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1년~ 65년 즈음, 버지니아 주 (남부연합)의 마사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에서 벌어진 매혹과 탐혹, 그리고 광기의 심리를 그린  '토머스 컬리넌'의 장편소설 《매혹당한 사람들》. 1966년 첫 소설인  《매혹당한 사람들》을 발표해 평단과 독자의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1971년 '돈 시겔'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는데요.  46년 후인  2017년 '소피아 코폴라'감독이 리메이크하며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은 '소피아 코폴라'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으로 영화 감상전.후  영화를 깊게 이해하는 가이드가 될 것입니다.

소설  《매혹당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전쟁이 보입니다. 첫째는 흑인 노예해방과 복합적인 이유로 시작된 남북전쟁이고, 둘째는 북부 연합군인 탈영병 '존 맥버니'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닫는 매혹 전쟁입니다. 고립된 숲 속, 여자신학교를 배경으로 영화의 주요 인물을 천천히 살펴보면, 매혹시킨 사람 매혹당한 사람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알 수 있죠.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개개인의 상처가 맞물리며 다수의 여자들이 한 남자를 두고  판타지를 만드는 욕망이 충돌합니다. 그 밀고 땅기는 눈치 전쟁과 이간질, 질투심은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원제 'The Beguiled'는 '구슬리다, 마음을 끌다'란 뜻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성(性) 적 매력으로 자석처럼 끌릴 수밖에 없는 욕망을  보여줍니다.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는 경쟁심, 질투. 그리고  신분상승을 꿈꾸는 불한당과의 농밀한 스릴이 복합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욕망덩어리 자체기도 합니다. 탐스러워  보일 정도로 예쁜 겉모습을 하고 있는 과일도 가끔 속이 익지 않아 떪은 맛의 입안 가득 퍼지는 것처럼.  서늘한 마음과 들끊는 욕망의 이중 공간이 바로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마사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의 리더 '마사 판즈워스(니콜 키드먼)'는 집안의 탕아(蕩兒)'들로 몰락한 가문의 여성입니다. 이성적이며 냉철하며, 수컷을 극도로 경계하는 폐쇄적인 성격과 (당시 상황도 그렇지만) 생활고를 못 이겨 '돈'을 밝히는 인물입니다.  그의 동생 '해리엇 판즈워스'는 태생부터 우유부단!  똑 부러지는 언니와는 다르게 연약한 마음을 가진 여자신학교의 선생님인데요. 학생들을 살뜰이 챙길 정도로 친절한 인물이죠. 말 그대로 구워삶아 먹기 딱 좋은 캐릭터입니다. 흑인 노예지만 판즈워스 집안에서 차별받지 않는 '마틸다 판즈워스'는 유일하게 존 상병에게 매혹당하지 않는 인물로 이곳 사람들과 이질적이면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캐릭터죠.  


판즈워스 학교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며 까칠한 성격 탓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기 싫어하는 흑발의 얼음공주  '에드위나 모로( 커스틴 던스트)'와 빼어난 외모를 무기로 누구나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 '얼리샤 심스(엘르 패닝)'는  소설 속 가장 눈에 띄는 인물입니다. 그 밖에 존 상병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이곳으로 데리고 온 '어밀리아 대브니'와 존의 속마음을 의심하는 예리한 '에밀리 스티븐슨'.  특히 에밀리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군인의 표상을 존에게서 찾으려는 마음을 갖게 되죠. 마지막으로 가장 나이가 어리지만 명석한 두뇌와 어른스러움을 가진 '메리 데브스'가 등장합니다.


 

고립된  공간에서 두 명의 선생, 다섯의 학생들, 그리고 흑인 노예에게 둘러싸인 부상당한 반대편 군인은  여자들의 보살핌 속에 하루가 다르게 치유되고 있습니다. 이 집단의 유일한 남자 '존 맥버니' 상병에 대한 소개를 빼놓을 뻔했네요. 북부 연합군인 그는 아일랜드 시골마을 출신으로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상대방에 따라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세 치의 혀를 가진 뱀 같은 인물이죠. 영화에서는 '콜린 파렐'이 맡아 열연합니다.

"그가 내 귀에 키스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이 턱수염이 까칠했다."

"믿을 수가 없구나. 네가 여기서 가장 예쁜 애가 아니라니…."

P17

한번 걸려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거미줄 같은 매력으로 판즈워스 여자들을 매혹시키죠. 여자들은 일면부지한 이 남자를 통해 자기가 보고 그리고 싶은 모습을 찾아내죠. 그를 믿거나 사랑에 빠지며, 질투하고, 이별하기도 합니다. 이 여자들에게  존 상병은 시든 꽃에  단비 같은 존재거나, 이름 없는 잡초에 꽃이라 명명해준 유일한 사람일 겁니다. 두터웠던 경계심은 어느새 느슨해지고 적군이라는 것과 남자라는 위험성을 잊어버린 채 단단히 매혹당해 버린 거죠.

 

소설 《매혹당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사건을 여러 각도로 바라본  <라쇼몽>식 구조를 갖는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상황과 인물 묘사는 한 층 풍성함을 유지합니다. 여덟 명의 등장인물은 딱 잘라 선과 악인으로 구분 짖지 못하는 다각화된 캐릭터인데요. 자신이 가진 보석을 뺏기고 싶지 않아 하는 여자들의 심리를 농밀하게 묘사한 작가의 화법에 매혹당해버렸습니다. ​



"침입자가 지는 경우도 많아. 한 번은 애벌레가 붉은 개미의 보금자리를 공격했는데 애벌레가 개미한테 매혹당한 건지 아니면 잠깐 방심했던 건지, 개미들이 산산조각나고 말았어. 조그만 개미들이 촉수로 그를 어루만지는 듯했는데 얼마 안 있어 애벌레 꼬리 쪽에서 액체 같은 게 몇 방울 나왔고, 개미들이 그 액체를 아무 맛있게 나누어 먹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렇게 애벌레 진액을 다 빨아먹고 나서 개미들이 힘을 합쳐 애벌레를 바닥에 파묻어버렸어. 내 눈에는 나중에 먹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어. "

P89


​적절히 등장하는 복선도 얼마나 매혹적인지요. 평소 동물과 곤충 왕국을 관찰하기를 즐기는 '어밀리아'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소설의 은유입니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 아름다운 외피는 우리의 경계심을 어떤 식으로 눈멀게 만들 수 있나 생각해 보 수 있죠.


판즈워스 여자 신학교의 여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잊힌 사람들이거든요. 전쟁이 한창인 세상에서 밀려난 관심 밖의 사람들로 누군가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 한 사람들입니다. 하루 반나절 만에 모두 매혹당한 사람들은 '스톡홀롬 증후군'과 비슷한 증세를 보입니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집단의 광기가 어떻게 비뚤어진 힘을 발휘하는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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