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9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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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동적인 세월은 단순히 '지배와 저항'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올해는 광복 72주년입니다. 그동안 감추어야 하는 역사, 지우고 싶은 역사로 인식되었던 일제 강점기를 다루는 영화와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군함도>와 <박열>을 비롯해 <청연>, <암살>, <밀정>, <동주>, <귀향>, <대호> 등 거장 감독들이 유독 일제시대를 다뤄 공론화되기도 했습니다.  수치와 고난의 역사였던 일제 강점시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고무적입니다.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은 2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역사 분야 최고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의 완결판입니다. 1875년부터 1945년까지를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관점을 번갈아가며 서내려간 글이 지루함을 없애줍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하급 무사 집에 양자로 입적해 무사 계급에서 일본 최고의 권력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의 드라마틱한 일생,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주요 사건들을 10년 단위로 정리해 다각화된 시각을 제시합니다.

 

"해녀들은 다구치를 에워싸고 함성을 지르며 만세를 불러댔고, 이어 20여 명의 해녀 대표들이 일본의 수탈 정책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한편, 갑작스러운 해녀 시위대 출현에 놀란 다구치는 차에서 내려 달아났고, 그 소식을 접한 해녀들이 구름처럼 몰려가 다구치를 둘러쌌다. 그러자 경관들이 허공에 총을 쏘아대고 해녀들의 목에 칼을 겨누며 위협했다. 하지만 해녀들은 물러서지 않고 외쳤다.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하겠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우도의 해녀들과 시흥리 해녀 수백 명이 배를 타고 와 시위대에 가세했다. 다구치는 해녀 대표와 마주 앉아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


p.289~290

대표적인 사건은 수천 명의 한국인 독립 군단이 러시아군에 의해 와해된 자유시 참변을 비롯해, 일제의 허위 보도로 만주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공격한 완바오산(만보산) 사건, 제주 해녀들의 경찰 주재소 습격 사건 등은 독립운동사 중심의 역사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주목할만한 또 하나는 서방 세계와의 일제 강점기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다뤘다는 점인데요. 1920년대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각 나라들과 동맹 맺기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한 시대만을 다루는 역사서보다 훨씬 통찰력을 갖게 하는 시각은 자국을 가장 깊게 다루지만, 주변 국가 (일본, 중국)이 정세, 그리고 전쟁 중인 유럽과 대공황을 겪은 미국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는 서양 문물이 최초인 것들이 많았던 시대입니다.  19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신문물을 접한 지식인 계층이 입던 옷 양복이 1920년대에 이르러는 대중화되어 여성들의 양장이나 치마저고리 위에 코트를 걸치고 구두나 양말 등을 갖춘 의복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력거는 1894년 일본인 하나야마가 일본에서 열대를 들여오며 한국에 소개되었는데요. 1910년 대에 압축공기를 이용한 타이어로 교체되며 20년대 이르러서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동 수단이 되었죠. 

 

1920년 화폐법이 개정되며 20 전 은화와 10 전, 5전 짜리 백통화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1921년엔 조선노동공제회가 설립되면서 한국 최초의 소비조합이 개설되었으며 같은 해에 최초의 신문 잡지 기자 단체인 무명회가 창립됩니다. 1927년에는 최초의 정규 라디오방송이 시작되었으며, 무선전화 송수신 시험과 함께 체신국이 최초로 시험 방송에 성공하기도 합니다.

현재 명동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은 1930년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이 최초개설되었으며,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은 친일 기업인으로 알려진 박흥식이 세운 화신백화점입니다. 그 밖에도 최초의 여기자, 방송 아나운서, 비행사 등 다양한 직업군이 생기기도 합니다.

 ⓒ 영화 <동주>

 

<동주>의 영향으로 전혀 몰랐던 인물 '송몽규'를 알았습니다. 책 후반부에 언급된 바 있는 두 청년이 사랑한 대한민국. <서시>, <별 헤는 밤> , <자화상> 등 주옥같은 명시를 남긴 윤동주는 1943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길에 오르던 길에 일본 경찰에 사상범으로 체포됩니다. 그 후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는 생체 실험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투옥된 상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았고 사촌 송몽규 역시 같은 이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꽃다운 청년과 소녀, 무고한 사람들이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사라진 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아픈 손가락인 역사도 상처를 잘 어루만져 주고 덧나지 않게 치료하는 법을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날로 포악해지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에 치를 떠는 것도 한두 번입니다.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일화만 봐도 일본의 치밀하고 꾸준한 계획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하지만 계속 분노만 장전하고 있을 건가요?


 

저자는 서문을 통해 '역사란 거창한 것도 숭고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 개인들의 삶이 물이 되어 개천을 이루고, 그 개천들이 다시 뭉쳐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오늘의 연속이 곧 역사다'라고 말합니다. 일제 강점 시대 또한 지나간 오늘들의 일부일지 모릅니다. 고통과 비통함, 부끄러움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거듭 강조합니다.  

우리 스스로 아픈 상처를 제대로 직시하고 제대로 알려고 할 때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어느 때보다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흥행하면서 주목도가 높아진 시대가 '일제강점기'입니다. 정치, 경제부터 문화, 그리고 잘 알려지 않은 사건까지 일제 강점 시대의 모든 것을 책으로 담은 책 한 권으로 그 시대를 톺아보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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