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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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참 야속 한 것 같아요. 제대로 즐기기도 못했는데 벌써 날씨가 추워졌잖아요. 밖에서는 벌써 두툼한 겉옷을 꺼내 입고 목을 한껏 움츠린 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길거리 음식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스한 음식이 장사진을 이루고요.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그런 계절이 성큼 다가온 것만 같습니다.

이토록 나뭇잎이 갈대들이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계절이 오면 우리들이 마음도 정처 없이 흔들리는 것이겠죠. 함민복 시인의 시 '흔들린다'를 그림과 함께 엮은 시그림책 《흔들린다》는 잠시 흔들리는 나무의 결과 달라진 바람의 온도 차이를 오롯이 느껴 볼 수 있는 감수성 짙은 책입니다.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서정적인 여백의 미는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 한성옥님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했다고 합니다. 언어의 함축인 시와 시각의 함축인 그림이 만나 보면 볼수록 마음의 위로를 선사합니다.

 

 

흔들린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린다는 말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은유 같습니다. 욕망과 시기, 슬픔과 아픔의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뽑히지 않고, 꺾이지 않고, 유순하게.  바람의 방향으로 흔들려 견디는 나무는 반복되는 삶을 살아내는 현대인의 자화상인지도 모르죠. 깊어가는 가을밤, 조근조근 시를 읊조려보는 것. 퍽 낭만적인 일과 치열한 삶을 동시에 돌아보는 저녁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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