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키엔티아
도다 세이지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 인디 만화계의 새로운 물결, '도다 세이지'의 신작은 단편이 주는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만화라는 매체로 이야기하는 능력을 지났습니다. 도다 세이지의 세계관은 외피는 디스토피아지만 내피는 따스한 감성을 이야기합니다. 차가운 기계가 공존하는 가상의 미래에도 연민과 공감, 사랑이란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은 남아 있어 살아가는 힘을 준다는 주제를 내포하고 있죠. SF 만화지만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일곱 편의 독특한 단편집입니다.

과학의 여신 '스키엔티아'가 하늘에서 굽어보고 있는 가상의 도시. 과학기술로 편리했지만 인간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우울증에 빠져 있고,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릴 때가 있죠. 그때마다 여신 '스키엔티아'는 마치 우리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듯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첫째 아이를 잃고 둘째 아이도 잃은 엄마에게 딸의 DNA를 복제한 복제인간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안, 솔깃하지 않아요? 세상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며 그저 죽고 싶단 생각만 하던 여성이 전신이 마비된 일중독 노인에게 몸을 빌려준 후로 희망을 찾는다는 이야기. 누구도 사랑해보지 못한 남성이 사랑의 묘약을 먹었지만 점차 약에 의지하지 않고서 사랑을 이룬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큰 울림을 줍니다.

2% 부족한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연습에 매진하는 주인공은 모든 사람들의 데이터를 줄 테니, 실험에 참가해보지 안겠냐는 제안을 뿌리쳤습니다. 만약 이 제안을 수락했다면 짧고 굵은 삶을 사는 대신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거든요. 친구는 그쪽은 선택하고 나날이 히트곡을 만들어 스타가 되죠. 결국 음악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합니다. 대스타가 된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임을 느끼게 합니다.

빅데이터로 사람들의 음악 취향을 반영해 만든 곡, 기계에 접속하는 대신 수명을 잃어가는 삶이라면 어떨까요? 당신은 세상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 위험하지만 보장된 삶을 선택할 겁니까? 아니면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으로 삶을 이룰 건가요? 깊게 논의해볼 가치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거겠죠.

가족도 없이 일만 해오던 사람, 어쩌다 보니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간병인을 맡은 로봇이 케어해주는 세상이 올 겁니다. '도다 세이지'의 작품에는 벌써 이루어진 기술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미래상을 정확히 파악한 듯 보입니다. 함께 외출도 하고, 약도 챙겨주고, 말벗도 되어줍니다. 어쩌면 AI는 가까운 가족에게 보일 수 없는 밑바닥까지 보인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 없는 미래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게 될지 궁금증과 두려움, 약간의 흥분이 교차되네요.

짧은 단편이지만 임팩트 있는 메시지가 책을 덮은 후에도 길게 이어지네요. 취향 저격 도다 세이지의 SF 만화집은 《이 삶을 다시 한번》도 추천해 드립니다.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이 작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삶을 다시 한번》 ,《스토리》 , 《설득게임》이 한국에는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 삶을 다시 한번》 같은 경우는 2003년에 홈페이지에 올린 작품을 모아 만들었거든요. 10여 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첨단 문명을 지닌 미래에도 역시나 '사랑', '인간의 따스함'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희박해짐을 생각해 본 만화였습니다. 때로는 세상은 아이러니한 일들의 집합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