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선지자 나단이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2:1-4) 나는 나단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개했다. 세상에 그런 나쁜 사람이있나 싶어 나단에게 말했다.
"주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한다." (사무엘하 12:5-6) 내가 그 부자의 행동에 대해 분개하자 나단은 큰 소리로 호통을 치듯 나에게 말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 P203
그러자 나단은 이어서 말했다.
"주님이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업신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하였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하 12:7-10)
순간 뜨끔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주님의 경고에 나의 몸은 얼음장같이 되어버렸다. - P204
나단은 계속하여 엄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주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일을 하겠다" (사무엘하 12:11-12)
나의 모든 불의가 들통이 났고, 창피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나단의 그 매서운 눈초리에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 P204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내가 저지른 죄악을 떠올렸다. 무소부재의 지존자 되시는 주님을 나의 작은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했다니, 주님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하고 괴로울 뿐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나의 악행을 회개하며 자백하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주님이여, 내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지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51편 일부) - P205
나는 주님께 반역죄를 저지른 놈이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주님께 회개했다. 주님께서 나로부터 얼굴을 돌리시는 날, 나는 살았으나 죽은 자와 다름없다는 것을 안다. 용서와 구원은 주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를 지켜보았던 나단은 나에게 말했다. "주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사무엘하 12:13-14) - P206
나는 내 영을 새롭게 해주신 주님의 용서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피할 수는 없음을 직감했다. 실제로 당시에 나단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은 훗날 모두 이루어졌다. 모두 나의 악행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나의 귓속에서 맴돌았던 말이있다.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업신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사무엘하 12:9) - P206
업신여긴다는 것을 히브리 원어적으로 ‘발로 짓밟다, 멸시하다, 경멸하다‘ 란 뜻을 내포한다. 나는 주님의 마음을 구둣발로 휴지 조각을 짓이겨 버리듯 했던 것이다. 당신이 친구에게 인격적으로 짓밟혔다고 가정해보라. 당신은 그 친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당장 원수가 되거나, 절교를 선언할 것이다. 다시는 얼굴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이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바로 주님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한 것이다. 분노가 넘치게 한 것이다. 주님은 나에게 모독을 당하셨다. 나는 나의 심벌인 인테그리티를 스스로 산산조각낸 어리석은 자였다. - P207
"그 뒤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름다운 누이가 있는데, 이름은 다말이었다. 그런데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였다."(사무엘하 13:1) - P210
죄를 지으면 즉시 회개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물론 회개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짓지 않도록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의 주목과 주시를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 죄를 지을 가능성에도 더 많이 노출된다. 게다가 지도자가 죄를 짓게 되면 가정은 물론 온 나라의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다. - P210
사람들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막 살아버리거나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마약 등으로 인생을 허비하곤 하는 것이다. - P216
누구나 사랑은 갈구한다. 그 간절함이 크기에, 사랑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대부분은 극심한 좌절을 겪으며 인생을 포기하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 자녀들 중에도 아버지의 방임으로 인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이 있고,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을 마감한 아들이 있다. 설사 그렇게 폐인이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로버트 링컨과 같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케이스가 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국가 지도자라고 해서 자녀교육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식농사에 실패한 나로서 이 사실은 내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만드는 것 같다. - P218
나는 이 한번의 포옹으로 부자간의 앙금을 깨끗이 씻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한 오산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압살롬은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그는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기는커녕 이때부터 모반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반을 실천에 옮길 준비를 차곡차곡 해 나갔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와의 관계회복보다 중요한 것은 왕자의 권위를 되찾는 것이었다. - P221
4년이 지난 어느날, 압살롬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버젓이 내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거짓인 줄 몰랐다.
"아버님 제가 헤브론에 다녀오겠습니다." 헤브론에는 갑자기 가려고 하는 이유라도 있느냐? "예, 제가 아버지를 피해 그 땅에 머물고 있을 때 서원한 것이 하나있습니다." "무슨 서원을 했는지 말해주겠니?" "주님께서 저를 예루살렘에 다시 보내주시기만 하면, 제가 헤브론에가서 주님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니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그럼 잘 다녀오게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런 의심를 하지 않았기에 압살롬을 헤브론에 다녀오도록 허락했다. 더군다나 예배를 드린다는데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이기적 본심을 속이고 신앙의 명분으로 다가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홀딱 넘어갈 때가 있다. 오늘날도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고 들었다. 나는 압살롬의 거짓말에 완전히 속았다. 압살롬은 미리 짜 놓은 각본대로 헤브론에 도착하자마자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했다. 일단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에게 첩자를 보내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라고 외치게 했다. - P223
압살롬의 세력은 점점 커졌고 그 여세를 몰아 내가 머무는 예루살렘 성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나와 부하들은 압살롬 일당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났다. 왕궁에는 후궁들 10명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후궁들을 범할 것을 말했고, 압살롬은 다윗이 거닐었던 옥상 위에 장막을 치고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들과 동침을 했다. 이 사건은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부인을 취하는 바알 신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이미 이방인들의 문란한 성윤리가 배어 있는 상태였기에 이런 일을 자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힘으로 더 이상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아버지 다윗이 아니라압살롬임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싶어 했다.
한편으로 압살롬의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는 아버지인 나를 처참하게 욕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압살롬은 아무래도 권력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권력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패륜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결과 역시 나단의 예언대로 내가 저지른 죄과였다. 내가 범죄한 밧세바 사건은 옥상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P224
왜 이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압살롬에게 조금만 신경 썼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에게 관심을 주지 못한 게 가장 후회가 되었다. 비록 살인죄를 범했지만 그에게도 치유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들람 동굴 치유학교 원장이었던 과거의 화려한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아들에게만큼은 분노와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무엇보다 문제들을 사전에 차단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예방하지 못한 채 방관하고만 있었다. - P226
"여보게 후새, 그대의 충정에 너무나 고맙소. 내가 부탁을 하나 하겠소. 들어주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가 어떤 말씀이라도 순종하겠습니다."
"고맙소. 나와 함께 피난길에 오르지 말고 그대는 이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을 만나거든, 그를 임금님으로 받들고, 이제부터는 새 임금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시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위장 전향해 달란 말이오. 그것이 나를 돕는 길이고, 아히도벨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오. 그 곳에 가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그대와 합세할 것이오. 그러므로 그대가 왕궁에서 듣는 말은 무엇이든지 그 두 사람에게 전하시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의 아들 둘을 그 곳에 데리고 있소. 그대들이 듣는 말은 무엇이든지, 두 아들을 시켜서 나에게 전하여 주시오."(사무엘하 15:35-36) - P227
나는 후새에게 압살롬에게 전향하는 것처럼 가장해달라고 한 것이다. 한마디로 스파이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모사드 작전‘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렇게 후새와 사독, 그리고 아비아달이 한 팀으로 엮어졌고 압살롬에게서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 샅샅이 전달되도록 정보전달체계를 만들었다. - P227
‘아히도벨의 기습전략이냐, 후새의 전면전이냐?"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압살롬은 최종적으로 후새의 모략을 채택했다고 한다. 결국 나는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여유 또한 얻게 되었다.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략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패배할 것을 예감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후새는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자마자 긴급하게 해당 내용을 나에게 알리고자 했다. 나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오늘 밤을 광야의 나루터에서 묵지 말고 빨리 강을 건너가야 함. 그렇지 않으면, 다윗 왕과 백성까지 전멸당할 것임." - P230
우리의 스파이 작전은 한치의 실수도 없었다. 압살롬이 공격할 것을 알게 된 나는 군대를 재정비해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결국 승리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단, 압살롬은 이 전쟁에서 숨을 거두었다.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요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압살롬의 최후에 대해 이렇게 보고 받았다(참조: 사무엘하 18:14-17).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큰 상수리나무의 울창한 가지 밑으로 달려갈때, 그의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휘감기는 바람에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타고 가던 노새는 빠져나갔습니다. 이 상황을 보고받은 요압은 투창 세 자루를 손에 들고 가서 상수리나무의 한 가운데 산채로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 P232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사방이 적들인 탓에 안전이 곧 생명이라는 위기 의식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에 1949년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에 의해 모사드가 창설되었고, 1951년에는 모사드가 총리 직속 기관으로 구조조정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각국 정보기관의 모델로 활용되고 있다. 압살롬과의 전쟁 또한 모사드 작전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모사드가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회가 남달랐던 것같다. 특히 모사드의 가치가 인정받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정보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압살롬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정보전의 승리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모사드를 생각나게 만드는 성경구절이 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잠언 11:14) - P235
이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내가 살던 시대뿐만이 아니라, 요즘 시대 또한 정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정보의 중요성은 점점 증대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한반도 남북간의 정보전은 어떤가? 남한에는 대북 정보기관으로 국가정보원이 있고 북한에는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35호실 등 아주 다양한 정보기관이있다고 한다. 이런 기관이 세워질 정도로 고급 비밀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입수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분명 이것은 상대방을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비결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핵심적인 방안이 된다. 참고로 남한의 경우, 과거에는 정보기관이 인권침해를 하거나 정치에 관여하는 등 폐단이 발생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혹은 이 기관이 권력유지나 정권재창출에 이용되는 등 공작기관 내지 사찰기관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이 기관이 이름에 걸맞게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순수 대외 정보기관으로서 기능을 발휘했으면 한다. - P240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 사람들은 유다지파에게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먼저 예루살렘 귀환 제의를 꺼내었는데, 유다지파 사람들이 반칙을 행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유다지파 사람들이 이스라엘 지파사람들에게 대답했다.
"우리가 임금님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낼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가 임금님께 조금이라도 얻어먹은 것이 있느냐? 임금님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주신 것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아느냐?" (사무엘하 19:42)
그러자 이스라엘 다른 지파 사람들은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맞받아쳤다.
"우리는 임금님께 요구할 권리가 너희보다 열 갑절이나 더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우리를 무시하였느냐? 높으신 임금님을 우리가 다시 모셔와야 되겠다고 맨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니었느냐?" (사무엘하 19:43)
사실 나를 왕으로 재추대하자고 먼저 말했던 사람들은 이스라엘개 지파 사람들이었다. 단지 유다지파 사람들이 앞으로의 정치적 입지약화를 걱정하여 낚아챈 것일 뿐이다. - P244
참고로 측근정치라는 것이 있다. 많은 경우 측근들이 외부세력의 권력핵심 진입을 방해하면서 자신들 위주의 정치가 이루어지게 하려고 꾀를 쓴다. 나의 경우에도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채 측근들의 말만 듣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식으로든 특정 대상의 입장에 휘둘리면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본의 아니게 유다지파 외의 다른 지파들에게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열 두지파 모두의 환영을 받고 싶었던 만큼 나의 복귀에 소극적인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약간의 섭섭한 감정을 전한 것이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유다지파는 다른 지파들을 따돌린 채 나를 맞이하는 행동을 취해버렸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다른 지파들이 환영하러 올 때까지 기다렸어야하는데 나는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취했다. 유다지파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성급히 왕궁으로 향한 것은 분명한 실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원하고, 자신이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되기를 바라는데 내 행동은 다른 지파들을 서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가족관계에서는 물론 백성들과의 관계에서도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계속 보였던 것 같다. - P244
이때 아비새는 부하들과 함께 세바를 따라 예루살렘 밖으로 나갔고 요압은 명령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아마사 때문에 군대총사령관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따라서 요압은 아마사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급기야 아마사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런 다음에, 요압은 자기 동생 아비새와 함께 세바를 뒤쫓아갔다. 아마사의 군인들도 하는 수 없이 요압을 따랐다.
세바를 처형함으로 소요는 진정되었으며 요압은 왕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물론 요압은 군사적으로 매우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만년 2인자로서 나에게 토사구팽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나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기의 라이벌들을 가차없이 처단해 버리는 잔인함을 보이곤 했다. 이것 역시 내가 공평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지는 않았나 싶다. 어찌되었든 요압과 아비새의 공으로 지역주의에 편승하여 반란을 일으킨 세바와 그 무리들은 모두 전멸되었고 왕조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P246
어느 국가이든 지역주의는 국민을 분리시킨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를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 없는 것일까? 지역주의의 특성은 한쪽이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뭉칠 경우 반대급부로 다른 한쪽도 대항 차원에서 뭉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주의는 완전히 사라지기가 어렵다. 조금만 틈이 있으면 다시 움트는 것이 지역주의다. 그런 까닭에 지역주의를 전멸시키는 것은 어렵다. 인간의 이기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무조건 지역주의를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때마다 제초제를 주어 자라지 못하게 막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제도라는 것 자체도 일종의 지역주의에 근간하는 것이다. 이념의 지역주의라는 것만 다를 뿐, 세력그룹을 만드는 것은 동일한 원리이다. 또 다른 이념적 지역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항상 주류그룹이 있고, 비주류그룹이 있다. 주류그룹이 독주를 하다 보면 소외된 비주류그룹들은 조용히 세를 규합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불안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도자가 공동체 전체를 감싸 안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더불어 지도자는 공동체 인식을 어떻게 심어줄지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 P247
주님께서 국가의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여호수아 장군에게도 이것을 당부하셨다.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여호수아 1:7)
즉, 인간의 편향성을 인지하고, 균형잃은 선택 대신에 주님의 안내를 잘 받으라는 뜻이다.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킴으로 말미암아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미국의 3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극단적 진영논리에 대해 이러한 명언을 남겼다.
"정치적 분쟁의 오른쪽과 왼쪽의 극단은 항상 잘못된 것입니다."
좌우 진영이 서로 심하게 싸울 때, 누가 중심을 잡아야 하겠는가? 국가수반이다. 그가 중심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균형감은 어디서 나올까? 이때 우리는 아마 이런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물론 이걸 통해 답을 얻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에 대한 겸손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 P248
막스 베버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다. 발음 때문에 칼 마르크스와 혼돈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두 사람은 정반대의 사람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이론을 세웠지만, 막스 베버는 청교도 정신에 근간한 자본주의가 윤리와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산물임을 설파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 것 같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고 그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고한다. 이 강연내용이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그는 여기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에 더해 지도자의 윤리를 말하고 있다. 윤리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나누어 설명되고 있는데 신념윤리가 자신의 믿음에 충실한 반면 결과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 책임윤리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빚어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이 두 가지 윤리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나는 그가 강조한 ‘균형‘이 아직도 와 닿는다. 윤리는 물론 어떤 영역에서든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도자에게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 P249
"임금님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자 합니다. "(사무엘하 21:17) - P252
"주님이 이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 불어나게 해 주셔서, 높으신 임금님께서 친히 그것을 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높으신 임금님께서, 어찌하여 감히 이런 일을 하시고자 하십니까?"(사무엘하 24:3) - P255
인구조사의 주체가 누구인가? 인간이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께 인구조사의 주권이 있었다. 모세는 필요에 의해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인구조사를 명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이 년이 되던 해 둘째 달 초하루에 주께서 시내광야의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각 가문별, 가족별로 인구를 사하여라. 남자의 경우는 그 머리 수대로 하나하나 모두 올려 명단을 만들어라.‘"(민수기1:1-2)
"주께서 모세와 아론의 아들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머리 수를 세어라. 스무 살부터 그 위로, 이스라엘에서 군대에 나갈 수 있는 이들을 모두 조상의 가문별로 세어라.‘"(민수기 26:1-2) - P256
누가 인구조사를 하는가? 군인이 아니었다. 각 지파별로 12명의 조사관을 뽑았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는가? 군대총사령관 요압이 책임자가 되어 온 동네 사방팔방 다니며 고생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중앙집권화된 나라가 아니라 각 형제 부족들 간의 연맹국가였기때문에 독재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내 의견을 고수하며 요압을 홀로 파견한 것이었다. - P257
인구조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세금과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군사력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즉 성막 봉사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여기서 나의 숨은 동기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에 나의 성공과 업적을 외쳐보고 싶었다. ‘엠페러 다윗‘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인구조사 자체가 악이 아니라 그 바닥 마음에 있는 모티브가 문제였다. 실제로 동기가 선과 악을 결정한다. 아무리 선을 가장해도 모티브가 악이었다면 주님 앞에서는 그냥 죄다. 나는 인구조사의 목적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주님 앞에서 죄였다. - P257
그렇다. 나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갔다. 마치 그가 아담과 하와를 넘어가게 했듯이, 나에게 다가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사탄의 명령에 순종하여 인구조사를 한 반역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밧세바 사건 때는 ‘주님, 잠시 눈좀 감아주세요. 저의 달콤한 시간을 엔조이하고 싶어요.‘라는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아이 앰 섬씽 그레잇! 나는 칭송받아야 돼.‘라는 마음이 있다. 역대기 저자는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았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일어나서, 다윗을 부추겨,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였다. "(역대상 21:1) - P258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사무엘하24:10) 사람은 속일 수 있겠지만 어찌 주님을 속일 수 있겠는가? 그분은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밝히 나타내시고, 마음의 생각도 드러내시는 분이 아닌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았다. 황제라는 칭호, 우월감, 교만, 명예욕구, 인정욕구 등, 악한 모티브가 가득했다. - P259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선지자 갓이 나에게 주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주님이 나를 징계하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임금님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께서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석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제 임금님께서는 저를 임금님께 보내신 분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잘 생각하여 보시고,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엘하 24:13) - P260
죄는 용서하시지만 책임은 분명히 하겠다는 주님이셨다. 자연을 통한징계, 사람들을 통한 징계, 전염병을 통한 징계,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매를 맞을 것인지 나보고 선택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자 갈등이 되었다. 첫번째 벌은 너무 지칠 것 같고, 사람들에게 쫓겨다니는 것도 경험상 너무 힘들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무엘하 24:14)
즉 주님께서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3일 간의 전염병 징계를 받겠다고했다. 7년보다는 3달이 낫고, 3달보다는 3일의 징계가 웬지 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사흘이니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날 아침부터 정하여진 때까지 주님은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셨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칠만 명이나되었다. 나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3일 밖에 안되니까 견딜 수 있겠지 했지만 7만 명이 죽어 나갔다. 이곳 저곳에서 곡소리가 나는데 괴로워서 정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백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이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 P260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사무엘하 24:17)
나의 악한 동기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두 눈 뜨고다는 것은 너무나 처참했다. 나는 백성들에 대한 소유권을 내 앞으로 돌려 놓으려고 했다. 일찍이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없이 주님이 직접 다스리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과 같이 왕을 달라고 떼를 써서 결국은 주님께서 허락하셨다. 이후 사무엘 선지자는 주님의 뜻을 좇아 사울을 왕으로 기름부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그대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주의 소유이신 이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사무엘상 10:1)
그렇다. 백성은 내 소유가 아니며 주님의 소유다. 나는 잠시 위임을 받아 목자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작은 더 이상 살아있는 조직이 아닌데 나는 어느덧 권위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을 중시하던 내가 고집불통이 돼 버린 것이다. 결국 그릇된 리더십을 발휘했고 주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독재자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목자와 독재자,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마음만 돌아서면 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주님의 사랑하심으로 징계를 받았고 내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 P262
영국 격언 중에 "임금이 길을 잃고 헤매면 백성들이 그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전국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나의 독재적 결정으로 7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 지도자는 정책 결정을 할 때마다 겸손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 P262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가는 큰길이니, 그 길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지킨다.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잠언 16:17-19) - P263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정치 지도자를 꼽으라면 아마 ‘독재자가 아닐까 싶다. 히틀러, 무솔리니, 폴포트, 이디 아민, 무바라크, 카다피 등등 정말 많은 독재자들이 있다. 그들의 최후는 한결같이 비참했다. 국민들이 겪은 고통은 또 어떤가? 북한은 소수 엘리트 당간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노예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상에는 하나님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 인간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들은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대로 징계받을 것이다. - P264
"악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핍박합니다. 악한 사람은 자기가 쳐 놓은 올가미에 자기가 걸려 들게 해주십시오. 악한 자는 자기 욕망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는 자는 주님을 모독하고 멸시합니다. 악인은 그 얼굴도 뻔뻔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벌주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의 생각이란 모두 이러합니다." (시편10:2-4) - P264
내가 입을 다물고죄를 고백하지 않았지요. 온종일 끊임없이 신음하였고 결국 내 몸은 탈진하고 말았지요.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나를 짓누르셨기에, 여름에 풀 마르듯나의 혀가 말라버렸지요.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었지요.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지요. "내가 주님께 내 허물을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나의 죄를 기꺼이 용서하셨지요. (시편 32:3-5, 다윗의 시에서) - P267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사무엘하 7:12)
즉, 나의 후계자는(당시 기준으로) 현재까지 태어난 자식이 아닌 미래에 나의 몸에서 ‘나올 자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나온 자식들은 왕이 될 수 없다. 이에 압살롬, 아도니야도 후계자가 될 수 없음을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 P272
한편 나이 50이 넘어 밧세바를 통해 늦둥이를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지었다. 나단 선지자는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부르게 했는데, 그 뜻은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이었다. 나의 이름인 ‘다윗‘이란 이름 또한 ‘사랑받는 자‘란 뜻으로 여디디야와 의미가 통했다(참조: 사무엘하 12:24-25). - P273
"보아라, 너에게 한 아들이 태어날 것인데, 그는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사방에 있는 그의 모든 적으로부터, 평안을 누리도록 해주겠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지어라. 그가 사는 날 동안, 내가 이스라엘에 평화와 안정을 줄 것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그의 왕위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튼튼히 서게 해줄 것이다. "(역대상 22:9-10) - P274
열왕기서 저자는 아도니아의 방자함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아도니야는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후계자처럼 행세하고 다녔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벙거를 마련하고, 기병과 호위병 쉰 명을 데리고 다녔다." (열왕기서 1:5) - P274
지금도 이러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불의한 자들이 분수를 모르고 본인이 나서서 대권을 휘어잡아보려고 한다. 특히 높은 자리에 앉아서 대우나 받고 싶은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편을 모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수틀리면 또흩어진다. 결국 이합집산이 너무나 쉽게 형성된다. 나라를 위한 헌신보다는 자기 이익 추구에 따라 행동한 결과다. 이런 것이 바로 철새정치인데, 역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새정치는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 P283
많은 지도자들이 리더십 이양까지는 잘 수행한다. 그러나 멘토링이부족하여 부작용을 경험하곤 했다. 후계자 선정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를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멘토링해 주는 것 역시 더없이 중요하다. 이에나는 후계자가 잘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고 권위를 모아주며, 진정한 리더가 되도록 양육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 P284
솔로몬에게 리더십 이양을 위한 멘토링을 할 때 몇 가지 중요한 원리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나의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주님을 바로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섬기도록 하여라.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모든 생각과 의도를 헤아리신다. 네가 그를 찾으면 너를 만나 주시겠지만, 네가 그를 버리면 그도 너를 영원히 버리실 것이다."(역대상 28:9)
두 번째는 못다한 과업에 대해 계속 진행할 것에 대해 부탁하는 것이었다. 즉, 국정업무에 대한 인수인계였다. 나는 성전건축의 설계도를 솔로몬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설계에 관한 것은 주께서 친히 손으로 써서 나에게 알려 주셨다."(역대상 28:19)
세 번째는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너는 힘을 내고, 담대하게 일을 해 나가거라,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네가 주의 성전 예배에 쓸 것들을 다 완성하기까지, 주님이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떠나지 않으시며 너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역대상 28:20)
네 번째는 권위의 부여였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갈래들이 주님의 성전 예배에 관한 모든 일을 도울 것이며, 온갖 일에 능숙한 기술자들이 자원하여 너를 도울 것이며, 지도자들과 모든 백성이 너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역대상 28:21) - P285
나는 솔로몬과 함께 나라를 잘 이끌어가도록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의 형제와 백성 여러분, 나의 말을 들으시오. 나는 우리 주님의 발판이라 할 수 있는 주의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지으려고 준비를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군인으로서 많은 피를 흘렸으므로, 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주님께서 나의 아버지의 온 가문에서 나를 왕으로 택하여, 이스라엘을 길이길이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유다를 영도자로 택하시고, 유다지파의 가문 가운데서 우리 아버지의 가문을 택하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아들 가운데서 기꺼이 나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또 주께서는 나에게 여러 아들을 주시고, 그 모든 아들 가운데서 나의아들 솔로몬을 택하여, 주의 나라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역대상 28:2-5)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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