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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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몇 안되는 젊은 작가인 '강지영'의 문체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외모와는 달리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무언가를 천연덕스럽게 스토리텔링 하는 과감함이 특징이라 하겠는데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을 포함한 총 9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개들이 식사할 시간》을 펴내 화제입니다. 책은 어떤 의미에서 환상특급열차에 탑승한 듯 기묘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여름이란 특수성에 맞게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아홉 고개 이야기가 더위를 잊게 하기 충분할 것입니다.



고어(옛말)와 잘 쓰지 않는 한국어를 사랑하는 문체의 특별함은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마르지 않는 창작 샘의 밑천으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이번 소설집에서는 '비밀'이란 주제로 다양한 상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고많은 개들 중에 왜 이놈만 살아남았는지 알아요? 이놈은 지가 개새끼인 걸 너무 잘 알아요. 사람 새끼인 척 아양 떨면서 손바닥 핥는 다른 놈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더라니까요. 곧 죽게 생긴 놈이 배고프다고 지 마누라 노릇하던 암컷도 잡아먹은 논이에요. 개가 개같이 굴어야지 정승처럼 굴면 그것도 참 숭해요. 난 그래서 이놈이 좋아요."

P 40 


표제작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알게 된 장갑 아저씨와 어머니의 관계,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비밀을 품고 있는 미스터리 한 단편인데요. 괴팍한 아버지의 유일한 술친구이자 어머니와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던 장갑 아저씨는 몇 번 동네의 시끄러운 일과 엮이면서 동네의 왕따 아닌 왕따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집 저집 품팔이로 먹고살던 아저씨의  벌이가 시원치 않자  천막을 지어 놓고 개를 잡아 팔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마을의 잠재적인 살인마이자  공포의 대상이 되어 온 장갑 아저씨.  그동안 발톱을 숨겨온 맹수처럼 서서히 드러나는 장갑 아저씨의 앙갚음은 나로 인해 해소되는 듯 보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소미다. 94년생이니 나와 동갑이다. 하지만 그 애의 표정에는 세상의 비밀을 몽땅 알아버린 노파의 얼굴이 숨어 있다. 소미가 춤을 춘다. 나의 유치원 졸업사진 밑에서, 그것도 아주 신나게. 손을 뻗으며 그 애에게 말을 건다. "

P 192


 

'키씨는 쏨이다'에서는 동급생 소미의 몰카 동영상으로 위기에 처한 '나'가 등장합니다. 키시라는 일본 AV 배우의 동영상을 즐겨보던 나는 어느 날 동급생 '소미'의 동영상을 접하게 되는데요. 플레이 버튼이 지나갈수록 이상한 기시감이 드는 곳은 유치원 사진이 걸려있는 '내 방'입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요?  비루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신 일본으로 영화 찍겠다며 떠난 소미는 단 몇 백원의 다운로드로 내 컴퓨터 안으로 들어와 줄까요? '비밀'과 '충격'이 교차되는 이상한 이야기의 총 집합체처럼 호기심과 흡입력이 있는 소설집입니다.


 

단편은 장편 보다 훨씬 집약적인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구축으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장편 보다 단편이 어려운 점이 짧은 분량에 다양한 것들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일 텐데요. 폭력적이고 거칠지만 미학적인 아름다운을 주는 이유는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함이 결합한 시너지입니다. 각각의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알 수 없는 열린 결말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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