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시대의소음/줄리언반스/다산책방


 



 

오랜만의 신작을 발표한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 우리나라에도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매번 '줄리언 반스'만의 실험적인 문체가 문학 평단과 독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고 있는데요. 이번 소설 《시대의 소음》에서는 러시아의 지휘자 겸 작곡가였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yDmitriyevichShostakovich)'의 삶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려내고 있죠.

 

 

DmitryDmitriyevichShostakovich /쇼스타코비치

출처 -최신명곡해설 & 클래식명곡해설 - 작곡가편


반스가 기억하는 쇼스타코비치는  '오케스트라의 배치 하나 때문에 처음엔 비난과 모욕을 받고, 나중에는 체포되어 총살된 작곡가'로 기억하고 있나봅니다. 그는 평전과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지만 줄리언 반스가 재탄생한 캐릭터로  소설 속에서 부활시킵니다. 예술을 사랑했지만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비극적인 삶을 맞이할 수밖에 없던 그를' 줄리언 반스'의 해석으로 만날 수 있죠.

러시아 문학의 특성상 동일 인물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 '일러두기'를 수도 없이 대조해가며 읽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습니다만.  채찍질을 당해야만 연주를 할 수 있었던  상황 (스탈린 체제의) 파시즘의 단상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삼았습니다.

 

"권력층이 말을 갖게 하라. 말이 음악을 더럽힐 수는 없으니까.

음악은 말로부터 도망간다. 그것이 음악의 목적이며, 음악의 장엄함이다."



 

《시대의 소음》은 스탈린 체제하에서도 예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세 가지 굴욕기를 층계참에서, 비행기에서, 차 안에서의 부제로 나눴습니다. 이는 1936년 스탈린이 참석한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공연 중 타악기와 금관악기 자리 근처에 스탈린을 배치한 불운의 시작, 1949년 소비에트 정부의 입장을 대변했던 정부의 시녀 시절, 1960년 스탈린 사후 공산당에 입당하기까지를 다룹니다.

 

 

ⓒ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의 삶에 큰 방향을 가져다준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Lady Macbeth of Mtsensk )'는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1865년 소설 《러시아 맥베스 부인》을 기반으로 합니다.  개봉은 앞두고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영화 <레이디 맥베스>로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잘 알려져 있죠. 남편보다도 더 탐욕적이며 욕망 덩어리인 그녀를 러시아 버전으로 옮겨온 작품이며, 영화와 오페라,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예술 형태로 꾸준히 리메이크되기도 했습니다.


그중 쇼스타코비치의 ​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Lady Macbeth of Mtsensk )'은 당시 억압적인 분위기를 깬 파격적인 소제로 반향을 일으킵니다.  러시아의 신문 '프라우다'는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란 혹평으로 감상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제목 '소음의 시대'는 쇼스타코비치 곡에 대한 평가와 시대적 혼란을 비유한 이중적 은유이며  줄리언 반스가 바치는  스탈린 시대의 혹평이 아닐지 짐작해 봅니다.


'​예술과 사랑 사이,압제자와 압제당하는 자 사이에는 늘 담배가 있었다. '

P57

 


피우는 담배를 통해 비유하는 작법도 빠질 수 없습니다. '카즈베크'는 예술가들이 피우는 담배로 카즈베크 산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말과 기수가 그려져 있는데요. 자유를 뜻하는 것이고요.  스탈린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러시아 지도와 백해 운하가 붉은색으로 표시된   '벨로모리'를 피움으로써 NKVD(내무 인민위원회, 스탈린의 통치 기간 동안 행해진 정치적 숙청의 직접적인 실행 기관)의 성향을 드러내죠.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 우리 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

p181

소설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에 건조한 팩트와 유연한 상상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처럼 다가오는 책입니다. '줄리언 반스'는 항상 쉽게 읽히는 글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특징이 그의 글을 읽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기도 한데요. 한 번 읽어서는 의미를 한 번에 유추하기 힘들지만 읽고 나면 지적유희, 언어유희에 매료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가를 옭아매는 정부의 체제는 블랙리스트란 이름으로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잔인한 수법이죠.  소설을 통해 우리는 예술가가 권력층에게 처참히 무너지는 과정을 암울한 체체 속에서 대리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시대와 나라가 다를 뿐 언제 어디서나 '시대의 소음'은 열린 결말처럼 이어진다는 결과를 '줄리언 반스'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