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 - P8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 - P8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과 자연과 우주를 대하는 태도 - P11
토론회에는 거만한 바보가 많았고, 그들이 나를 궁지에 몰았다. 바보는 나쁘지 않다. 대화할 수 있고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는 거만한 바보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정직한 바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직하지 않은 바보는 골칫거리다! 나는 토론회에서 거만한 바보를 무더기로 만났고 아주 낭패했다. - P16
파인만은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잘 하지 않는 활동을 했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든가 핵폭탄의 윤리적 쟁점 같은 문제를 연구하면서 강연회와 토론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공개한 것이다. - P17
‘학제적‘이란 평소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인문학자와 과학자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뜻이다. - P18
파인만은 솔직하게 의견을 말했다. ‘평등의 윤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자기 관점에만 집착했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를 한 게 아니라 혼돈을 만들었다고 했다. - P18
"그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믿는 거만한 바보였다." - P18
내가 바로 ‘거만한 바보‘였다. 나는 물질세계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무지했다. 우주 · 은하 · 별 · 행성 · 물질 · 생명 · 진화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과니까. - P19
과학자는 수학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수학으로 대화한다. - P21
수학을 ‘우주의 언어‘라고 한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1564~1642) - P21
과학자가 되려면 물질 현상에 대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우주의 언어인 수학을 익힐 재능도 있어야 한다. - P22
인문학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 욕망을 충족하려면 누구나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단 하나의 인문학 지식도 유전으로 물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인문학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27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 P27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고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한다. - P28
인문학에는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매우 그럴법하거나 그럴 것 같기도 한 주장과, 별로 그럴듯하지 않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그럴법한 견해끼리 충돌하면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 어느 쪽도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 P28
인문학에는 과학과 달리 영원한 진리가 없다. 한때 진리로 통하는 이론도 100년을 견디지 못한다. 스미스 Adam Smith(1723~1790)의 ‘보이지 않는 손‘,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의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의 역사이론이 다 그랬다. - P28
성벽을 쌓고 안주하는 학문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된 울타리 안에 머물면서 오래된 것에 집착하면, 과학이 새로 찾아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기를 거부하면, 대학의 인문학은 존재의 근거를 잃을 것이다. - P29
‘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전통적인 문학과 맞지 않는 형식이다.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다. 인문학의 위기는 질문을 제때 수정하지 못한 데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본성을 무슨 수로 밝히겠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 P30
파인만은 인문학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과학을 알려고하지 않는, 과학의 연구 방법을 거부하는, 과학을 배척하는, 그러면서도 스스로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했을 뿐이다. 직업이 인문학자든 아니든 상관없다. - P30
‘거만한 바보‘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다. 문명의 역사는 세속권력이나 종교권력을 거머쥔 ‘거만한 바보‘들이 자연과 인간에 관한 사실을 탐구하고 밝혀낸 과학자를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책을 불태운 사건으로 얼룩졌다. 과학자는 ‘거만한 바보‘들에게 화를 낼 권리가 있다. - P30
과학자는 인간의 언어와 우주의 언어 둘 모두를 쓴다. 큰 어려움 없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인문학의 질문에 자기네 방식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만 아는 나는 방정식으로 가득한 물리학 논문을 읽지 못한다. 과학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을 받아 까치발을 해야 담장 너머 과학의 세계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 - P31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 P31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 - P31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의 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 P32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 P32
‘자아는 뇌세포에 깃든 인지 제어 시스템이다.‘ - P32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 - 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 P32
‘태양이 별의 생애를 마칠 때 지구 행성의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 P32
‘모든 천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주 전체가 종말을 맞는다.‘ - P32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 P32
둘 이상의 세대가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분업의 일환으로 이타 행동을 하는 동물을 진사회성眞社會性(eusociality) 동물이라고 한다. 개미, 꿀벌, 말벌 같은 ‘막시류‘ 곤충과 호모 사피엔스가 여기에 들어간다. - P35
특정한 질서를 가진 사회를 형성하고 존엄 · 인권·정의·평등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지만 유전자에 새겨진 생물학적 본능을 바꾸거나 없애지는 못한다. - P36
과학혁명은 생산기술을 혁신함으로써 생산조직의 형태와 운영방식, 대중의 생활방식, 정치제도와 법률, 사회적 계급의 성격, 국가의 기능, 가족제도와 문화양식까지 세상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런 변화의 원인을 찾고 양상을 분석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인문학의 과제다. - P36
모든 변화의 추동력을 제공하는 과학에 관심이 없다면,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서 발견한 중대한 사실을 외면한다면, 과학의 사실과 이론을 연구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든 적응에 실패하면 위기에 봉착한다. 인문학이라고 예외겠는가? - P36
과학자는 물리법칙에 입각해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한다. 인간의 몸은 입자의 집합이니 당연히 물리법칙을 따른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다. - P36
과학으로 인간과 사회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 사람은 유전자가 만든 생존기계인데도 때로 본능을 거스른다. 본성을 알고 욕망을 제어하며 스스로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필요하다. 과학이 더 발전해도 인문학은 인문학의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형식과 내용 그대로는 아니다. - P37
인문학은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고 만든 학문이다. 생산력 발전을 도모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인문학과 관계가 없다. - P38
진화와 정신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다. 그런데 그 기계가 자신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생각하고 고민한다. 인문학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니 잘되기가 어렵다. - P38
우리의 뇌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밝게 비춰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객관적 진리보다는 신화와 자기기만과 부족의 정체성처럼 ‘적응의 이익‘이있는 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 채 수천 세대를 이어가며 번식했다.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마음은 세계를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에드워드 윌슨) - P38
윌슨의 말은 과학의 토대 위에 서야 인문학이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39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 한다. - P43
사람이 남을 모르는 거야 당연하다. 문제는 자기도 자신을 모르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 P43
‘나는 물리적 실체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나는 물리적 실체인 내가 아니다.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또 다른 내가 있다.‘ - P44
나를 온전히 알려면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물질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우주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가 어떻게 생명과 의식을 만들어내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왜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안다‘고 할 수 있다. - P46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질문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 P47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 P47
물질인 내 몸을 지휘하는 제어 센터는 단단한 머리뼈 안에 들어 있는 주름진 회백색 세포 덩어리다. 나를 나로 알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우리가 뇌라고 하는 세포 덩어리에 깃들어 있다. - P47
옳다고 여기던 것이 그렇지 않음을 알아내는 데 과학의 매력이 있다 - P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