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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평점 :
《수잔 이펙트》는 1인칭 시점으로 그린 수잔의 가족, 미래위원회 회원 간의 관계를 그립니다. 주인공 수잔과 함께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속내를 술술 털어놓는 '수잔 이펙트'를 느낄 수 있는데요. 필자 또한 수잔 이페트처럼 생소한 덴마크 작가 '페터 회'에게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몸에 가장 깊은 이완에 도달하는 시간, 꿈이 없는 깊은 수면과 램파장 사이의 관계가 최적화되는 시간.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다고 느끼는 그 중요한 경험의 근거가 바로 이 시간에 만들어진다. 이 시간은 도시가 가장 조용한 시간, 수면 실험실에서 화룻밤을 보내느 사람들이 감마파에 근전할 가능성이 가장 큰 시간이기도 하다.
P115
'페터 회'는 《수잔 이펙트》를 계기로 접하게 되었던 작가입니다. 전작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유명해졌죠. 건조하지만 깊이감 있는 문체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SF 와 스릴러의 중간지대 경계 어디쯤에 놓인 소설인 듯. 추리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과 화학, 물리학적 사고를 동원해야 하는 언어유희까지 즐겨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수잔 스벤센 가족은 인도에서 각기 다른 문제를 일으켜 수감 중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68혁명 후 일상 혁명의 대안인 '코뮌(공동체)'이 떠오르며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철저한 개인주의를 지향합니다. 한편, 정부의 눈에 가시가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혐의를 벗을 제안을 역으로 받게 되죠. 1970년대 결성된 '미래위원회' 위원들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으라는 미션을 수락한 수잔 가족. 의문에 다가가려 할수록 드러나는 진실과 생명의 위협을 받는데요. 과연 해체 직전의 가족들은 똘똘 뭉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는 소설입니다.
엄마가 음식을 내온 다음 우린 효과를 발휘했어. 효과는 그때그때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발휘할 수도 있거든. 우린 경찰 신문도 해보고 안드레아랑 프로젝트도 많이 해봐서 그 방식을 알고 있었어. 어떻게 진행될지 빤히 보였다는 말이야. 먼저 상대가 나를 신뢰하게 만들어야 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한편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면 거의 자동적으로 마음을 열거든. 그다음에는 일종의 끌림을 느끼지. 이제 도망을 못 가. 그러면 낚인 거야. 이 과정을 소화하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왜냐면 제때 효과를 중지하고 상대에게 마음을 돌려줘야 하거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착취고 유혹이야. 그날 저녁 우린 선을 넘었어. 그렇게 내게 마음을 여는 사람을 내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으면 도덕성에 오점을 남기게 되고 미래에 빚을 지게 돼. 난 그 교수 자리를 얻었고 해외 진출 기회를 얻었어.
P342
총 3부로 구성된 소설은 1부의 세밀한 캐릭터 묘사가 다소 지지부진하게 전개되지만 2부부터는 춤을 추듯 빠른 호흡으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무용수, 배우 등산가, 선원, 현재의 소설가까지 다양한 직업적 이력은 구석구석 청소하듯 꼼꼼한 디테일적 내러티브를 가미합니다. 미래위원회 위원들을 과학적으로 소개하는 설명도 소설만의 특이점입니다.
수잔 효과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필요에 따라 변화와 확장을 반복합니다. 이공계 교수인 수잔이 상대방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이익을 얻는 과정을 심리적으로 그립니다. 물리학과 심리적인 염력을 갖춘 이율배반성은 엑스맨의 뮤턴트를 묘하게 닮았습니다.
유럽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덴마크'의 생활상과 지명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소설을 읽고 있지만 마치 과학 책을 읽는 듯 많은 용어를 공부하며 읽었습니다. 교양의 업그레이는 거들 뿐 심리와 추리, 과학 장르의 콜라보레이션이 궁금하다면 '페터 회'의 신작 《수잔 이펙트》를 추천합니다. 문학과 과학의 적절한 안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