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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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재해석, 로맨스 소설의 전설  《오만과 편견》이 할리퀸 로맨스와 만난다면 어떨까요? 꼬장꼬장한 제인 에어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훈계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굉장히 섹시하고 재미있거든요. 할리퀸 로맨스의 영향력 있는 작가 '주드 데브루'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만과 편견》은 몰캉몰캉 살랑살랑한 봄날, 읽기  좋은 소설입니다.

 

 

"이런 짓을 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네요.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여기 집주인이니까. 그리고 당신은 영화배우 님이니. 남이 살고 있는 데 함부로 들어와서 음식을 훔쳐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거군요. 어때요, 내 말이 틀려요? … 나, 사실은 거기 앉아서 당신을 봤어요. 그리고 나중에 들켰을 때는 거짓말하려고도 했죠. 이 집에서 쫓겨날까봐 너무 겁이 나서 내가 어디 있었는지, 그리고 뭘 봤는지 다 아니라고 하려고 했었다고요. … 하지만 이제는 못 참겠네요. 나한테도 사적인 영역이라는 게 있거든요."

평행선처럼 달리던 두 사람을 잇는 '파이와 공작새'는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잘 나가는 요리사 케이시는 남친과의 이별 통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머힐에서 휴식 중입니다. 어느 날 아침, 다비드상을 한 남자가 홀딱 벗고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샤워를 한다? 이게 웬 떡인가요? 집안에서 라이브로 영화를 보다니..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고 느낀 테이트는 처음 본 케이시에게 버럭 화를 내고, 그 사건 이후로 두 사람 사이는 오해와 편견이 생깁니다.

한편, 지역 연극 참여를 위해 잠시 들렀던 테이트는 차갑고, 까칠한 케이시의 매력에 빠져 서서히 잠식당하고 맙니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역을 맡아 연극을 올리게 되는데요. 잘못된 첫 만남과 꼬여버린 주변 인물로 비롯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  유쾌한 과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귀족이지만 외적으로  평범한 다아시를  할리우드 슈퍼스타로 변신, 신분 차이가 나지만 똑똑하고 당돌한 엘리자베스를 프로 요리사로 각색해 흥미를 유도합니다. 또한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갑을 관계, 스타와 평범한 여자의 만남이란 관계가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지루함을 뒤집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완벽한 할리우드 스타이자 공감능력까지 갖춘 테이트도 한 가지 허점이 있었으니, 늘 배가 고프다는 점. 그런 테이트의 치명성을 보완해 줄  요리사 케이시는 이들 관계의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은 엮일 수밖에 없는,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까지 갖추게 되죠. 오만하고 재수 없는 테이트에게 케이시가 마음을 여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감력 때문입니다. 공감은 19세기 소설에서 21세기 소설로 변주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

 

 

현대적으로 각색한 '주드 데브루'가 가장 공들인 캐릭터는 바로 '베넷 부인'인 올리비아입니다. 원작에서는 계급 간 갈등을 부추기는 얄미운 존재였다면 《파이와 공작새》에서는 작가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조력자로 변신했는데요. 케이시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며 연륜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세련되고 멋진 여성입니다. 올리비아는 바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소설의 전반적인 리더이자,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노년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오만함과 편견에 휩쌓여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스를 이렇게 비틀고 편집해 내놓다니. 여자들이 원하는 로맨스와 성적 판타지가 총망라된 여자들을 위한 매력적인 소설,  고전의 19금 판타지, 그 드라마틱한 전개가 페이지터너의 자질까지 갖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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