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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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오전 11시 … 1 … 2 … 3 … 4
오전 11시 30분 … 5 … 6 … 7 … 8
오후 12시 … 9 … 10 … 11
오후 12시 30분 … 12
오후 1시 … 13


제157회 나오키 상을 받은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 '영휴(盈虧)'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찾아 보았더니 '차고 기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달이 차고 기운다는 은유를 소설 속에 차용하고 있는데요. 책을 받자마다 표지와 질감, 목차를 살펴보면 대충 5분 정도 만에 책의 첫인상이 결정되는데, 《달의 영휴》는 좀처럼 장르를 파악하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중반 정도 읽다 보니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했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기본 방향이 파악되더라고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얽혀 있는 인연들의 퍼즐을 맞춰가는 형식에 '사랑'이란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을 더했습니다.  첫 장은 '오사나이'라는 중년 남성이 한 소녀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딸의 흔적이, 이상하리만큼 낯설지가 않죠. 대화를 나누는 2시간여 동안 기시감은 좀처럼 떠날 줄을 모르고,  소설은 이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루리도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니까. 어디에 섞여 있어도 나는 그 사람이 루리 씨라는 걸, 루리 씨의 환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어요. "


(중략)


"하지만 나는 몇 번 죽어도 다시 태어날 거야. 아키히코 군이 비칠비칠 할아버지가 돼도,

젊은 미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아키히코 군 앞에 나타나서 유혹할 거야. "

"불 신?"

"불사신이 아니야. 죽는 건 죽어. 하지만 죽는 방식이 다른 사람하고는 달라. 나는 달처럼 죽을 거니까."

 

 

".......?"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번
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죽음의 기원을 둘러싼 유명한 전설인데, 몰라?"
​"누구한테 들었어요?"

"언젠가 본 영화에서 어떤 책에 쓰여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어. 인간의 조상은 나무 같은 죽음을 선택해 버린 거지. 하지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P181-182


 

 《달의 영휴》는  환생과, 윤회, 그리고 사랑의 영원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차별점은 전생의 기억을 (어떠한 사건으로 각성) 가지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사랑의 깊이가 조건이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여러 명이 된다는 인상 깊은 소녀의 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어쩌면 나의 연인, 가족, 자식, 친구로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전생에 사랑하는 관계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니, 무서우면서도 마음이 저려오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갑자기 헤어지게 된다면 못한 말, 해보지 못한 일들이 미련에 남을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은 떠나간 사람과의 기억을 평생 끌어안은 채 살아갑니다.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마음의 작은 상처는 남아 있죠. 세 번의 환생 끝에 그 사람을 만난다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흐르는 눈물, 그리고 다시 앞 장으로 되돌아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을지언정 그때마다 받는 충격은 신선하기까지 합니다.


 

소설 속의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꼬여 있습니다. 빈틈이 없어요. 독자는 읽는 동안 아주 신중히 풀지 않으면 엉켜서  엉망이 돼버리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말 한마디, 성격, 습관 등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복선이고 은유일 수 있거든요. 또한 '루리'라는 27세 여성의 환생이 세 번. 오사나이의 아내 '고즈에'의 환생까지 더해져 복잡한 미로를 걷는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자꾸만 앞을 들추는 수고스러움이 동반되어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는 어렵고요.  짜임새 있는 떡밥의 꼬리의 꼬리를 물고 있어 인물  한 사람이라도 허투루 버릴 수가 없습니다. 마치 추리 소설의 범인을 쫓는 것처럼 말이죠.  일본 특유의 비슷비슷한 이름이 헷갈릴 수 있으니 관계도를 그리면서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정말 이렇게 사는 삶이 가능할까요? 드라마 <도깨비>에서나 볼 듯한 컨셉트,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도 생각났습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아홉 살 린포체(Rinpoche,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가의 고승. 살아있는 부처로 불림) '앙뚜'와 오직 앙뚜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스승 '우르간'의 특별한 여정을 담은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환생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란 생각을 갖게 마련인데요. 소설 뒤에 참고한 문헌을 보면 픽션이지만 팩션인 것 같은 느낌도 드는 미스터리 한 소설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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