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오후 - 시인 최영미, 생의 길목에서 만난 마흔네 편의 시
최영미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책소개]
 

짧은 언어의 함축이 만들어내는 문학의 정수 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나를 음미하는 일과 일맥상통합니다.  시 읽는 일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최영미 시인이 고른 마흔네 편의 시. 세계의 명시와 원문, 쓰일 당시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엮어낸 코멘트는 단순한 해설을 넘어  즐거움이 됩니다.


 [목차]

1부 고통과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
진실을 찾아 시들어가리 |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 깊게 맺은 언약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녀에게 장미가 아니라 벼룩을 바친 시인 | 벼룩 / 작별 - 존 던
죽음, 그대가 죽으리라 | 죽음이여 뽐내지 마라 - 존 던
나를 노래하다: 사포의 서정시 | 그는 내게 신처럼 보여 - 사포
모든 정직한 사람은 예언자 | 순수의 조짐 - 윌리엄 블레이크
호랑이여! | 호랑이 - 윌리엄 블레이크
아! 바이런 | 이네즈에게 - 조지 고든 바이런
‘반대’를 위해 태어난 시인 | 어느 개에게 바치는 비문 - 조지 고든 바이런
이 살벌한 세상에서 | 마지막 여름 장미 - 토머스 무어
제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시기를 |그냥 순순히 작별 인사 하지 마세요 - 딜런 토마스
내가 눈을 감으면 |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 실비아 플라스
영원을 향한 시간의 도둑 같은 전진 | 소네트 77 - 윌리엄 셰익스피어
젊음의 재 |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소네트 73 - 윌리엄 셰익스피어

2부 당신의 입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들
아버지를 위한 대답들 | 나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비가(悲歌) - 마크 스트랜드
만일 세상이 두 번 멸망한다면 | 가지 않은 길 / 불과 얼음 - 로버트 프로스트
가라 내 노래여 | 임무 - 에즈라 파운드
세상은 추하고 사람들은 슬프다 | 바보 같은 - 월리스 스티븐스
우리는 앞을 보고 뒤를 보지만 | 종달새에게 - 퍼시 비시 셸리
그렇게 엮인 사랑은 또 그렇게 풀릴지도 |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내 속에서 노래했던 여름이 |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먼지처럼 |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 - 마야 안젤루
꽃을 잊듯이 | 잊어버립시다 - 세라 티즈데일
그는 나의 북쪽이며 남쪽 | 장례식 블루스 - W. H. 오든
너무 미리 말하지 마 | 시대가 변하고 있다 - 밥 딜런

3부 예술은 착각이었네. 욕망도 헛것이었네
오래, 오래 뒤에, 어느 참나무에서 | 화살과 노래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내가 젊고 대담하고 강했을 때 | 베테랑 / 이력서 - 도로시 파커
완벽한 장미는 없다 | 완벽한 장미 한 송이 - 도로시 파커
황야도 천국이 되리 | 루바이 4 / 루바이 11 / 루바이 15 - 5오마르 하이얌
저 하찮은 진통제들 | 가슴은 먼저 즐겁기를 원하지 / 사랑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
- 에밀리 디킨슨
바닷가에서 | 기탄잘리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내가 죽거든 | 노래 - 크리스티나 로제티, 소네트 71 -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랑의 시간 |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
어떤 조각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네 |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황무지 | 죽은 자의 매장 - T. S. 엘리엇
두드러기를 긁지 마라 | 아들에게 주는 충고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가의 말

시대를 떠나 후대에도 읽히는 고전처럼 시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묘한 기시감을 전하는 바탕입니다. 책 속에 전하는 마흔네 편의 시는 당시에도, 지금도 해왔을 고민과 감정을 공감하는 계기가 되죠. 사랑과 죽음은 영원한 시의 주제입니다. 아름다운 꽃 대신  『벼룩』으로 사랑을 고백한 재미있는  '존 던'의 시를 들여다봅니다.  400년 전의  시는 혐오스러운 벼룩을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물로 사용 하는 발상이 엉뚱하면서도 의미심장합니다. 사랑과 벼룩은 은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놈은 먼저 나를 빨고, 그대를 빨아 이 벼룩 속에 우리의 두 피가 섞였지요.'라는 구절은 전염성이 강한 사랑을 뜻하는 은유입니다. '두 피가 모여 하나로 된 피를 실컷 먹어 배가 불렀지요.'라는 구절은 사랑의 결실, 임신을 뜻한다고 하네요. 존 던의 시를 알았으니, 이제 사랑 고백할 때 꽃 대신  『벼룩』을 읊어 준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섹시하고 도발적인 사랑고백에 웃음이 납니다.

그는 내게 신처럼 보여

그는 내게 신처럼 빛나 보여,

네 앞에 마주 앉은 남자,

달콤한 너의 말에 귀 기울이며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 때면

내 가슴이 가늘게 떨리네.

너를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내 혀가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내 귀가 둥둥 울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몸이 떨리네

나는 마른 풀처럼 창백해지고

죽을 것만 같아

(중략)

 

기원전 600년경 에게해 동쪽의 섬인 '레스보스(Lesbos)'에서 태어난 '사포'의 시는 2,50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련된 언어로 다가옵니다. 서정시를 발전시킨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는  서양 문학의 기본이 되는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동성애를 시어로 표현한 특별한 여성이었는데 레즈비언(Lesbian)의 언어를 탄생시킨 장본이기도 합니다. 사포가 태어난 섬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언어기도 하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처럼 빛나 보이는 남자를 바라보는 마주 앉은 여인입니다. 너의 마음을 빼앗은 그를 질투하는 사포의 농밀한 마음을 담은 시죠. 인간의 느낌, 나의 감정을 표현한 시인 '서정시'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사포. 플라톤은 예술을 관장하는 9명의 뮤즈 다음으로 10 번째 뮤즈로 사포를 불러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정열을 상징하는 꽃 장미를 주제로 쓴  도로시의 슬픈 시   『완벽한 장미 한 송이』. 최영미 시인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사랑을 저주하는 시라고 말합니다. 일종의 안티(anti) 연애시란 이야기. 달콤한 1연을 지나 복선이 깔린 2연으로 연결되는 복수의 칼날을 겨눈 3연의 완벽한 트릴로지. 후반부의 '리무진'을 향한 다양한 해석이 운운한데 최영미 시인은 리무진처럼 길고 확실하며 현대적인 사랑의 부적을 원하는 확실한 상징,  꽃보다 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완벽한 장미 한 송이를 바치는 남자보다 완벽한 리무진을 보내거나 타고 나타나는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역설.  이 시를 읽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해지는 이유겠죠. 신데렐라를 꿈꾸는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꿰뚫어 본듯한 사포가 환생한 것 같아  마음에 콕 박힙니다.

 

 

 

'시' 풀어쓰는 소설보다 함축적인 언어로 쓰여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영시는 번역에서 오는 오역과 의역으로 자국어가 갖는 의미보다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시인이 세세히 풀어주는 마흔네 편의 시가 가을의 감성을 제대로 파고듭니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이 조금은 누그러진 오후 4시 같은 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만 쉬어가는 시간이 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날 당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시 한편. 빽빽한 하루를 유연하게 만드는 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비타민 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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