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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가 이혼할 뻔
엔조 도.다나베 세이아 지음, 박제이.구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2월
평점 :

누군가에게 내 취향을 권유한다는 일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책 읽고, 영화 보는 것을 업으로 삼은 만큼 주변에서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그때마다 상대방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안다면 범위가 좁아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불특정 다수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취향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추천해도 추천해주지 않아도 욕먹는 일이니까요.
독특한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책 읽다가 이혼할 뻔》는 달라도 너무 다른 독서 취향을 가진 부부가 서로에게 책을 추천하고 쓴 감상문을 엮은 책입니다. 부부가 명확한 세계관을 갖춘 작가라 쉽게 접하기 힘든 아우라의 책은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부부에게 취향은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칫 잘못된 취향을 강요하거나 드러낼 경우 이혼의 위기까지 갈 수도 있는 문제기도 하니까요.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SF 작가 '엔도 도'와 호러소설 대상을 받은 호러 작가 '다나베 세이아'부부의 아슬아슬한 책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은 부부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온 격투의 궤적이다."
우리나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일본의 방대한 장르(책 속에는 번역되지 않는 책이 더 많음), 독서를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성을 확인하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우리나라는 전 세계 극장 관람 관객 2위인 만큼 영화를 추천해주고 리뷰를 쓴 책이 나오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영화감독과 배우 부부, 작가와 감독 부부 등 재미있는 소재가 아닐까요?
남편은 SF 작가답게 SF 소설, 수학, 과학, 실용, 경제경영, 뜻모를 종이접기 (?) 등 다양한 분야를 추천합니다. 그에 비해 아내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공포, 호러, 오컬트, 괴담 등으로 범위를 한정 짖는데요. 아내는 감상문이 책에 대한 것이 아닌 일상이나 개인사가 반인 삼천포로 빠지는 바람에 사생활과 일본 사회를 알게 된 뜻밖의 행운도 얻습니다.
한 가지 뭉클한 점은 투덜거리면서도 읽고 쓰고 아내의 취향을 존중하는 남편의 글에서 배려가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 하지만 남편도 읽는 독자가 민망할 정도로 타박하는 소심한 복수(?)도 마다하지 않아요. (역시 취향 확실한 부부)

취향은 철저한 개인의 성향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죠. 때론 상대방을 잘 안다고 여겨 추천한 책(영화)도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가끔 상대방이 '니가 추천한 책(영화) 쓰레기였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역시나, 추천은 쉽지 않군'이란 생각이 앞서 소심하게 '다음은 없어!'라고 다짐하는 날들이 이어지지만요.
서로의 글을 절대 평가하지 않는다는 철칙에도 불구하고, 강요와 압박,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 속에서도 사실 이 부부가 얻은 최종 결과물은 '상대방의 이해'였습니다. 살면서 상대방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할지 고민해 보는 책입니다. 단순한 독서와 감상평이 이 부부를 엮어 주는 끈끈함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이해와 관용이 모여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꼭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로는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으면 그만. 그것은 독서, 영화, 운동, 음식 등 일상을 떠나 어떤 것으로 치환되고 가능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