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옷
김정 지음 / 해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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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을 입은 채 방황하는  세 남녀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 소설 《바람의 옷》. 자극적인 소재와 화법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담담하게 걸어가는 듯한 클래식한 한국 소설입니다. 소용돌이치다 이내 잠잠해지는 그것이 매번 반복되는 내 안의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혼란스럽습니다만.

고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텍스트는 이리저리 흩날리는 꽃잎처럼 정처 없이, 하지만 고혹적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1940년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굴곡을 한 여인의 인생에 빚 대며 사무치게 외롭고 절망적인 자신을 찾는 과정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는데요. 어머니에 대한 분노, 아버지에 대한 원망, 신부님에 대한 감동, 일찍 가버린 경경과의 관계, 고든과의 열정 없는 결혼, 바람처럼 스친 규와의 인연, 그리고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며 1장은 화자의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물 흐르듯 흘러 써냅니다.

A Posse ad Esse

가능에서 현실로

 

신부님에게 이끌려 더블린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는 시작, 화자는 바람의 옷에 휘감기어 서양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삶을 살 거란 어떤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미국, 더블린, 아비뇽, 에든버러, 런던,  파리, 피렌체를 지나 한국의 '함 화방'으로 이어집니다.

 

2장은 화자가 우연히 들린 골동품점이자 화방에 자신의 물건을 맡기면서 시작되는데요. 이 화방의  남성 또한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곳에 간신히 몸을 맡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둘은 다른 듯 비슷한 이끌림으로 서로를 묘하게 탐미합니다. 주로 젊은 남성이 뜻밖의 장소에서 정신이 나간 듯한 여인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3인칭으로 쓰여 독자들도 함께 관찰하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3장은 여인과 젊은 남성의 삶이 오버랩되며 어릴 적 친구 '혜주'의 인생을 연결합니다. 집 없이 바람처럼 겉도는 여자와 태어날 때부터 집을 가지고 있어 한 번도 뺏겨 본 적 없는 남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아를 찾아 헤맬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여인이 상상한 혜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람만이 얼굴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장소나 공간 역시 나름의 얼굴을 가진다.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잊어버릴 수 없는 얼굴은 오랫동안 다른 종류의 얼굴로 기억 속에 저장된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찾은 그곳의 모습이, 그 얼굴이 바뀌어도 보통은 처음 본 그 얼굴로 그곳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

p. 111


​이렇게 정착지를 찾아 떠돌던 여인은 살아 숨 쉬는 집에 생명력을 넣고자 미친 듯이 물건을 수집하지만, 전소되어 파괴 된 집을 마주하게 되죠. 책은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반복한 '펜티멘토'적인 화법으로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옵니다. 죽음이 곁에 가까이 있음을 애써 모른척하는 인생의 굴레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비록 그 삶이 녹록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 인정하는 일. 우리 삶이  쉽지도 어렵지도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마치 시시포스 같아 서글퍼집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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