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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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는 많은 물건을 읽어버립니다. 사소한 것이든 소중한 것이든 물건을 (어딘가에) 놓고 왔다는 불안감과 당혹감으로 하루 종일 찜찜한 기분을 느껴본 적 있을 텐데요? 일본 감동 소설의 특유의 스타일과 철도역 분실물 센터에 사는 펭귄이란 독특한 소재의 소설이 뜻밖의 감동으로 다가올지 몰랐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접할 때쯤에는 저도 모르게 눈앞이 뿌해지며 차오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낼 수밖에 없었죠.


펭귄이 전철로 외출하다니 현실도 게임도 뀌어넘어 이제 그림책 속의 세계가 아닌가, 어이없어하는 겐을 주시하며 펭귄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자박자박 다가와 하연 털이 풍성하게 뒤덮인 가슴을 딱 편 채 꼿꼿이 섰다. 전철이 달리기 시작하다 바로 옆 차량에서 이동해 온 마히로가 말없이 겐 옆에 앉아도 펭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P118


사람들이 펭귄 철도라 부르며 간혹 있는 펭귄의 출현에 일상인 듯 여기는 모습이 '쿠마모토 현'의 '쿠마몬'과도 닮았습니다. 물건과 이어진 인연을 찾는 과정이 꽤 흥미진진하고 감동으로 다가와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지도 상상해 봤습니다. 혹시 그렇다면 진짜 펭귄을 출연시킬지, CG로 해야 할지, 펭귄 인형 탈을 써야 할지 혼자 갑자기 궁리를 하기도 했어요.


책은 1년씩이나 죽은 고양이 유골함을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린 여자, 초등학교 때 받았던 유일한 레브 레터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잃어버린 히키코모리 남학생, 잃어버린 물건을 밝히기 꺼려하는 의문 많은 초보 주부, 마지막으로 아들과의 불화로 갈등을 겪던 아버지이자 기억을 잃어버린 노년의 남자까지. 잃어버린 물건에 얽힌 네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됩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소헤이에게 힘을 얻어 쿄코는 목에 걸치고 있던 린넨 숄을 벗는다. "그리고 이건 저의 분실물. 지금 잃어버릴 예정이에요. " 교코가 소헤이에게 린넨 숄을 건네며 "네, 잃어버렸습니다"하고 중얼거리자, 소헤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무슨 얘기인 줄 알겠습니다"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p89-90



이들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자 하는 갈망과 찾길 꺼리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데요. 이 사이에서 '펭귄'은  중심에 서서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사람은 미묘하게 철도와 분실물, 그리고 펭귄과 얽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전철을 가끔 타고 나들이 혹은 (목적을 갖고) 외출하는 펭귄이 기차에 탄다는 설정 때문에 판타지나 만화같다고 만화 같다고 오해했는데요. 펭귄이 왜 전철 분실물센터에 있는지를 안 순간 잊고 있는 무엇,  잃어버린 무엇을 찾은 것 같아 안심이 되더라고요. 살면서 잃어버린 '설렘'을 이 녀석이 되찾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니까요. 



특히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그리고 거짓말을 할 때나'의 미치로와 지에 부부의 이야기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제껏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고 특별히 되고 싶은 것 없이 남이 선택해주는 삶을 살았던 지에가 우연히 전철 안에서 놓고 내린 물건 (임산부 표식)을 주웠다가 남편 미치로의 오해를 사는 과정을 담았죠. 


집안일만 못한단다는 건 거짓말이고 장단을 맞추는 것도 못하는 지에는 미치로의 좋은 아내의 기준에서 뚝 떨어지는 자신을 느꼈다. 부부를 가로막는 벽이 의외로 높고 두텁다는 것도 알았다.

P205

지금까지 난 미치로 씨의 아이였어요. 미치로 씨가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힘껏 지켜줘서 고마워요.

P257

사실 완벽한 인생을 살아온 듯한 남편도 아이에 대한 미묘한 피로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형적인 표준이란 인생길을 걸어온 남편에게도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지에 또한 부부로서의 사랑이 있는지, 삶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부표하고 있음을 깨닫죠. 점점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부양이란 의미는 자식과 부모를 떠나 반려동물과 인간, 부부 사이의 책임감 등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반려동물 혹은 유기 동물에 관한 일본 특유의 정서가 담긴 따스하고 독특한 소설입니다.  좋아하는 선배를 대신에 만난 찹쌀 콩떡 같은 아기 고양이 후쿠에 대한 죄책감, 펭귄에 얽힌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부모의 노력,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일본의 국민성이 반영된 판타지를 입은 현실 소설이기도 합니다.


 

독자의 마음을 훔쳐 간 소설의 심(心)스틸러 펭귄. 이리저리 부닥치며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길을 찾아주는 나침반 같은 분실문센터에서 자꾸만 관심이 가는 이유입니다. 물론 펑키한 빨간 사자 머리에 아이돌스러운 외모를 가진 직원 소헤이는 거들 뿐. 살면서 이런 곳 하나 있다면 조금은 힘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내려놓고 싶은 순간 한없이 정직하고 맑은 눈으로 맞아주는 펭귄을 만나게 되는 행운 저에게도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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