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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ㅣ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평점 :
출판사 작가정신은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편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다시 선보이고자 소설향 시리즈 중에서 5편을 골라 특별판으로 출간하였는데요. 그 중 충격적인이고 자극적인 소재로 한국 문단에 나타난 '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을 개정판으로 만나보았습니다.
작가의 말에도 적어놓고 있듯 가수와 노래가 나오지만 직업적인 설명이나 대중음악을 주 소재로 다루지 않습니다. 뽕짝이나 트로트라 불리는 대중음악 작사가인 주인공 '나'와 주변 인물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형까지. 이제는 당연한 주거형식이 된 아파트에서 자연과 이질감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인간과 그 외의 존재들의 뒤섞임을 담아내고 있는 독특한 소설이죠.
그렇담 내 손에 쥐어진 편지 두 통은 뭘까? 늘 주고받던 편지에 딱 두 번만 주소를 잘못 써넣어 내게 온 걸까? 다른 편지들, 소포 꾸러미는 제 주소로 배달이 되고 있을까?
P21
같이 살고 있는 인형과 나는 어릴 적 듣던 자장가를 생각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자장가는 앵무새가 등장하는 독특한 가사를 갖고 있는데요. 삼 년 전 받았던 편지와 이어지는 내용의 두 번째 편지를 받는 순간 뭔가가 잘못되았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실수였지만 편지봉투를 뜯지 말아야 했습니다. 편지를 뜯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물리적인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다른 세상이 열려버린 것 같은 느낌. 점입가경으로 난센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버렸으니까요. 그 후 주인공은 다른 세계에서 딸려 들어온 것 같은 곤란한 상태로 '올빼미 농장'으로 찾아갑니다.
편지가 최근까지도 오갈 수 있는 주소지가 어떻게 벌판일 수 있는지. 사람 사는 흔적은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서 어떻게 편지가 발신될 수 있는지.
P75
하지만 주소지와 일치하는 그곳은 들샘이 말라버린 산 중턱의 직사각형 모양의 공터. 그곳은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그 후 올빼미 농장은 잊은 채 지내 던 중 같은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손자'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급격하게 이상해지는 손자는 작곡적인 영감을 잃어버린 채 백인 애인에게 집착하기 시작하죠. 남자지만 스스로 아이를 갖고 싶어하고 외국으로 떠날 거라면서 행패를 부리는 등 서서히 타락이 이어질 때쯤 주인공에 집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초반부터 등장한 '인형'의 존재는 손자의 죽음으로 풀립니다. 주인공은 아파트에서 태어나 시골, 흙, 황소 따위는 모르는 전형적인 '아파트먼트 키드' 이며 세속적인 어른을 거부하는 소년 같은 존재입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릴 적 지내온 인형과 어디든 함께 하죠. 인형의 정체가 손자의 죽음 이후 밝혀져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는 원혼, 귀신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요. 어쩌면 인형은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 또 다른 분신일지도 모릅니다.
후반부 , 자장가의 가사를 함께 기억해 낸 인형을 자기 손으로 제거하고자 하는 주인공. 인형은 주인공의 성장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막이자, 30년 전 일어난 올빼미 농장의 원혼을 달래 줄 제물이 됩니다.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자연을 모르고 지내온 요즘 현대인들에게 올빼미 농장은 일종의 통과의례입니다.
민은 아파트라는 것이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양 말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이해할 만했다. 그리고 꼭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물건이란 원래 사람이 꾸준히 손질해주지 않으면 빨리 망가지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자살하고 있는 거야. 자기도 싫겠지. 크레인 같은 것이 와서 제 몸에 손을 대기 전에 스스로 명을 끊는 거야."
P119-120
환상과 현실의 느슨한 경계의 주인공을 격려하는 유일한 존재는 대학 동창 '민'인데요. 그녀를 통해 주인공은 씻김굿을 하듯 소멸할지 모를 인생을 가까스로 건져냅니다. 철거예정인 아파트가 서서히 자살하고 있다는 비유는 소스라치게 아름다워 소설의 전박적인 그로테스크 한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2000년 대 '엽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며 사회 곳곳에 다양한 문화를 양산하기도 했는데요.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아도 특유의 염세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잊히지 않는 소설입니다. 가방에 쏙 들어가는 포켓형의 사이즈와 가벼움이 소설의 내용과는 대비되는 묘한 느낌도 있습니다.
겉과 다른 속을 가지고 있는 성장을 거부하는 현대인을 쏙 빼닮은 주인공은 인공적인 공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누구든 익명의 아이디로 타인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본인조차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죠. 수많은 가면을 바꿔가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사점을 던져주는 소설입니다. 결국 인간은 억겁의 세월을 통해 서서히 마모되고 시들어가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고 기생하는 무서운 존재한 존재입니다. 자연을 등한시하고, 타인 관계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모든 인간의 성찰이자 반성이 담뿍 담긴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읽어 본 한국작가의 중단편은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