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 - P311
지속할 수 없기에 지속해서는 안 된다. - P312
‘자진해서 모든 독립적이며 명료한 생각은 마치 해로운 어리석음인 양 폐기할 거야. 더 이상 이성에 진력하는 일도 거부할 거야. 이 순간부터, 말할 수 없이 기쁜 포기의 환희에만 틀어박힐 거야. 딱 거기만 의지해야지‘ - P314
‘더 이상 잘난 척은 않고, 마침내 조용히, 입 벙긋하는 법 없이 조용해져야지. - P314
인간이란 것이 단순히 영원한 불안에 묵종하는 하인이라는 사실이 반드시 환멸이냐 찬탄이냐는 극명한 선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 P315
흡사 유산상속처럼, 이런 광경은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자신을 초월한다는 수용, 그가 지탱할 수 있는 범위만큼만 그가 깨칠 수 있도록 하는 역으로 이례적인 은총을 감수하는 일종의 체념, 일종의 인내였다. - P316
지성과 합리성은 세계의 고통스러운 빈틈이라기보다 부분으로 속한, 세상의 그림자라고 이해했다. 세상의 그림자. 지성은 끝도 없이 들쑤시는 대화 속에 우리의 존재를 조종하는 반사작용들과 동조하여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동조해서 움직여야 한다. 연결되어 움직이는 사건들의 진동에 따라 해석해야 하니까, - P316
자신의 역할을 놓친 사고력이 자신을 사고하는 과정으로 깨달음을 얻는 거지, - P317
하지만 그는 이제껏 그가 매달려 있던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주어야만 했다. 이는 지식은 대대적인 착각 혹은 짜증나는 우울로 이끈다는 자각, 이런 단순한 자각 과정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 P318
잃고 또 잃으면서도 가공의 직위에 고집스레 매달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던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순간에 종말을 고하고, 판단을 내린다는 바보 같은 속박에 종말을 고하고 나니, 현재로는, 마침내 그는 그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 다 끝났다. 모든 것에 종말을 고하자고, 에스테르는 생각했다. - P318
이런 기괴한 저녁에, 그는 실질적으로 그의 이전 삶이 전부 무너져 내리는 시끄러운 우당탕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삶이 이전까지 매분 매초 헤덤비며 다녔던 것처럼ㅡ ‘앞으로‘ 덤비고 무언가 ‘이룩하려‘ 덤비고 ‘달아나려‘ 덤비고 ㅡ점검의 여정을 마치고 나서 그가 망치로 두드려 박은 바로 그 마지막 널판으로 돌아오자, 당연히 그는 그가 헤덤비며 돌진하던 일이 중단됐다고, 그가 다시 되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발이 땅에 착륙했다고, 그 모든 준비 끝에 마침내 마음 든든한 ‘어딘가‘에 도착했다고 여겼다. - P319
신비로웠지만 복잡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순했기 때문에 그 주위의 모든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들의 원래 의미를 되찾았다. - P320
악몽 같은 쓰레기는 마치 ‘구렁텅이라는 이름의 절망‘에서 피어오르는 독에 미혹된 것처럼, 단순히 병든 마음이 본 슬픈 악몽이라고, 무언가 그에게 그렇게 귓속말을 했다. 어두운 예감에 떠돌던 병든 마음이 대상을 찾은 환시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바깥에 축적된 쓰레기는, 사람들이 비이성적이고 혼란스러운 서민들의 공포를 말끔히 지우듯이, 그렇게 종내 말끔히 정리할 수 있는 것들로 여겨도 되리라. - P321
약하게 째깍거리는 손목시계 소리를 알아채자, 갑자기 그가 삶 내내 탈출하고 있었음을, 삶은 지속적인 도피라는, 의미 없는 일에서 음악으로, 음악에서 죄의식으로, 죄의식과 자책감에서 논리적 추론으로의 도피, 마침내 그것에까지 탈출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음을 깨달았다. 운명을 관장하는 그의 수호천사가 교활하게도, 목표에서 반대 방향으로 마치 거의 바보 같은, 단세포적인 환희를 수용하도록, 그를 조종해간 것 같았다. 그 지점에서 어떤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세상에 이유가 있다면 이는 자신의 이해 범위를 훨씬 초월했고, 그러므로 그가 실제로 소유한 것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일로 충분하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지금 잠깐 몇 분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서 집 주변의 벨벳같이 부드러운 윤곽들만 오로지 의식하자, 그는 진짜 ‘사물들의 거의 바보 같은 단순한 환희 속으로‘ 후퇴하는 것이었다. - P322
행복한 기억으로 퍼 올리는 마음의 평정과 다른 점은 다만 계속해서 상기시키려는 분투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들은 존재하기 때문이며, 에스테르의 확신처럼 내리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P323
타블로 : 중세 미술의 벽화에 대조되는 말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판화tabula‘에서 유래했다. 성상이나 제단화가 이에 해당했고, 현대로 와 독립된 회화나 사진작품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며, 흔히는 작중에서처럼 극적인 한 장면을 묘사하는 타블로 비방tableauvivant, ‘활인화‘의 준말로 사용된다. - P326
‘이런 일은 밖에서 했어야지, 이 안에서가 아니라!‘ - P355
옛날 방식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고 느꼈다. - P372
그는 이런 암울한 낯선 마을에 선행했던 일들은 무엇이든, 모조리 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72
‘두 발로 서는 법을 배우더니 모든 것을 이해하는구나‘라고 그를 놀려먹은 말은 이제 쓸모없는 조롱밖에 안 된다고 - P375
전쟁 시기 인간의 법칙보다 더 높은 힘은 없기 때문에 그는 더이상 세상이 ‘황홀한 마법의 장소‘라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 P375
그들이 처음에는 무서웠다는 점을 부정할 수야 없지만 이제는 자신을 그들의 방식에 맞춰나갈 수 있겠다고 느끼고 ‘그들의 삶을 훔쳐볼 특별한 기회를 준 데 감사할 따름‘이다. - P375
우주는 광대하며 지구는 그 안에 든 무척이나 자잘한 점이긴 해도, 그 우주를 움직이는 동력은 궁극적으로 환희라는 착각으로 스스로를 달랬으니, - P375
진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속에 자리를 잡았다 - P376
내가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없어요, - P376
모든 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을 띠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불이 들어올 때 극장에‘ 있는 것과 같아요. - P376
어느 존재도 닿으면 만져지는 존재물entia을 넘어,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고, 어떤 요소도 그 자체를 능가할 수 없는 곳에서 각성한 것 같았다. 혹여 덧붙여 말한다면, 그는 마침내 아무것도, 지구나 그 지층에 흩어진 물체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엄청난 무게를 지닌, 엄청나게 견고한 존재이며, 자신 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의미는 어떤 것도 내포하지 않는다고 마침내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 P377
오직 악에 대한 설명만 있고 선은 없으니, 그러므로 ‘어디에도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으며, 상당히 다른 법칙이, ‘더 큰 힘을 쥐고 있는 권력이 절대적인 권력‘이라는 강자들의 법칙이 지배하는 줄도 안다. 이로부터 어떤 심각한 결론도 내릴 수도 없고, 내려서도 안 된다. - P377
더더군다나 ‘자신의 감정에 노예로 얽매이게 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다‘니 뭐니, 가당찮다, 전혀 아니다, 하고 설명을 했을 터였다. 왜냐하면 생전 처음으로 그는 그 자신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 감정 어느 것도 더 이상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377
그의 머릿속 병든 뇌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그냥 시간이 조금ㅡ진짜 많이는 아니고 조금ㅡ필요하다고, 지금 당장은 머리가 오직 욱신대고, 울려대고 쿵쿵 두드려대고만 있어서 머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는지라, - P377
그저 그에게 억수비처럼 쏟아졌던・・・ 좋은 충고들을 받아들기만 하면 된다고 - P379
벌루시커는 그 집 안락의자에 앉아 얼마나 자주 ‘세상이 착하거나 아름다운 힘의 은혜를 통해 유지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보게나, 이른 환멸에 무너지게 마련이라네‘ 같은 이런저런 말에 귀 기울이며 있었던가. 불과 얼마 전에도 에스테르는 그에게 ‘나를 보게!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사람의 꼴이 딱 이렇다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깨우쳐줬건만,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그는 이런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경고의 말들을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함께 보낸 수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니, 그가 자신의 거듭되는 빛, 우주 공간과 ‘우주의 마법 같은 메커니즘‘에관해 중언부언해도 지겨워하지 않던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 P380
우리는 모든 거리마다, 광장마다 흘러넘쳤다. 오직 하나의 방향성이 우리를 내몰았고 모든 굽이마다 다시 또다시 허허로운 공포와 참혹을 간구하는 굴종이 우리에게 닥쳤기 때문이었다. - P383
잃을 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었고, 배겨낼 수 없고, 도리를 벗어났기 때문에 어떤 명령도, 하다못해 지시를 내리는 단어조차 없었고, 계산적인 시도도 없고, 모험을 무릅쓸 일도, 어떤 위험도 없었다. - P383
아무리 목 놓아 소리쳐도 우리에게 천천히 내려앉은 침묵의 방대한 장갑裝甲 속에 좁은 틈새 구멍마저도 뚫을 수 없었을 것이다. - P384
정녕 우리를 저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P384
아무것도 새로운 비극의 깨달음, 이제껏 속아왔다는 우리의 감각, 우리 공포의 무의식적 분노를 달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찾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혐오와 절망에 맞아떨어지는 대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똑같은 무한의 격노로 우리는 우리의 도상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 P385
우리는 아무것도 불가능한 것은 없음을 보았고, 모든 일상적인 나날의 지식이 쓸모없음을 확신했고, 끝 간 데 없이 방대한 공간의 오직 반짝하는 순간의 노획품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은 의미가 없음을 이해했다. 순수한 속도의 힘은, 떠돌아다니는 한 점 먼지의 성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까. 운동과 물체는 서로를 전혀 의식할 수 없으니까, 반짝하고 마는 이런 하루살이 위치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방대한 공간 규모는 어림도 잡을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 P386
끓어오르는 피비린내의 욕구가 막을 길 없이 솟구쳤다. 마음이 위험스럽게 가벼워졌다. 현황眩慌한 저항의 박동이 펄떡였다. 모든 것이 도전이었고, 우리가 벗어버려야 하는 숨 막히는 일종의 짐이었다. - P386
하지만 너무 늦었다. 세상 어느 것도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 P387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이 나버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동하고 있는 가차 없는 정의의 전당에서 그들이 숨을 곳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죽어가는 가족, 가정과 집의 깜부기불을 짓밟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그들은 죽을 것이며 ‘피난처‘라는 사람들의모든 생각은 가망이 없고 무용했다. 숨을 자리를 찾는 일은의미가 없고, 미래를 믿는 일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기쁨, 모든 장난기 가득한 웃음, 모든 가짜 결속의 위로와 평온한 가절佳節은 구름이 끼고 도리 없이 섭슬려 사라졌다. - P387
아주 이상하게도. 그들이 희망과 실망의 파도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겠구나 짐작하면 우리는 사나운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P389
우리 앞에 무력하게 흔들리는, 그들을 위해 준비된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조차 못하는 외로운 세 영혼을 보는 씁쓰레하고 악랄한 즐거움은 박살이 난 마을의 광경으로 발하는 마법 주술의 매력까지 압도했고, 우리 발밑에 짓밟았던 소용없는 모든 허접쓰레기 조각들이 불러일으키던 만족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던졌다. 그런 영구적인 망설임 속에서, 그런 유예된, 관능적인 연기 속에서, 그 지옥같이 길어지는 지연 속에서, 뒤틀리고 신비로운 고대의 시큼한 향취를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 P390
‘저기 바깥에 진행되고 있는 전쟁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라가는 밤으로부터 깨어나는 일만이 무자비한 사람에게 보람 있는 일이다‘ - P395
어떤 규칙도 없는 갈등으로 모두들 바쁜 곳의 전쟁, 한쪽이 계속해서 다른 쪽에 공세를 취하고, 승리 외에 어떤 목적도 똑같이 소용없는 곳에서의 전쟁이었다. - P395
싸움, 왜냐고, 어떤 이유도 찾아 헤매지 않는 사람만, 모든 일에 설명 하나 없더라도 여전히 기꺼이ㅡ그리고 여기서 그는 대공의 충고를 기억했다ㅡ왜냐하면 그저 설명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묵인하고 체념하는 사람들만,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버틸 수 있는 투쟁이었다. 이 점을 깨닫고 나자, 그는 에스테르가 혼돈이 진짜 세상의 자연스러운 조건이며 이는 결코 종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의 향방을 예측하는 일은 꿈도 못 꾼다고 하던 견해가 정말 타당했다고 수긍했다. - P395
시도하고 자시고 할 가치도 없지, 벌루시커는 생각했고 차가운 장화 안쪽의 아파오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예상하는 일만큼이나 판단하는 일도 무의미하고, ‘혼돈‘과 ‘결과‘라는 단어조차 완전히 군더더기이고, 이들의 대립 쌍으로 상정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말하자면, 서로의 꼭대기로 던져져, 올라가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명명된 이름 자체도 싹 지워진다. 그렇게 그들의 의미는 그 자체 내부의 비율에 따라 물어뜯고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모든 관계는 혼돈스럽게 뒤섞여 적대적으로 된다. - P396
‘어떻게 그 속에 든 무엇이든 서로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지‘ - P3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