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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평점 :
김동영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정신과 주치의와 쓴 《당신이라는 안정제》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아픔을 상담과 치료, 대화와 걱정 사이를 오가는 독특한 형식이 인상적이었던 책. 여행 작가, 뮤지션, 라디오 작가, 카페 사장 등등 멈춤을 거부하는 김동영의 에세이를 이렇게 또 만났습니다.
그때 느낀 불안과 우울, 슬픔의 감정은 고스란히 내 안에 숨 쉬고 있어 한동안 마음을 추스리기가 어려웠는데요. 오랜만에 만난 신작은 미열을 지닌 온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위로를 건네더군요. 무엇이 되지 않아도라는 가정형 문장의 맺음말이 '괜찮아'가 될지, '좋다, 슬프다, 나쁘다'가 될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자신 또한 마흔이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 동안 다양한 업을 경험하며 이곳저곳 떠돌고 있기 때문이죠. 지방 공대 출신이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이런저런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작가는 '눈꺼풀이 없어 죽어도 눈을 감지 않는 생선처럼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생선'이란 필명을 지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나의 여행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이고, 조금 과장되게 의미를 부여한다면,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돋보기'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통해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여행은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p. 106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여행과 일상에서 느낀 점을 진솔히 담고 있습니다.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소득, 영어를 하지 못해 제대로 된 밥을 사 먹지 못했던 서러움, 낯선 도시를 살아가는 일상, 길 위에서만 보이는 영감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고, 대단한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은 삶, 그렇게 보낸 일상이 모여 비범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한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서에서 할 법한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직면하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상대를 다독이고 안심시키는 솔직함이 이 책의 가장 큰 무기죠.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포기해야 할 때는 깨끗하게 포기해도 괜찮고, 삐끗해도 다시 해보면 된다는 응원을 얻었습니다.
때로는 가식적인 관심보다 무심한 말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잖아요. 관심 없는 척 툭 던지는 따뜻한 다독임, 스스로를 무엇이 되기 위해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일만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당부하는 말투도 퍽 고맙습니다. 조금은 내려 놓아도 괜찮다는 그런 말투.
"이건 나의 이야기다. 더불어 당신의 이야기다. 난 이제 이쯤에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길에서 보낸 시간 속에서 놓쳤을지 모르는 순간과 감정을, 이제는 당신이 찾아내 내게 전해주기를 바란다.
행운을 빈다.
그리고 응원한다, 당신의 여행을.......
안녕.
건강하길.
p. 185
책을 읽다 문득 낯익은 이름에 관심이 갑니다. 얼마 전 이른 나이에 다른 곳으로 간 가수에 관한 짦은 글. 다섯시에 일어나는 습관과 그때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두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커피와 햇빛, 햇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는 라디오 게스트로 인연을 맺어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언젠가는 포근한 햇살을 선사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책은 12월 18일에 출간되었고, 세상은 그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그 사람이 책을 읽어봤다면 어땠을까란 마음에 안타까움이 스며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