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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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x 쇼박스 x 해냄 공동 주최 '네이버 북스 미스터리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한 '황희'의《부유하는 혼》. 빨간 구두가 주는 욕망과 강렬함 끝에 흐릿하게 보이는 형태의 무엇. 소설은 기억을 지우고 남의 몸에 유착하여 새 삶을 살려는 부류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고, 스마트폰으로 못하는 게 없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학으로 풀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종종 목격하게 되죠. 내가 알던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딴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일본 사람이 아침잠에 깨어나 갑자기 한국말을 할 줄 안다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 이상한 기운을 받은 적은 없나요?

 

 

 

 

ⓒ 영화 <겟아웃>

 

"남의 몸을 빼앗아 그 사람인 척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우리들의 틈에 섞여 살아가고 있다."

P39


 

책은 '에이, 말도 안 되는 얘기하지 마'라는 말이 나올 법 하지만. 작가가 심어 놓은 복선의 끈을 따라가다 보면 엉켜있던 실타래의 시작점 찾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는 듯한 인물들의 관계가 모아지는 접점이 주는 쾌감과  미스터리, 범죄 장르가 주는 새로운 점을 경험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단순한 영혼의 빙의가 아니라 본령과 결합하여 모조리 몸을 빼앗아 유착하는 어떤 존재. 어떻게 보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겟 아웃>이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자유롭게 넘아들 수 있는 그 무엇들이 우리들 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점이 오싹한 공포감을 배가 시킵니다.

 

"낮달 속으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에 주미는 살짝 현기증을 느꼈다. 드넓은 잿빛의 대기 속에서 무엇인가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략) '죽고 싶어 했잖아. 바로 지금이야. 뛰어내려!"

P168

​[책소개]

책의 인물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쫓기는 자매 '주미'와 '나영',  한때 유명 작가였으나 치매에 걸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작가 '미아베 라이카(신재경)', 정신을 놓은 엄마를 극진히 보살피는 아해라는 필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양희주', 시어머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작가 지망생 며느리 '란코', 그리고 형(동원)과 함께 한 몸으로 살아가는 남자 '상원', 주미를 잊지 못하는 절름발이 약국 남자 '시현'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목차]

프롤로그_ 낮달

그들의 금요일
그들의 토요일
그들의 일요일
그들의 월요일
무서운 아해들

에필로그_ 봐서는 안 되는 것
작가 후기

 

"겉으로 보기에 남들은 행복해 보이겠지만, 아닙니다.

그 사람들 역시 하루하루 힘든 일들을 극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

P230

특히 필자의 시선을 끄는 캐릭터는 소설의 중심점으로 작용하는 작가 '미아베 라이카'입니다. 그녀는 교포를 멸시하는 혐오 때문에 일본인인 척 살아가던 작가인데요. 나오키 상까지 받은 성공한 미스터리 작가였지만 쓰나미와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알츠하이머가 삶을 잠식하고 맙니다. 온전치 못한 정신이지만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딸 앙희주가 있어 서로는 위안이 되는 존재입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작가라는 인물,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작가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이야기는 작가와 독자의 감정이입을 돕습니다. 무명의 치매 환자로 초라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노파가 수많은 독자를 거느린 전설의 소설가 '미야베 라이카'란 아이러니는 인생의 허탈함을 느끼게 합니다. 매일은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의 허무함과 우연성의 잔잔한 파동이 꽤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인과의 법칙이니 뭐니 하는 것이 거창해 보일진 몰라도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아."

P351

 

소설 속에서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많은데요. 고통스러운 현실을 끝내고 싶어 자살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악착같이 삶에 애착을 보였던,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욕망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을지요. 그들은 지금 삶과 기억을 가차 없이 버림으로써 새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희망을 갖고 있는데요.  소설 속에 빙의 혹은 유착 관계에 있는 인물들은 서로 간의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묘한 인연으로 이어진 관계인 것처럼 말입니다. 동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과응보의 모티브가 현대판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한 공포감을 줍니다.

재능과 삶을 영원히, 끝없이 펼치고 싶은 인간의 욕망, 질병 없이 오래도록 살고 싶어 하는 4차 산업 시대의  불멸하고픈 인간들. 이 둘은 다른 듯 보이지만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마치 소설 속에서 언급된 '공시성'처럼요.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가 조금 더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는 가능한 일이 되는 시대가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겠지요.

​직업적인 성공을 거뒀으나, 이번 생에서 못다 펼친 작가의 능력은 다른 이의 몸을 통해  지속됩니다.  만약 상상이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평행이론', '환생' 등의 이론으로 설명되는 '누구누구의 환생 같은 예술가'란 찬사가 영혼 유착으로 벌어진 존재들은 아닐까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사람도 어쩌면 인연으로 얽힌, 우주의 존재는 아닐지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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