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애 ㅣ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7년 6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0708/pimg_7650201491688037.jpg)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상상력의 만남을 추구하며 꾸준한 역사소설을 써온 '김별아' 작가의 《열애》는 영화 <박열>의 주인공 박열과 후미코의 사랑 이야기를 중점을 다룹니다. 영화를 먼저 봤다면 두 사람이 만나기 전 어떻게 살아왔을지 알 수 있는 소설이 될 텐데요.
"후미코는 혼네(실제 속내)와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를 구분해 좀처럼 진심을 알 수 없는 일본인보다는 마음속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조선인이 훨씬 편했다. 더 이상 상처를 숨기며 쩔쩔매기 싫었다. 기쁠 때는 기쁘다고 말할 테다. 슬프면 슬프다고 울부짖을 테다. "
P158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 후미코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박열의 혁명, 무정부주의와 주변 정세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박열 보다는 '후미코'의 애잔한 삶이 잔혹하리만큼 끔찍해 읽는 동안 녹록지 않았습니다. 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아름다운 젊음이 무참히 짓밟힌 젊은이들의 고결하고 값진 희생이 절절히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0708/pimg_7650201491688038.jpg)
영화 <박열>
박열은 일제시대 활동한 아나키스트로 독립운동가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특권 계급을 무너뜨려 새로운 특권 계급이 등장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무권력, 무지배, 모든 개인의 자주 자치에 의해 운영되는 평화 세계를 동경했죠. 권력이 행사되지 않는 무정부주의를 마음에 품으며 인간인 천황을 신성시하는 일본 사회에 팩트폭격으로 '불량 선인'이란 낙인이 찍힙니다.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 낭인과도 같은 제멋대로인 행색을 찬찬히 살펴보면 걸인이 따로 없지만 사실, 문경의 삼난가(세가지 일을 모두 이룬 집안, 아들 다섯을 낳아 모두 문과 급제로 얻는 명예 )로 불리던 지방 명문가 출신 박열. '준식'이란 호적상의 이름보다 '열(烈)'이란 이름으로 불리길 좋아하던 사내는 막내아들로 어리광을 부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어 후진 양성에 힘쓰겠다는 목표와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조선인이란 이유로 핍박받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반항심이 폭발합니다.
개새끼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소설 《열애》는 박열과 후미코가 각자 살아온 과정이 1/3 정도 할애합니다. 무세키샤, 무적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이였던 후미코의 유년 시절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요. 처제와 불륜으로 자식들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 돈 몇 푼을 위해 딸을 매음굴로 팔아넘기려던 어머니. 부모는 자식을 달며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정신적인 학대로 영혼과 육신을 갈아먹었던 할머니까지. 모두 가족이란 이름으로 후미코를 짓밟았던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는 권력이다. 서구 문명 대국을 본뜬 제국을 만들어 선진 국민으로 올라서야 한다며 인민을 현혹하고 착취하는 위정자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가족은 광기 어린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다. 가부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전체가 같은 정신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향해 생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황은 아버지이고 신민은 자식이란다. 아버지에게 효도하듯 천황에게 무한대의 헌신과 희생을 퍼부어야 한단다. "
P160
영화 <박열>
후미코가 국가와 천황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가 된 이유는 바로 제대로 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결과기도 하지만 훨씬 복잡한 이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만 당할 뿐 어디에서도 사랑받지 못한 후미코는 우연 히 박열의 시 '개새끼'를 보고 주체 못할 감정을 느낍니다. 그 후 서툰 고백으로 먼저 구애를 자처하는 당찬 여성. 후미코를 그저 조선인의 일본인 아내, 전향한 배신자란 틀에 끼어 넣을 수 없는 인물이죠. 후미코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자'라 칭하며 철저히 '자유의지'로 품은 한 개인의 이지를 철저히 고수합니다.
둘은 연인을 떠나 같은 일을 도모하는 파트너로 존중과 아낌을 마다하지 않죠. 관동대지진 이후 명분을 찾던 일본의 먹잇감이 되어 황족과 정치 실권자에게 폭탄을 투척하려 한다는 대역 죄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옳은 말을 쏟아내는 기개와 당찬 포부는 재판을 마치 연설장처럼 만들기도 하고, 조선의 예복을 갖춰 입고 조선말로 심문에 답하는 행동은 죄인이 아닌 일본과 조선의 대표자의 만남을 연상케 합니다.
박열과 후미코에게 내려진 사형은 천황의 은사라는 명목으로 무기징역으로 강등됩니다. 그 후 서로 다른 형무소에서 지내게 되는데요. 후미코는 훗날 자살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박열은 천황보다 오래 살아 그가 죽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22년 2개월의 수감 끝에 출옥합니다.
그 후 1946년 백범 김구의 요청으로 3의사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유해를 발굴, 본국으로 보냈으며 재일조선인을 위해 일하기도 했습니다. 1947년 <일본국제신문>기자 장의숙과 재혼했으며 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 노선을 지지하며 사상적으로 전향합니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 위원으로 임병 받은 뒤 민단 단장을 사임, 1949년 5월 일본을 떠나 귀국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서울 모처에서 피랍당해 납북되었으며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회장을 지낸 뒤 1974년 73세로 사망합니다. 후미코는 유해는 박열의 형 박정식에 의해 문경에 안장되었으며 박열은 1993년 대한민국 국가 유공자로 지정됩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0708/pimg_7650201491688040.jpg)
영화 <박열>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영혼의 쌍생아란 표현이 어울리는 커플입니다. 자석처럼 첫 만남부터 이끌렸고, 시대의 부름에 적극 응하며 꽃다운 나이를 감옥에서 보내지만 굽히지 않는 기개로 무장한 진정한 무정부주의자. 그들은 독립운동가와 일본인 아내라는 보편적인 평가에 갇힐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영화인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두 남녀의 뜨거운 사랑과 아나키즘은 영화와 소설 다양한 문화적 상상력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