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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연애소설은 어떨까? 호기심이 커졌던 《연애의 행방》. 연애소설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면 이렇습니다. 구체적인 배경 묘사는 실제 장소를 뿌려놓은 떡밥을 모두 수거하는 영민함을 물론이요, 연애는 타이밍임을 실감케 하는 적재적소의 반전이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연애의 행방》은 겨울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진 작가의 스키장 연작'설산 시리즈'를 내놓아 벌써 (우리나라 번역은) 4번째 책입니다. 스키장과 친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낯선 흥미를 유발하고요.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독자에게는 책을 덮자마자 바로 스키장으로 떠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확실하네요. 셔벗처럼 하얗게 포말을 그리며 흩날리는 파우더, 춥지만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달릴 때의 쾌감. 겨울 스포츠를 즐겨 본 사람은 짜릿한 쾌감을 공감하게 될 겁니다.
"겔렌데 마법'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겔렌데에서 만나면 이성이 실제보다 몇십 퍼센트쯤 더 멋있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고글로 얼굴을 확인하기 어렵다든가 스키복으로 몸매를 가릴 수 있다든가 스키나 스노보드의 실력을 보고 눈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눈밭에서 도움을 받고 자상한 배려를 받다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라는 것도 있다."
p.165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면 연애도 '법칙'이 적용됩니다. '겔렌데(Geland. 산과 들의 독일어) 마법'을 통해 겔렌데에 들어서면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는 관성을 여지없이 적용하는데요. 스키장이란 한정적인 공간이 현실은 잠시 잊고 사랑에 눈에 멀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공간으로 쓰입니다.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쓰이는 폐쇄공간이 흥미롭습니다.
"아, 그때구나.라고 고타는 깨달았다. 아까 미유키의 시선이 지그시 자신의 얼굴에 박혀 있는 것처럼 느꼈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고타의 거울 고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던 것이다.
p.41
고글과 페이스 마스크를 착용한 익명성과 짜릿한 스릴과 엉뚱함, 우연히 모여 재미를 만들어 냅니다 8명의 남녀가 얽히고설킨 인연은 결말이 어떻게 될까 궁금증을 유발하는데요. 연애와 결혼의 서로 다른 온도차 뿐만 아니라, 뜨겁게 사랑하고 급속히 식어버리다가도 작은 불씨에 되살아는 연애의 과정도 세심히 녹여 냈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랄 것이다. 낯선 남자라고만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지금 사귀는 연인 히다 에이스케였다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혼란에 빠진 그녀를 향해 히다는 잽싸게 품속에서 꺼낸 반지를 내보인다.
"내가 이끌어줄 테니 따라와 주면 좋겠어, 영원히."
p. 110
'매리지 블루(marriage blue)'에 빠진 남자가 약혼녀 몰래 내연녀와 스키장에 왔다가 탈로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애인을 위한 프러포즈를 계획했다가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며, 아버지의 고집을 꺾기 위한 하얀 거짓말, 단체 미팅(겔팅)을 참가해 로맨틱한 사랑을 이루니다.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시시콜콜한 소동극도 그가 쓰면 어떨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권합니다.
"누구에게나 플러스 요소와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덧셈과 뺄셈을 거쳐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다. 그것을 모모미는 이번 여행에서 분명하게 판별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p.286
나와 비슷한 성향은 사람과 반대 성향의 사람과 하는 것이 차이가 있겠죠. 모모미처럼 상대방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사랑도 있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이해할 줄 아는 맞춰가는 일이 연애란 생각도 들었어요.
책 표지를 뒤집으면 신기하게도 또 하나의 표지가 나타납니다. 바로 일본 원서 일러스트 표지인데요. 어떤 표지를 입어도 시선을 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네 번째 설산 시리즈. 겨울이 가는 게 아쉬운 독자들을 위한 스릴 있는 연애소설입니다. 책 속의 연애, 말도 안 된다고요? 혹시 모르죠, 2월에 있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평창 겔렌데 마법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