이 착하거나 아름다운 힘의 은혜를 통해 유지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보게나, 이른 환멸에 무너지게 마련이라네‘ 같은 이런저런 말에 귀 기울이며 있었던가. 불과 얼마 전에도 에스테르는 그에게 ‘나를 보게!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사람의 꼴이 딱 이렇다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깨우쳐줬건만,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그는 이런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경고의 말들을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함께 보낸 수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니, 그가 자신의 거듭되는 빛, 우주 공간과 ‘우주의 마법 같은 메커니즘‘에관해 중언부언해도 지겨워하지 않던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 P380

그렇다. 모두 정해졌다. - P381

우리는 모든 거리마다, 광장마다 흘러넘쳤다. 오직 하나의 방향성이 우리를 내몰았고 모든 굽이마다 다시 또다시 허허로운 공포와 참혹을 간구하는 굴종이 우리에게 닥쳤기 때문이었다. - P383

잃을 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었고, 배겨낼 수 없고, 도리를 벗어났기 때문에 어떤 명령도, 하다못해 지시를 내리는 단어조차 없었고, 계산적인 시도도 없고, 모험을 무릅쓸 일도, 어떤 위험도 없었다. - P383

아무리 목 놓아 소리쳐도 우리에게 천천히 내려앉은 침묵의 방대한 장갑裝甲 속에 좁은 틈새 구멍마저도 뚫을 수 없었을 것이다. - P384

정녕 우리를 저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P384

아무것도 새로운 비극의 깨달음, 이제껏 속아왔다는 우리의 감각, 우리 공포의 무의식적 분노를 달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찾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혐오와 절망에 맞아떨어지는 대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똑같은 무한의 격노로 우리는 우리의 도상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 P385

우리는 아무것도 불가능한 것은 없음을 보았고, 모든 일상적인 나날의 지식이 쓸모없음을 확신했고, 끝 간 데 없이 방대한 공간의 오직 반짝하는 순간의 노획품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은 의미가 없음을 이해했다. 순수한 속도의 힘은, 떠돌아다니는 한 점 먼지의 성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까. 운동과 물체는 서로를 전혀 의식할 수 없으니까, 반짝하고 마는 이런 하루살이 위치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방대한 공간 규모는 어림도 잡을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 P386

끓어오르는 피비린내의 욕구가 막을 길 없이 솟구쳤다. 마음이 위험스럽게 가벼워졌다. 현황眩慌한 저항의 박동이 펄떡였다. 모든 것이 도전이었고, 우리가 벗어버려야 하는 숨 막히는 일종의 짐이었다. - P386

하지만 너무 늦었다. 세상 어느 것도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 P387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이 나버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동하고 있는 가차 없는 정의의 전당에서 그들이 숨을 곳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죽어가는 가족, 가정과 집의 깜부기불을 짓밟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그들은 죽을 것이며 ‘피난처‘라는 사람들의모든 생각은 가망이 없고 무용했다. 숨을 자리를 찾는 일은의미가 없고, 미래를 믿는 일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기쁨, 모든 장난기 가득한 웃음, 모든 가짜 결속의 위로와 평온한 가절佳節은 구름이 끼고 도리 없이 섭슬려 사라졌다. - P387

아주 이상하게도. 그들이 희망과 실망의 파도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겠구나 짐작하면 우리는 사나운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P389

우리 앞에 무력하게 흔들리는, 그들을 위해 준비된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조차 못하는 외로운 세 영혼을 보는 씁쓰레하고 악랄한 즐거움은 박살이 난 마을의 광경으로 발하는 마법 주술의 매력까지 압도했고, 우리 발밑에 짓밟았던 소용없는 모든 허접쓰레기 조각들이 불러일으키던 만족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던졌다. 그런 영구적인 망설임 속에서, 그런 유예된, 관능적인 연기 속에서, 그 지옥같이 길어지는 지연 속에서, 뒤틀리고 신비로운 고대의 시큼한 향취를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 P390

‘저기 바깥에 진행되고 있는 전쟁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라가는 밤으로부터 깨어나는 일만이 무자비한 사람에게 보람 있는 일이다‘ - P395

어떤 규칙도 없는 갈등으로 모두들 바쁜 곳의 전쟁, 한쪽이 계속해서 다른 쪽에 공세를 취하고, 승리 외에 어떤 목적도 똑같이 소용없는 곳에서의 전쟁이었다. - P395

싸움, 왜냐고, 어떤 이유도 찾아 헤매지 않는 사람만, 모든 일에 설명 하나 없더라도 여전히 기꺼이ㅡ그리고 여기서 그는 대공의 충고를 기억했다ㅡ왜냐하면 그저 설명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묵인하고 체념하는 사람들만,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버틸 수 있는 투쟁이었다. 이 점을 깨닫고 나자, 그는 에스테르가 혼돈이 진짜 세상의 자연스러운 조건이며 이는 결코 종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의 향방을 예측하는 일은 꿈도 못 꾼다고 하던 견해가 정말 타당했다고 수긍했다. - P395

시도하고 자시고 할 가치도 없지, 벌루시커는 생각했고 차가운 장화 안쪽의 아파오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예상하는 일만큼이나 판단하는 일도 무의미하고, ‘혼돈‘과 ‘결과‘라는 단어조차 완전히 군더더기이고, 이들의 대립 쌍으로 상정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말하자면, 서로의 꼭대기로 던져져, 올라가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명명된 이름 자체도 싹 지워진다. 그렇게 그들의 의미는 그 자체 내부의 비율에 따라 물어뜯고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모든 관계는 혼돈스럽게 뒤섞여 적대적으로 된다. - P396

‘어떻게 그 속에 든 무엇이든 서로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지‘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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