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 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 대한민국 스토리DNA 15
김동인 외 지음 / 새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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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진기행》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 문인 10명의 단편18선을 모았습니다. 절제되고 함축적인 표현에서 오는 깔끔하고 강렬한 문장은 단편만의 고유한 매력인데요. 김승옥의 무진기행 말고도 김동인의 감자, 이상의 실화,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 등 교과서에서 다뤄진 유명한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이 적절히 섞여 있어 풍성한 독서를 이룰 수 있습니다. 특히 《무진기행》은 얼마 전 '알쓸신잡'에서 떠난 순천이 바로  '무진'의 배경임이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한국 근현대 소설은 입시 때문에 접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도 전문이 아닌,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 단락으로 읽어봤을지도 모릅니다.  필자 또한 입시를 위해 읽었던 그때의 감정과 지적 유희를 위한 독서는 분명 감정의 차이가 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읜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중략)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P113


 

비로소 안개로 둘러싸여 도망치듯 떠난 주인공의 안식처 무진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염세적인 세계관에 쉽게 동화되어 한동안 빠져나오기 어렵기도 했던 슬픈 느낌은 60년대의 대한민국 근대사와 맥락을 나란히 합니다.  가상의 무진과 서울이란 장소를  뚜렷하게 나눠 섬세한 질감을 보여주기 때문일 텐데요. '안개'의 모호한 불명확성이 당시를 살아가던 지식인과 사회 혼란을 상징하는 장치로 쓰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다!"​


다짜고짜 아픈 머리를 비우고 싶어 멀리 떠나는 도피처 같은 곳이 가상의 도시 '무진'이죠.  모두 다 근대를 외치며 서울로 상경하는 반면 주인공은 사라지고 싶을 때 무진을 찾죠. 그곳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안개처럼 뿌옇게 부유하다가 언젠가 사라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는 세계죠. 그곳에서 나는 '인숙'을 만납니다.


1960년대는 소설의 배경이자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60년대는 4.19 혁명이 실패하고 5.16 군사 정변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민주화의 열망이 꺾이던 시대였죠. 경제 개발을 목적으로 독재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급작스러운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서울로 향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근대적인 공동체와 가족이 해체되고 부적응하던 주인공은 방황하게 됩니다.

 

단순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라는 타이틀 말고 언급된 작가들은 모두 문학상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단편이 끝나고 나면 작가의 연보와 상의 의의를 생각해 보는 특별함을 갖춥니다. 10인의 리스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학상의 탄생과 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다시 불어오고 있는 고전 열풍 속에서 고전은 나와 주변의 역사를 알라가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재가공돼 많은 예술 문화의 바탕이 되고 있으니까요. 작가 김승옥은 현재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1980년 절필 선언 후  총 24편의 소설을 썼고, 그 후 성경과 신학에 빠졌으며 세종대학교 국어 국문 학교 교수로 재임했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재활 치료를 받고 계신 것으로 확인됩니다.


《무진기행》의 매력에 빠졌다면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도 읽어보길 권합니다. 1964년 어느 겨울날, 선술집에서 만난 '안'이라는 인물과 서른여섯의 가난해 보이는 한 사내와의 이야기입니다.  저녁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의 에피소드를 담았으며 60년대의 어두운 시대를 말장난의 언어유희로 풀어낸 감성 소설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간직한 '무진'은 어떤 모습인가요? 소외와 고독 외로움이 깊어지는 멜랑꼴리한 가을날 읽는다면 쓸쓸한 정취를 담북 이어받을 수 있을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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