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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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한 상처는 감히 들여다볼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보는 건 자체가 상처 깊이를 가능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라 2차, 3차적인 정신적 피해를 주기도 하니까요. 대한민국 근현대사 중  잘 다뤄지지 않았던 합천의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소설이 등장해 고무적입니다.  직접  읽어보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가시처럼 목 울대를 넘어가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원폭 피해에 대한 인식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일본 만화 《맨발의 겐》을 보았던 때로 돌아갑니다. 사실적인 그림체가 충격 그 자체였고, 10여 권이 넘는 만화책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가며 원폭 피해에 대한 경각심과 두려움을 받았는데요.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의 대한민국은 히로시마, 후쿠시마,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볼 수만은 없습니다.  


"얼굴은 괴물처럼 부풀어 오르고 온몸이 숯덩이처럼 검게 그을린 사람들이 하나같이 팔을 앞으로 내밀고는 유령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흐물흐물해진 살이 녹아 찢긴 누더기처럼 흘러내리는 바람에 팔을 앞으로 내밀고 걸어야 했다. 팔을 밑으로 내리면 녹아내린 피부가 흙먼지에 질질 끌릴 정도였다. (중략) 팔을 앞으로 내밀고 앞사람을 따라 허청허청 걸어가는 귀신처럼 보이는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기괴한 유령의 행렬이자 죽음의 행렬이었다. "

P53


1945년 8월 , 미국은 일본의 군사기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극은 일본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춥니다. 조선인 피해자는 7만 명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라지만 고통의 역사를 우리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있던 조선인들의 피해와 차별, 멸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질긴 삶, 피해 보상은 미비한 사례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한국원폭피해자협외의 절반이 합천 사람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릴 정도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도시기도 합니다.


《흉터의 꽃》은 '김옥숙'작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본인에게로 내려왔을지 모를 원폭의 역사를 다룬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주인공 소설가 정현재가 강분희 할머니를 취재하면서 대리 경험하게 된 그날의 비극을 글로 옮겨간다는 기본 줄거리를 담고 있는데요. 김옥숙 작가의 3대에 걸친 역사를 소설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와 강순구(할아버지), 강분희(딸). 박인옥(손녀)으로 내려온 비극을 생생하게 다룹니다. 



"다들 나라 없는 탓으로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으로 내몰린 사람들이었다. 돌멩이처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사람들이었다. 나라는 힘없고 능력도 없는 부모였다. 모든 것을 도둑맞고도 넋을 놓고 있는 바로 천치 같은 부모였다. 하나도 남김없이 빼앗겨도 싸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부모였다. 조선의 백선들은 부모가 길거리에 내팽개쳐두고 가버린 고아 신세보다 더 나을 게 없었다. "

P31

​당시 합천 사람들은 지지리도 가난한 삶과 먹고살기 어려운 전쟁통에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가 살았던 겁니다. 나라가 버린 불쌍한 사람들은 갈 곳 없이 떠돌 수밖에 없었죠. 먹고살기 위해 건너 간 곳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에게 나라는 해줄 것도 다시 일어설 힘조차 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매 순간 아들을 기억하면서, 아들이 못다 했던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왔던 세월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어쩌면 그것은 날마다 아들의 죽음을 새롭게 경험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아들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아버지. 아버지를 통해 김형률은 살아 있었다. 그것은 죽음을 통과한 사랑, 새로운 삶이었다. "

P260-261



1945년 8월 원폭 투하로 인본은 항복했고, 조선을 해방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으로 둘로 나뉜 역사, 하지만 이 둘은 가난과 혼란 그리고 흉터를 가진 사람들을 꾸역꾸역 잊은 채 살아왔죠. 전쟁이란 시커먼 괴물은 한순간에 터전을 지옥으로 바꾸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자 읽는 내내 공포와 불안이 증폭되었습니다.

 

"진달래가 참 곱더라. 니 생각이 나서. 줄 거는 없고, 꽃이라도 실컷 보라꼬. , 꽃 좋아한다 아이가? 맞제?”분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철이 진달래 꽃가지를 분희에게 내밀었다. 꽃 한 송이를 따서 분희의 흉터에 살짝 갖다 댔다. 꽃잎이 흉터에 닿았다. 나비의 날개가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희는 눈을 가만히 감았다. 마치 동철이 흉터에 약을 발라주는 것만 같았다. 꽃으로 만든 약. 동철의 마음으로 만든 귀한 약이었다. 분희는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오늘 이 하루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면, 이 하루면 충분하다. 살아서 이런 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

P233


어여쁜 봉오리를 내비친 꽃이 한껏 만개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갑니다. 사춘기 분희의 애절한 마음과 삶에 대한 울분이 흉터의 꽃이 되어 피딱지가 앉은 상처로 남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임을 마음속에 새겨 넣으며 마치 1945년 히로시마에 있는 듯한 생생한 전개가 고통으로 느껴집니다.



곧 개봉하는 영화 <군함도>와 함께 일본 히로시마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해줘야 한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가장 큰 비극은 원폭의 피해가 고스란히 유전되어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 없다는 것이겠죠. 아픈 역사,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역사가 바로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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