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흔히 치질이라고 알려져있는 ‘치핵‘의 정의와 그 원인들에 대해 알아보았었다. 오늘은 이러한 치핵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가 걷기를 제안하는데, ‘그냥 무작정 걸어라‘ 가 아니라 혈액순환의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여 독자들에게 걸을 것을 적극 권하고 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milking acti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젖 짜기 효과‘ 라는 것이 나왔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이 용어가 등장한다. 쉽게 말해 혈관의 수축과 팽창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이것이 우리 몸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계속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걷기 운동은 불면증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p.170에 밑줄친 부분을 참조바란다.

더 좋은 것은 자주 그리고 꾸준히 걷기를 실천함으로써 ‘젖 짜기 효과(milking action)‘로 온몸의 혈관과 세포들이 생기(生氣)있고 활력(活力)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항문 주변의 혈관과 세포들도 자연스럽게 치핵으로부터 회복되어 건강해질 것이다. - P169

대표적인 유산소운동인 걷기에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일산화질소(NO) 분비 촉진의 효과까지 있으므로 꾸준한 걷기 실천은 치핵 치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P169

남성들의 전립선염(前立腺炎, prostatitis), 혹은 전립선비대증(前立腺肥大症, prostatism)도 치핵처럼 너무 오랫동안 앉아서 생활함으로써(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을 때 회음부가 눌림으로써 회음부가 반복적 •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음으로써(짓눌려) 발생하는 질환이다. 그 예방과 치유 또한 치핵의 경우처럼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을 줄이고 걷는 시간과 걷는 횟수를 늘려주는 것이 해법이다. - P170

걷기 운동을 하면 내장 운동이 활발해져 몸속 곳곳의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자율신경이 균형을 찾게 되며 호르몬이 정상 분비됨으로써 심신이 제 기능을찾고 적당히 피곤한 상태를 만들어 불면증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 P170

매일 적당한 운동을 하는 사람은 누웠다 하면 곧바로 잠들고 아침이 되면 기분 좋게 일어나며 낮에도 졸리지 않으며 밤에 자다가 자주 깨는 증상도 크게 개선된다. 그런데,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좀처럼 잠을 못이루거나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거나 낮에도 졸음이 쏟아져 힘들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 P170

격렬한 운동이 아닌 가벼운 운동을 하면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는데, 이 느낌이 양질의 수면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준다. 일상의 업무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이는 데 열중하다 보면 정신적으로도 기분전환이 되어 잠들기에 적당한 상태가 된다. - P1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에서 출발하여 철학적 자아에 대해 물어보는 인문학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물어보는 과학의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까지 저자의 사고(思考)의 깊이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 나온다.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나는 뇌다‘ 라는 것이었는데,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밑줄친 문장들을 읽다보니 독자인 나의 고개도 절로 끄덕여질만큼 근거가 꽤나 설득력있게 제시되어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나는 뇌다.‘ 이것은 사실을 기술한 과학의 문장이 아니라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이다. - P47

뇌는 물질이지만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내가 뇌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말한 것은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 P48

소유욕부터 경쟁심, 구애 행동,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예술적 창조, 낯선 것에 대한 경계, 자존감, 불안, 공포, 외로움, 복수심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 - P48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모르고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이해할 수가 없고,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을 모르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뇌다‘ - P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은 부분에선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었던 동 저자의 책인《인문 건축 기행》에 나왔던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베트남 전쟁 기념관에 대한 얘기를 만날 수 있었다. 내용적으로 거의 비슷한 부분이라 처음 봤을 때 만큼의 신선함은 덜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저자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언급되는 법이니 말이다.

현상설계 : 설계안(案)을 경쟁을 통해서 결정하기 위하여 설계안을 모집하는 것. - P386

성공적인 현상 설계는 49퍼센트의 뛰어난 건축가와 51퍼센트의 훌륭한 심사위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55

물갈기: 칠면 혹은 곱게 다듬은 돌면을 물 묻힌 연마지 또는 숫돌 등으로 곱게 갈아 마무리하는 것. - P386

훌륭한 건축은 대지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잘 이용하는 건축이고, 더 훌륭한 건축은 좋지 못한 에너지까지도 좋게 이용할 줄 아는 건축이다. - P158

절은 교회의 주일 예배와는 달리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모이는 집회 중심이 아니다. 대신에 혼자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찾아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 P161

다른 건축물에 비유를 하자면 절은 미술관이고 교회는 경기장에 비유할 수 있겠다. 미술관은 특정 시간에 사람이 몰리지 않고 분산되어서 사용되지만, 경기장은 몇 시간의 경기 시간 전후로 사람의 이동이 많은 시설이다. 이러한 운영상의 차이점이 일단 두 종교 시설의 공간적인 특징을 규정한다. - P1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립백 과테말라 안티구아 파노라마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두 먹고난 뒤에 살짝 느껴지는 쌉쌀한 맛과 초콜릿의 쓰디쓴 달콤함, 카라멜의 은은한 단 맛이 어우러져 있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드립백 커피입니다. 이러한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차갑게 마시는 것보다 뜨겁게 마시는 게 개인적으로 좀 더 나았습니다. 적정량의 물 조절도 중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전《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책을 읽으면서 과학 관련 분야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기회가 되어 이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인문학 분야에 집중해왔던 문과 출신 저자의 시각에서 과학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살펴보면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래본다.
.
.
.
읽으면서 저자의 깨달음 같은 게 느껴졌다.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저자는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꾸준히 공부해온 인문학이라는 것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 듯 하다. 물질로 존재하는 ‘나‘와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 이렇게 두 가지로 자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 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았다.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개 독자인 내 나름대로 저자의 글을 읽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끄적여봤는데, 이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심오한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머리가 지끈지끈 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의미를 찾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텐데, 생각의 폭을 조금이라도 확장시켜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 - P8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 - P8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과 자연과 우주를 대하는 태도 - P11

토론회에는 거만한 바보가 많았고, 그들이 나를 궁지에 몰았다. 바보는 나쁘지 않다. 대화할 수 있고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는 거만한 바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정직한 바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직하지 않은 바보는 골칫거리다! 나는 토론회에서 거만한 바보를 무더기로 만났고 아주 낭패했다. - P16

파인만은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잘 하지 않는 활동을 했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든가 핵폭탄의 윤리적 쟁점 같은 문제를 연구하면서 강연회와 토론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공개한 것이다. - P17

‘학제적‘이란 평소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인문학자와 과학자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뜻이다. - P18

파인만은 솔직하게 의견을 말했다. ‘평등의 윤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자기 관점에만 집착했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를 한 게 아니라 혼돈을 만들었다고 했다. - P18

"그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믿는 거만한 바보였다." - P18

내가 바로 ‘거만한 바보‘였다. 나는 물질세계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무지했다. 우주 · 은하 · 별 · 행성 · 물질 · 생명 · 진화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과니까. - P19

과학자는 수학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수학으로 대화한다. - P21

수학을 ‘우주의 언어‘라고 한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1564~1642) - P21

과학자가 되려면 물질 현상에 대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우주의 언어인 수학을 익힐 재능도 있어야 한다. - P22

인문학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 욕망을 충족하려면 누구나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단 하나의 인문학 지식도 유전으로 물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인문학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27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 P27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고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한다. - P28

인문학에는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매우 그럴법하거나 그럴 것 같기도 한 주장과, 별로 그럴듯하지 않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그럴법한 견해끼리 충돌하면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 어느 쪽도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 P28

인문학에는 과학과 달리 영원한 진리가 없다. 한때 진리로 통하는 이론도 100년을 견디지 못한다. 스미스 Adam Smith(1723~1790)의 ‘보이지 않는 손‘,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의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의 역사이론이 다 그랬다. - P28

성벽을 쌓고 안주하는 학문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된 울타리 안에 머물면서 오래된 것에 집착하면, 과학이 새로 찾아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기를 거부하면, 대학의 인문학은 존재의 근거를 잃을 것이다. - P29

‘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전통적인 문학과 맞지 않는 형식이다.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다. 인문학의 위기는 질문을 제때 수정하지 못한 데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본성을 무슨 수로 밝히겠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 P30

파인만은 인문학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과학을 알려고하지 않는, 과학의 연구 방법을 거부하는, 과학을 배척하는,
그러면서도 스스로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했을 뿐이다. 직업이 인문학자든 아니든 상관없다. - P30

‘거만한 바보‘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다. 문명의 역사는 세속권력이나 종교권력을 거머쥔 ‘거만한 바보‘들이 자연과 인간에 관한 사실을 탐구하고 밝혀낸 과학자를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책을 불태운 사건으로 얼룩졌다. 과학자는 ‘거만한 바보‘들에게 화를 낼 권리가 있다. - P30

과학자는 인간의 언어와 우주의 언어 둘 모두를 쓴다. 큰 어려움 없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인문학의 질문에 자기네 방식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만 아는 나는 방정식으로 가득한 물리학 논문을 읽지 못한다. 과학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을 받아 까치발을 해야 담장 너머 과학의 세계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 - P31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 P31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 - P31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의 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 P32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 P32

‘자아는 뇌세포에 깃든 인지 제어 시스템이다.‘ - P32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 - 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 P32

‘태양이 별의 생애를 마칠 때 지구 행성의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 P32

‘모든 천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주 전체가 종말을 맞는다.‘ - P32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 P32

둘 이상의 세대가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분업의 일환으로 이타 행동을 하는 동물을 진사회성眞社會性(eusociality) 동물이라고 한다. 개미, 꿀벌, 말벌 같은 ‘막시류‘ 곤충과 호모 사피엔스가 여기에 들어간다. - P35

특정한 질서를 가진 사회를 형성하고 존엄 · 인권·정의·평등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지만 유전자에 새겨진 생물학적 본능을 바꾸거나 없애지는 못한다. - P36

과학혁명은 생산기술을 혁신함으로써 생산조직의 형태와 운영방식, 대중의 생활방식, 정치제도와 법률, 사회적 계급의 성격, 국가의 기능, 가족제도와 문화양식까지 세상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런 변화의 원인을 찾고 양상을 분석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인문학의 과제다. - P36

모든 변화의 추동력을 제공하는 과학에 관심이 없다면,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서 발견한 중대한 사실을 외면한다면, 과학의 사실과 이론을 연구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든 적응에 실패하면 위기에 봉착한다. 인문학이라고 예외겠는가? - P36

과학자는 물리법칙에 입각해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한다. 인간의 몸은 입자의 집합이니 당연히 물리법칙을 따른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다. - P36

과학으로 인간과 사회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 사람은 유전자가 만든 생존기계인데도 때로 본능을 거스른다. 본성을 알고 욕망을 제어하며 스스로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필요하다. 과학이 더 발전해도 인문학은 인문학의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형식과 내용 그대로는 아니다. - P37

인문학은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고 만든 학문이다. 생산력 발전을 도모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인문학과 관계가 없다. - P38

진화와 정신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다. 그런데 그 기계가 자신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생각하고 고민한다. 인문학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니 잘되기가 어렵다. - P38

우리의 뇌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밝게 비춰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객관적 진리보다는 신화와 자기기만과 부족의 정체성처럼 ‘적응의 이익‘이있는 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 채 수천 세대를 이어가며 번식했다.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마음은 세계를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에드워드 윌슨) - P38

윌슨의 말은 과학의 토대 위에 서야 인문학이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39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 한다. - P43

사람이 남을 모르는 거야 당연하다. 문제는 자기도 자신을 모르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 P43

‘나는 물리적 실체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나는 물리적 실체인 내가 아니다.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또 다른 내가 있다.‘ - P44

나를 온전히 알려면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물질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우주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가 어떻게 생명과 의식을 만들어내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왜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안다‘고 할 수 있다. - P46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질문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 P47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 P47

물질인 내 몸을 지휘하는 제어 센터는 단단한 머리뼈 안에 들어 있는 주름진 회백색 세포 덩어리다. 나를 나로 알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우리가 뇌라고 하는 세포 덩어리에 깃들어 있다. - P47

옳다고 여기던 것이 그렇지 않음을 알아내는 데 과학의 매력이 있다 - P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