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여우전 - 구미호, 속임수의 신을 속이다
소피 김 지음, 황성연 외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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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구미호의 이야기는 매혹적인 드라마였다

p569



읽는 순간 '엇,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 싶은 소재와 페이지터너였다. 판타지 소설 유행을 타고 반드시 영상화해야 할 것 같은, 안 한다면 강력히 추천할 소설이다. 영화로는 수많은 캐릭터를 겉핥기 식으로 다룰게 뻔해, 시리즈로 만들길 추천한다. 따지자면 복합장르 소설인데 로맨스 판타지, 크리처, 추리, 코미디 등을 녹여냈다. 가성비를 따지는 요즘 세태에 적합한 가성비 높은  IP다. 한 번에 다양한 장르 변주의 즐거움, 한국 신화를 공부하는 의미,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을 관찰하는 흥미도 잡을 수 있다.

인간, 저승사자, 귀신, 해태, 이무기, 도깨비, 불가사리, 구미호가 혼재된 기묘한 신신시(新神市, 서울과 수원 어디쯤)를 배경으로 1990년대 일어나는 판타지 세계관이라..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서사와 캐릭터다. 그중 주인공 석가와 하니의 관계성이 메인인데 속임수의 신을 속이는 구미호의 계략(?), 영리함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약 600년 전 몰락한 타락신 석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인류를 위협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황제 환인(석가의 형)의 총애를 되찾으려 한다. 그중 배고픈 구미호도 포함인데 1888년 마음껏 먹겠다며 그 해를 뷔페로 삼았다는 전설의 주홍 구미호가 바로 김하니다. 둘은 90년대 신신시에서 운명적으로 만나는 데 석가는 까칠한 형사,  은퇴한 하니는 커피를 싫어하는 바리스타로 살아간다.

반역죄로 천계에서 쫓겨난 석가는 요괴 어둑시니와 주홍여우를 제거해야만 빠르게 복권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 질주를 해야 한다.  하니는 오히려 이를 방해하기 위해 언더커버가 되어 석가의 조수를 자처한다. 그러는 와중 물귀신의 소행으로 보이는 두 명의 익사 사건과 간이 사라진 사건을 쫓게 된다. 석가는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사하려 들고 하니는 적극적으로 훼방놓는다. 둘의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상황 속에 로맨스가 피어나고 결국 하니는 여우 구술을 소진해 어둑시니를 퇴치한다. 인간을 잡아먹던 구미호가 인간 세상을 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석가는 형 환인을 찾아가 하니의 환생을 요구한다. 사랑은 인간계, 천상계 할 것 없이 모두를 변화시킨다.

안 그래도 노비 출신에서 마님까지 된 구덕이의 신분 상승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보고 있어서일까. 빠른 전계와 관계성, 도파민 터지는 설정들이 흥미로웠다. 반전의 연속의 짜릿함과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비밀을 품은 전개는 스릴감을 높인다. <신과함께>의 업그레이드 버전, <그리스로마 신화>의 한국판이란 생각이다. 

한국의 전래동화, 신화, 전설 속 크리처가 다수 등장한다. 장산범, 어둑시니가 등장하니 한국영화 <장산범>, <클로젯> 이 떠오르고, 드라마 <도깨비>, <환혼>, <구미호뎐>이 연상되었다. 인연(운명)의 상징인 붉은실이 등장하는 것도 포함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한국의 뿌리를 살려 쓴 이야기가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유년 시절 놀이에 이어 한국적인 문화의 확장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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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페어링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2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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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라 하면 분위기를 내고 싶은 기념일이나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을 때 주고 사용되는 술이다. 매체(영화, 드라마)에서도 상류층, 고급에 어울리며 소주, 막걸리를 다루는 정서와는 다르게 해석된다. 하지만 그것은 매체 속 이미지일 뿐 먹고자 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종류, 가격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그만큼 마트, 편의점에서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술, 대중화된 술이 와인이란 소리다.


임승수 저자의 책 《와인과 페어링》은 저자의 첫 책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이후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생활' 유니버스의 2탄이다. 와인은 치즈, 올리브, 스테이크와 어울린다고 했던가? 저자는 애호박전, 포케, 낙지볶음, 파스타, 소곱창, 스시, 케이크, 차례 음식, 커리, 만두 등. 한중일식의 교차 페어링으로 다채로운 식감과 맛을 찾아갔다.

여기서 '와인 페어링'이란 함께하기 좋은 짝, 그러니까 궁합이 잘 맞는 안주를 찾는 일을 말한다. 와인의 서양의 술이기 때문에 서양 음식과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해왔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된 시대에 내돈내산 내가 먹는다는 데 별건가 싶다. 음식 경계가 흐려진 요즘. 저자처럼 와인과 찰떡궁합의 음식을 직접 맛보고 즐기며 찾아가는 식도락 여행을 떠나보기 좋은 계절인 것이다.

사실 술을 잘 몰라서 그 술의 맛과 향, 풍미는 모르겠고. 어떤 맛일까 상상하면서 안주와의 접점을 이해하면서 읽어갔다. 필자처럼 술을 즐기지 않는 독자에게는 생소한 술 이름이 줄줄이 등장하지만. 술자리에서 안주발 세우기로 유명하다면, 맛집 찾아다니는 걸 즐긴다면, 집에서 요리하길 즐긴다면 시도해 볼 만한 레시피와 음식이 등장하니 참고해 보는 것도 좋겠다.


특히 단 와인은 단 음식과 상극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까눌레와 모스카토 와인의 조합을 극찬하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피로와 권태로움으로 축 늘어진 미각에

강렬한 자극을 제공하기를 원한다면,

단 음식과 단 와인의 조합은

한 여름밤 면상에 직격하는

에어컨 바람만큼이나 즉효성을 보장한다.



비린 맛을 증폭시키는 와인과 생선회(스시)에 대한 연구도 흥미로웠다. 와인과 비린 맛에 얽힌 소재를 다룬 만화도 있는 것처럼, 논문까지 찾아가며 철분 함유량이라는 사실도 알아내는 저자였다. '이 분 정말 와인과 음식에 진심이구나'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결국 철분 함유는 종류나 생산국과 상관없이 토양, 포도 껍질에 묻은 먼지, 포도 수확 수상 파쇄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계 등 양조의 전 과정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이다. 유기산염, 오크 숙성 여부 등으로 잘못된 정보를 품은 만화도 있어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특히 연말연시를 맞아 각종 모임이 잦은 요즘, 어수선한 상황이나 복잡한 음식점이 부담스럽다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 가까운 지인과 때로는 혼자, 혹은 가족과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귀한 시간을 마련하기 좋겠다. 결국 맛은 그 사람의 취향이고 삶의 역사다. 이 술은 이 음식과 먹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없으니. 자유롭게 본인의 식성에 따라 몰랐던 취향,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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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사전 - 기획자가 평생 품어야 할 스물아홉 가지 단어
정은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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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획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기획자가 평생 품어야 할 스물아홉 가지 단어'라는 부제가 붙은 책 《기획자의 사전》이다. 필드에서 활동하는 기획자가 필요한 자질과  스킬을 알려주는데 꼭 기획자가 아니더라도 도움이 되었다. 기획이란 상품 개발일 수도 있고 광고 일 수도 있으며 글쓰기, 영화 만들기 등등일 수 있다. 때문에 기획자, 마케터, 편집자, PD, MD, 개발자, 프리랜서 등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프로젝트에 성공하고 싶다면. 반드시 뇌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써야 할 29가지 단어에 대해 설명한다. 

최전선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유행에 섣불리 동조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대신 새로운 사회가 어디서 도래했는지 아무도 언어화하지 못한 것을 투박하게나마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P. 22


세상 사는데 유행, 트렌드를 따라야 할까 싶은데 저자는 보편적인 욕망을 파고들라고 조언한다. 사람을 마음을 훔치고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쉬우면서도 어려운다. 트렌드를 통해서 기획자가 읽어내야 할 것은 '욕망'이고, 변화하는 자극 방식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이종 현상을 교배해 보며 '내 생각', '내 이야기'로 만들어 가는 거다.


이야기가 재미있는 사람, 즉 계속 만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이 끊임없이 나오는 사람은 '제 생각에는요..'라고 자기 생각이 먼저인 사람이라는 것. 너무 뻔한 이야기, 예측은 잘 먹히지 않는다는 구구절절한 말씀이다. 화수분처럼 아이디어, 이야기를 꺼내려면 '인사이트(통찰력)'이 필요하다. 빠르게 변하는 순간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욕망을 읽어내는 눈, 당연한 것에 의심을 품는 순간, 나만의 생각(관점)과 시선(시각)을 갖추는 인사이트가 결합되면 좋은 기획이 나온다. 


상호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를 연결시키는 것을 이종교배라고 한다. 이런 호환성을 볼 줄 아는 것이 기획 고수들의 세계다.

p. 111


마침 이 책을 읽었을 때 영화 리뷰를 쓰고 있었다. 많은 메시지와 상징을 품고 있는 영화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읽도록 써야 하나 고심 끝에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좋은 책과 글, 영상 등을 가까이 두는 것도 좋지만 그게 쌓이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게 필요하다. 오랜 시간 축적한 나이테가 쌓여 재료가 되면 읽어 줄만한 글이 나온다. 특히 저자는 데이터 홍수 시대 AI가 제시하는 수치 보다 사람의 직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뭘 기획하든 사람을 위한 일이고 사람이 선택하기에 내가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객관적인 태도도 필요하다. 거기에 '불일치 이론'을 곁들여 호환성, 통섭의 흥미로움을 유발하면 어떨까? 여러 가지를 이어 붙이고 자르려면 재료가 필요하다. 책, 영화, 드라마, 신문 등 재료가 될만한 다양한 것들을 섭취해 보는 게 중요하다.


책은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1부 실무사전: 제대로 하기 위하여에서는 트렌드, 케이스 스터디, 문제 정의, 인사이트, 콘셉트, 직관, 공감, 로그라인, 레이어, 페르소나, 이종교배 단어를 사용해 기획의 기초를 다진다. 2부 도구 사전: 계속하기 위하여에서는 필기구, 기록, 데이터, 언어, 편지, 수집, 루틴, 취향, 여행, 일기 단어를 이용해 기술을 알린다. 3부 태도사전: 갈고닦기 위하여에서는 등속, 의식, 역치, 호기심, 크리에이티브, 객관화, 성장, 각오 단어를 예를 들어 지치지 않고 정진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29가지 단어 중 인상적인 한 단어를 꼽자면 '인사이트'다. 현상, 영화, 사람을 꿰뚫어 보는 시선을 갖추고 싶기 때문. 아무튼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는 사람으로서 내 살을 갉아서 다른 무언가를 만들 때 드는 자괴감과 반복되는 생활의 이질감이 크다. 그럴 때마다 옆에 두고 꺼내 읽고 싶은 자양강장제 같은 책이다. 어수선한 연말과 분위기 속에 조용히 나를 갈고닦고 싶을 때, 다가오는 2025년에는 조금씩이라도 성장한 본인을 만나고 싶을 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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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핵심 -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부를 쌓는 방법
다리우스 포루 지음, 박선령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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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어난 국가 비상사태 때 발을 동동 구르다가 50% 폭락할 때쯤 코인을 팔았다는 말을 들었다. 누구든 안 그러겠는가. 주식, 코인을 해본 적 없지만 나 같은 문외한도 장기투자임을 알고 있다. 150% 상항가를 치고 있는 상황 점점 떨어지는 데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상황에 반이라도 건지고 싶은 것을. 따라서 투자는  눈앞에 보이는 수치와 그래피에 현혹되지 않도록 감정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리 투자 방식과 전략을 신문, 책, 유튜브로 전해 듣지만 손해만 본다면 어디가 잘못된 건지 따져 봐야 한다는 거다. 


이 책은 시장 변동에도 투자 일관성을 유지하게 해줄 방법을 알려준다. 첫째, 나에게 투하는 거다. 안정적인 수입을 창출할 나만의 무기를 개발하고 유지해 꾸준한 수입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둘째, 일희일비하지 말고 손실을 받아들이는 거다. 단기적인 손실이 있더라도 부을 쌓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 들여야 한다. 셋째, 복리로 돈을 불려야 한다. 투자 수익을 작은 탐욕에 눈멀어 베팅하지 말고 믿을만한 투자처에 재투자해 돈을 불리는 거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장기적인 안목을 키우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한 부자들의 멘탈 관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스토아주의적 우위'라고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감정을 잘 조절해서 의사결정에 결함이 발생하지 않는 거다. 멘탈 관리, 정신건강 관리를 잘하는 우위를 가져야 지속적인 부를 쌓는데 유리하다는 말이다. 


자신이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할 것이며 빌린 돈으로 투자하지 말고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라는 거다. 스토아 철학은 좀 더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론 '중용'을 말한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만 욕망할 것, 식습관을 조절하며 자제력을 키울 것이다. 이론을 책 속에 빠삭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본인이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꼭 투자에만 적용되는 법칙도 아니기에 실생활에 적용해 볼 수 있다. 공부나 일에 있어서도 세상의 다양한 흔들림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굳은 의지를 지켜내는 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돈 벌고 싶은 사람은 넘쳐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본인의 중심을 지킨다면 어떤 일이든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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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 오답노트 같았던 삶에 그림이 알려준 것들
이유리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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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알게 된 것일까. 그림을 설명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붙이는 책을 종종 만날 때마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다. 15년 동안 작가로 살아왔다는데 이유리 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다. 앤디 워홀이 감추고 싶어 했던 자신의 콤플렉스와 말련의 반 누드 자화상이 충격과 영감으로 다가왔다. 각종 SNS에서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현대인이 전형이 이미 앤디 워홀이란 작가로 다듬어진 게 아닐까.



표지와 소재를 보고 그동안 읽었던 책과 비슷할 거라는 선입견은 에드워드 호퍼와 조세핀 호퍼의 일화를 읽으면서였다. 그중 우연히 영화 <에드워드 호퍼>를 봤었던 두 달 전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받아 만들어진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를 봤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 20세기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그에 대해 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대체 성공한 남성 뒤에는 늘 그 재능을 뒷받침하고 뒷바라지해 주는 여성이 있었다는 클리셰는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호퍼와 조세핀의 경우 사랑이라는 가스라이팅인지 싶은 결혼생활을 지속해 온 조세핀의 속마음으로 여러 권의 일기와 편지로 남아 있다. 호퍼가 유명하진 계기도 조세핀의 영향력 때문이었지만 결국 부엌데기로 전학한 삶을 개탄스러워했던 조세핀의 글이 마음속에 콕 하고 박혔다. 20세기까지 여성은 언제나 뒤안길에 있었다.



대부분 호퍼의 그림 속 여인은 조세핀이었고, 철저히 그의 모델, 그림자, 내조의 여왕으로 살길 바랐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호퍼의 가부장적 성격은 조세핀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유명인의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킹메이커였던 조세핀의 우울과 슬픔이 호퍼의 결핍된 듯한 표정, 고독한 심장에서 느껴진다.


대체 결혼이란 무엇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 때쯤. 앤드루 와이어스의 <결혼>이란 그림을 보고 더 많은 생각이 쌓여만 갔다. 노부부가 장문을 열어두고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겨 덮고 있다. 마치 한날한시 함께 이번 생을 마친 시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렬한 작품이지만 슬프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해 불안했다. 이 두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불행할까 끔찍할까.



책은 여성,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림이다. 잘 몰랐던 작품, 작가, 다르게 해석해 보는 시도 등 확장된 세계관을 형성해 볼 수 있다. 앞으로 그림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은 기대감이 된다. 누군가가 그림을 해석한 사유에 머물지 않고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다르게 생각해 봐도 좋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누군가에게 올해가 가기 전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을 묻는다면 당연히 책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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