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을 잇다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6월
평점 :
꾸준히 사회의 어두운 단면,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소설을 써온 작가 '소재원'의 신작《기억을 잇다》. 스물여섯에 데뷔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나라한 화법과 영화 같은 실제 삶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했습니다.
이미 영화화된 <비스티 보이즈>, <소원>, <터널>과 더불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그린 《균》, 일제강점기 한센병과 위안부의 역사를 그린 《그날》의 영화 판권이 팔려 독자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가기도 한데요. 이번에는 '아버지'와 '자식'이이라는 보편적인 관계를 통해 삶의 무게와 가족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소설은 두 아비 '서수철'과 '서민수'의 며칠을 교차하는 방식입니다. 나이가 들어 걸리는 병이라고 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치매 판정을 받고 모든 것을 정리한 채 홀연히 여행길에 나서죠. 아들 서민수 또한 열성적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조기 퇴직을 권고받아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자식들은 장성했지만 아직 아비의 손길이 필요한 때, 서민수는 차마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며칠 기억을 좇아 여행길에 오르죠.
"의지할 곳이 있는 한 사람은 눈물이 마르지 않나 보오. 의지할 곳이 사라지면 눈물도 사라지나 보오. "
P118
여행길은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두 아비 모두 부모님과 혹은 자식들과 찬란했을 때 왔던 장소를 되돌아가는 연어 같았거든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보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온 시간이 더 컸을 텐데. 부모의 도리만 전념했을 뿐 자식 된 도리는 잊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이런 수순은 부모 된 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겠지요.
"자식은 말이다. 결혼을 하면 떠나간다. 짐승들도 그렇다.
떠나면 두 번 다시 아비나 어미를 찾지 않는다. 그나마 사람이기에 연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
P212
혹시 슬픔과 아픔보다 행복한 기억이 더 많기에 잊고 살아갔던 건 아닐까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정에서 아버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민수는 아버지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것을 즐겨 하시는지 물어볼 수 없어 아버지와 함께한 곳들을 찾아 좋아하시던 것들을 기억해내려 합니다.
서수철 또한 기억이 점점 바래지고 지워지기 전에 추억을 간직해볼 요량으로 곳곳을 누빕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자식에 대한 서운함이 공존하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을 여행을 떠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삶을 반성하고 아비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와 괴롭지만 말 못 할 서로의 고통(치매, 퇴직)을 공유하고 털어 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어 오히려 마음만은 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