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플라우프 요제프 부인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이 나왔었다. 이후 저자는 ‘부패의 일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기 시작하는데, 오늘 읽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과학분야에서 각종 화학반응 및 생물반응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전문 용어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독자인 나는 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것을 보며 저자가 자신의 과학관련 지식 수준이 꽤나 높다는 것을 어느정도는 과시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시체의 부패과정을 이렇게 까지 상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만약 독자분들 중에 과학관련 지식들이 비교적 풍부한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분들은 오히려 이 부분을 흥미롭게 읽어나가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배경지식으로라도 끝까지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애쓰다보니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읽었던 칼 세이건의《코스모스》가 문득 생각났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핵심은 모든 것이 먼지처럼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오늘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묘사한 것도 바로 이와같은 것이었다. 우리 몸을 구성하던 원자들이 산산조각나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처음엔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생소한 과학 용어들이 왜 이리 많이 나오는가 하는 의구심이 많았지만, 이런 교훈을 알고나서 다시 돌아보니 원자를 좀 더 세부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표현의 일부로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배경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표현의 방식도 좀 더 다양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막상 쓰고보니 너무 당연한 말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늘 본문을 통해 이 당연한 말의 의미를 좀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완전한 정체가 전쟁터에 널리 퍼졌고, 그 시체는 안정적인 밀랍, 내용 없는 존재, 시간의 유일한 공백으로 바뀌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멈춰버렸다. 그런 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깨어나서, 시체는 얼음의 억류에서 탈출했고, 다시 한번 공격은 한층 사납게 덤벼들라며 지휘에 나섰다. - P515

근육 단백질에서 저항할 수 없는 일방적인 이화작용의 대사가 축적되고, 아데노신트리포스페이트 분해효소는 일반 에너지 수준의 중심 요새, ATP 공격을 계속하고, 이 결과 결합 분할에서 에너지가 나와, 상당히 방어가 어려운 요새에서, ATP의 영향을 받는 액토미오신 결합 변환과 연결되어, 자연적으로 근육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지속적인 분해로 당연히 아데노신트리포스페이트가 감소되지만 산화 혹은 당분해로 에너지 공급원을 충당할 수 없었고 재합성의 완전 부재로, 재고는 고갈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축적된 젖산의 동시다발적 협력으로, 근육의 수축은 사후강직이 물려받게 되었다. - P515

중력의 법칙에 따라 피는 수집 네크워크의 가장 낮은 지점에 모이게 되고, 공격의 주요 목표가 되어ㅡ적어도 최종 절멸의 패배까지ㅡ핏속 피브린 내용물에 두 갈래의 공격을 마주하게 되었다. - P515

첫 번째 공격의 단계에서 포위공격 발효되기 전부터 심혈관계를 순환하고 있던 피브리노겐은 이미 활성화된 트롬빈으로 두 쌍의 펩티드를 잃었고, 그 결과 곳곳에서 형성된 피브린 분자는 서로 결합해 상당히 저항성 높은 핏덩이로 엉겨 붙었다. 이들의 어떤 것도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죽음과 관련된 무산소증의 반란에 따라 플라스미노겐이 플라스민으로 활성화돼서 피브린 사슬들을 폴리펩티드로 쪼갰기 때문이었다. - P515

그래서 전투는ㅡ이제는 다른 방향에서 피브린 분해 특성을 지닌 엄청난 물량으로 아드레날린이 공격해대어ㅡ판세를 뒤집어 혈액이 흐르게 되었고, 지혈에 대항하라고 위임된 부대들은 신속하고 확고한 성공을 다졌다. 이들은 어떻게 덩어리를 어렵사리, 더욱 중요하게는, 두말할 필요 없이 훨씬 천천히 형성했고, 그래도 남아 있던 용액 상태 매질로 임무, 그러니까 임박한 다음 단계, 적혈구의 제거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 P516

액체를 담아두는 조직의 능력이 현격하게 소실되어 세포 내 물질은 주요 정맥을 따라 느슨한 조직들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 결과 혈구들의 막도 투과성이 높아져, 혈색소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혈색을 띠던 요소들은 적혈구들을 떠나, 저항능력을 잃은 용액들과 섞여들고, 이후 조직들을 통해 스며나가 혈색으로 물들였고, 파괴의 무자비한 무력들이 또다른 중요한 승리를 확보했다. - P516

이런 잘 조화된 군사작전의 전선들 뒤에, 근육과 혈액의 전방위 공격과 동시에, 죽음의 바로 그 순간에, 한때 경이로웠으나 이제는 무력한 왕국의 내부 반대세력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진군의 어떤 장애물도 이런 탄수화물이니, 지방이니, 특히나 한때 아무도 흉내 못 내는 우아한 메커니즘의 단백질도 모조리 쓰러뜨리며 ‘궁정 쿠데타‘와 상당히 비슷하게 괴멸시켰다. 이른바 발효된 세포ㅡ조직으로 이뤄진 부대와, 사후자가분해라고 알려진 형태의 군사작전을 펼치지만, 이런 어쨌든 공평무사해 보이는 명칭은 단지 사건의 슬픈 상태의 본질을 흐릴 뿐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는 ‘아랫사람들의 봉기‘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 P517

궁정 혁명(쿠데타). 보통 지도층 내부, 측근, 2인자에 의한 비폭력적인 체제나 권력의 전복을 일컫는다. - P516

모반을 일으킨 하인들은, 유기체가 여전히 든든한 요새의 삶으로 부산할 때조차 완전히 억제체제를 배치하여 계속 억누르고 있어야만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들이, 제국의 곡창에 들어갈 식량들을 부수고 준비하는 일에 제한됐어야하는 역할이건만, 지정된 임무의 한도를 툭하면 넘으려 들거나 그들이 섬겨야 할 바로 그 모체를 공격하는 일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삼엄한 경계와 감시하에서만 활용해왔었다. - P517

단백질을 분해하는 단백분해효소들이란, 원래는 펩티드 결합을 부숴, 단백질 영양분의 가수분해를 촉매 작용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이 중 위에서 활동하는 펩신이라는 효소는 강력한 뮤신의 활동으로 염산과 더불어 위의 단백질성 구성 물질을 몰살하지 못하도록 저지되고 있었다. - P517

탄수화물과 지방도 거의마찬가지 신세라서 여기서는 NADP와 코엔자임ㅡA가 한쪽에서 지질분해효소와 지방산 탈수소효소가 다른 쪽에서 억제제 부대의 관리하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들 없이는 어떤 것도 파괴를 위해 동맹을 맺고 통제를 벗어난 효소들이 조직을 파괴해나가는 일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들을 늦출 것도 없었고, 물론 아무 저항도 없었다. 그래서 우호적인 기온의 시작과 함께 가장 최적의 장소에서 ‘최측근 반란‘은 이미 발발했고, 아니 지속됐고, 위장 점막에 있던 정맥의 피가 산酸헤마틴으로 변해 위장 벽을 군데군데 녹였고, 그래서 주로 염산과 펩신을 기반으로 이뤄진 군대는 복강내 동맹국들에 대항해 공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 P518

하인배 효소 특수부대의 노력의 결과로 간 내 글리코겐은 단순한 분자들로 분해됐고 또한 췌장의 자기분해가 뒤따랐다. 자기분해, 꼬리를 감춘 진실에 가차 없는 빛을 던지는 단어,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그 속에 자체 파괴의 씨앗을 담고 다니고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산소의 공급 때문에 오직 천천히만 진행할 수 있지만, 부패는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즉 유기체 내 질소 함유화합물들은 미생물의 발효가 이런 단백질 분해의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 P518

미생물들이 곧 최전방 부대들과 협공하며, 엄청난 숫자로 온상을 이루던 장들 속에서 작전을 시작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 그들은 전체 왕국 너머로 그들의 지배를 뻗쳐나갈 수도 있게 되었다. - P518

몇몇 혐기성 미생물과 별도로, 포열은 주로 호기성 부패균들로 이뤄졌다. 하지만 그들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부대를 열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것이다. 왜냐하면, 프로테우스 불가리스, 수브틸리스 메센테리쿠스, 파이오사이네오우스, 사르키나 플라바, 그리고 스트렙토코커스 파이오게네스를 포함해 세균 종류도 다양하지만, 엄청난 양의 미생물이 결정적인 전투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충돌은 가장 먼저 피부 아래 혈관에서 일어났고, 그런 뒤 복벽들에서 비롯되어 사타구니, 나중에는 갈비뼈 사이에서 쇄골 아래와 위 수로 속으로 퍼졌으며, 여기서 부패의 과정에서 생성된 황화수소가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되어 한편으로 베르도글로빈을 생성하고 혈색소 속에 함유됐던 철분과 결합해, 한편으로 황산제일철을 생성했고 이런 일들은 이후로 근육과 내부 장기 전체로 번져나갔다. - P519

다시 중력의 힘 덕분에, 색깔을 내는 피를 함유하는 체액들은 계속 분해되고 있는 조직들에 차분히 스며들어갔으며 이런 기본 구성 재료들의 느린 탈출은 이들이 피부에 이를 때까지 지속됐고, 이후 이 지점에서 더욱 깊숙한 곳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 P519

계속 전개되는 이종 용해에 클로스트리듐 페르프린젠스라는 혐기성 미생물의 위업이 병행됐다. 이들은 새로운 시작 초창기부터 장 속에서 급속하게 자라던 아주 효과적인 박테리아인데, 배와 혈관 바깥에서 그 외부작전을 시작했지만 곧 재빨리 전체 시스템으로 퍼졌고, 심방과 심실에, 폐의 늑막 아래로 물집을 만들고, 썩어가는 피부에 부풀기 시작한 수포의 생성에도 상당히 기여했고, 이렇게 부푼 피부들은 결국에는 벗겨져 나갔다. - P519

한때는 어느것에도 끄떡없던 단백질의 왕국이, 처음에는 그렇게 복잡한 외관에도 아주 사리에 맞아떨어지게 작동하던 세상이 이제는 거의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 단백질성 펩톤들, 뒤를 이어 아미도 그룹, 질소성과 비질소성 방향족 물질, 마침내 유기 지방산이 분해됐고, 이들로부터 개미산, 초산, 낙산, 길초산, 팔미트산, 스테아르산 등의 각종 산과 수소, 질소와 물 같은 몇몇 비유기적 최종 산물이 만들어졌다. - P520

땅속에 있던 아질산균과 질산균의 도움으로 암모니아는 아질산으로 산화됐고, 염류의 형태로, 식물의 좁은 뿌리를 타고 올라서 그들이 나왔던 세상으로 돌아갔다. - P520

분해된 탄수화물 중 일부는 이산화탄소로 공기 중에 녹아들어갔고 그래서ㅡ이론적으로는 적어도ㅡ그들은, 한 차례, 광합성에 참여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양하고 섬세한 가닥들을 따라 모든 것을 유기적 그리고 비유기적 존재로 깔끔하게 가르며, 상위 유기체에게 회수될 수도 있었다. - P520

기나긴 저항 끝에, 결합조직, 연골 그리고 마지막으로 뼈가 희망 없는 몸부림을 포기했을 때, 겹겹으로 강화됐던 요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원자는 하나도 잃지 않았다.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비록 어떤 점원도 모든 구성성분의 물품 목록을 만들 수없기는 해도 오롯이 거기 있었다. 하지만 한때 한때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딱 한 번만 존재했던 왕국은 영원히 사라졌다. 질서의 결정結晶들이 존속하는 내부의 끝없는 혼돈, 사물들 간의 저지할 수 없는 무심한 교통으로 이뤄진 혼돈의 운동량에 의해 극소의 조각들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이는 제국을 탄소, 수소, 질소와 황으로 바수었고, 이로써 섬세한 섬유들은 조각들로 부서지고 흩어지고 소멸했다. - P520

어디 헤아릴 수 없이 머나먼 명령이 집어삼켰기 때문이고, 이 책 역시 여기, 지금 마지막 마침표에서, 마지막 단어 뒤에 갉아먹힐 것이다. - P521

화성 음악 이전, 다성부 음악처럼 꼭 붙어서 또 따로 떨어져 진행되는 소설의 두 축, 에스테르와 벌루시커 - P523

파편들의 경구로만 남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 중에 "전쟁은 같이 참가하는 것이며 대립은 정의이고, 모든 것은 (대립에 따라) 지나가기 마련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 P523

‘모든 것은 흐른다‘ - P523

작가의 데뷔작 《사탄탱고》는 ‘용수철 공책‘처럼, 혹은 무한히 닫힌 원처럼 시작해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붙어 있지만, 《저항의 멜랑콜리》는 현실이라는 껍질에 가상이라는 알맹이, 이성이라는 표지로 겉을 싸고 광기라는 내용물로 가운데를 기웠다. - P524

소설은 프라하의 봄이 있었던 1968년 이후, 인류의 달 착륙 이후 70년대 초, 어느 평범한 부인의 불안한 삶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불안의 극단적 현실로 끝을 맺는다. 다른 성부의 음악처럼, 한편으로 각자의 시선이라는 전제하에 처음은 알지 못할 가상에 불안해하는 현실로 시작해서 복수를 끝낸 암사자, 메데이아처럼 앉아, 알려고 하지 않는 가상에 흡족해하는 현실로 마무리한다. 그 사이 내용들은 앞서 예시한 ‘reszletek‘처럼 전사반복anadiplosis, 즉 중복되는 단어의 사슬로 음악의 반복계기처럼 연결해놓았고, 그 중간이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라는 소제목에 펼쳐지는, 현실로 들어온 가상의 세계들이다. - P524

한낮의 악마라고도 했던 멜랑콜리 죄 - P526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물에 다시는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지만, 흐르는 강에도 또 그를 건너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그렇게 동일하지 않은 반복, 차이로 굴곡을 이루는 내용은 기시감과 생경함 속에서 널을 뛴다. - P529

이 증상(멜랑콜리)의 근본적인 두 언어는 ‘두려움(공포)‘과 ‘슬픔(실의)‘이라고 했다. - P530

코스모스를 일주하던 벌루시커는 켜켜이 쌓이는 카오스에 그렇게 흘렀다가 멈추고, 얼어붙은 지옥의 카오스를 보고 자신을 벗어난 에스테르는 수없이 움직이는 코스모스를 경험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하모니로 세상의 하모니에 화답하던 벌루시커는 대공의 추종자들 때문에 불협화음조차 몰라 일을 그르치고, 불협화음에 자신을 채찍질하던 에스테르는 포기에 이르러 하모니로 돌아간다. 비록 둘의 정지 상태가 하나는 결박, 하나는 예속으로 다를지라도 ‘상반되는 전쟁, 낮과 밤처럼 그 통일성을 목격‘
하게 된다. 바로크 음악의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 P531

달은 이울었다 차고, 해는 떴다가 지고, 만물은 흐른다니, 광기의 극단이 이성의 극단과 맞닿아 끝까지 밀고 가면 다른 끝에 닿는다니, - P532

‘문제의 해법에만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음‘ - P532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은 음악으로 대신한다‘. -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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