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1119/pimg_7650201491777921.jpg)
그동안 금단의 영역으로 불리는 곳곳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남자와는 신체적인 구조가 달라 열등하다거나, 원래부터 할 수 없는 일이라거나, 히스테릭한 성향은 여성만의 고유함이라고 치부하던 과거와 달리. 21세기 현재는 성(性)을 떠나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존속 자체 조차 불투명해질 수 있는 위기에 맞닿아 있죠. 이젠 제발 문단에서도 여류작가, 처녀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여성이 하면 놀라운 일인가요? 남성 작가, 남류 소설가, 총각작이란 말은 없으면서 유독 여성을 한정하거나 비유 대상으로 삼아온 문학계의 낡은 관습을 한국의 젊은 7명의 작가가 무너트리고자 합니다.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 이렇게 7인 7색의 단편을 엮은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는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온 여성들에게 해방감과 존재감을 선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 조남주 《현남 오빠에게》 중에서-
표제작인 '현남 오빠에게'는 《82년생 김지영》이후 처음 발표하는 작품으로 소설로 대학 CC였던 주인공과 10년 동안
연애한 현 남 오빠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글이자 그동안의 불편함을 전하는 고백서입니다. 차근차근 쭈뼛쭈뼛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시작해 점점 해방감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마지막 구절은 소설의 백미입니다.
상상의 인물 '강현남'을 통해 조남주 작가는 아버지, 오빠, 남동생, 선배, 선생님, 남자친구 등등 여성을 인간 자체로 보지 않는 남성 권력을 비트는 캐릭터로 활용됩니다. 그는 어리숙한 신입생인 '나'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풀며 10년 지기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대학 내내 '강현남의 여자'로 오빠의 말대로 따라왔지만, 친구까지 가려 만나나는 둥, 자기가 전근을 자주 가는 직업이니, 너는 사서 공무원이 되면 좋겠다는 둥, 아이는 되도록 많이 낳고 싶다는 둥 나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나'는 점점 오빠의 인생 빅 피처에 장식품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오빠의 청혼을 계기로 이건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현남 오빠에게'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종하고 이용하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게 되는 심리 상태인 '가스라이팅(gaslighting)'를 소재로 하는데요. 이는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를 떠오르게 합니다.
딸은 야무지고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왜 생긴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 딸 키우는 재미도 마찬가지였다. 딸과 아들의 차이가 아니라 각 아이들마다의 차이 아니냐고, 어찌 딸만 키우는 재미가 있느냐고, 나는 생전 딸 키우는 즐거움은 몰라도 대신 아들 키우는 맛은 정말 잘 알겠다고 말하던 엄마였던 것이다.
- 김이설, 《경년更年》 중에서-
이처럼 남성 중심의 사회는 항상 여성이라 안되고, 여성이라 지켜줘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뿌리박혀 있는 남녀 차별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부터 일어날 가능성 있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익숙해진 여성의 성찰은 최정화 작가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에 담겨 있습니다.
그 밖에도 《현남 오빠에게》는 가정, 학교, 사회에서 여성이라 겪었던 불편함, 수치, 차별, 모순, 여성 혐오, 가부장제 등을 날카롭게 비틀고 있습니다. 두껍지 않은 분량과 각양각색의 단편이라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강박이 없으며 무엇보다 술술 읽힙니다. 그동안 '페미니즘'하면 무겁고 전투적인 태세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요. 소설의 형태로 풀어 내려간 형식이 어쩌면 내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 같아 관심과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 냅니다.
《현남 오빠에게》여성 자체도 물론이거니와 남성들이 함께 읽고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장식품, 혹은 반대의 성, 무조건 무시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의 인격체이자 당신의 어머니, 누나, 여동생, 딸, 며느리 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사회의 구성원이 하나둘씩 생각을 바꿔 나갈 때 틈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던 바위도 균열이 생겨 깨질 수 있음을 자각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