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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서배스천 배리 지음, 강성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나의 왼발> '짐 셰리든' 감독의 영화 <로즈>의 동명의 원작 소설입니다.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아일랜드의 자유를 지지하는 세력과 영국과의 내전 역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2008년 코스타 상을 수상,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이기도 했던 소설은 아일랜드의 작가 '서배스천 배리'의 수려한 문장으로 그려집니다.
원제는 《더 시크릿 스크립처 The Secret Scripture 》, 얼마 전 '루니 마라'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연기한 두 로즈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소설 또한 흠뻑 빠져들어갔습니다. 소설의 기본 골자는 병원 철거를 앞두고 환자들 정상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그린 박사의 비망록과 100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기품을 잃지 않은 터줏대감 '로잔느'의 다이어리 속 이야기가 교차됩니다.
신은 내 삶에 개입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난 곧 악마에게 넘어가버릴지도 모르니까.
P83
로잔느는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는 이유로 수십 년은 정신병원에 감금된 환자입니다. 하지만 그린 박사는 로잔느와의 대화를 통해 환자가 아닌,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데요.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적 대립 속에 통째로 날아가 버린 한 여인의 삶이 같은 여성으로서 애잔함과 분노를 갖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신의 뜻에 따라, 또는 그들을 빼앗아가려는 악마의 뜻에 따라 우리 곁을 떠난다. 그들의 죽음은 거대한 납덩어리처럼 우리의 영혼을 짓누른다. 가벼운 영혼이 있던 자리, 이제 그 중심에는 파멸을 부르는 비밀스러운 짐이 자리한다.
p30
전쟁 중이던 시절 묘지 관리인이었던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종교와 정치적 성향을 떠나 아버지는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로잔느 또한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할 정도죠. 하지만 로잔느와 가족의 삶은 그리 순탄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가족, 연인, 자식까지도 함께 하지 못하는 애통함의 상징인 로잔느.
얼굴은 펜으로 글을 써도 될 정도로 깔끔하게 면도되어 있었다. 그는 그 불안한 시기의 아일랜드에서 가장 안전한 존재처럼 보였다. (중략)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버지 안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곤트 신부는 아일랜드의 역사와는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신성하고 순수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그의 깔끔함이 두려울 뿐이다.
P85
로잔느를 옭아매는 세상의 권력은 '곤트 신부'로 대변됩니다. 곤트 신부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견고한 규율을 깨려는 어떠함도 용납하지 못할 권력을 상징합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종교의 무서운 이중성을 곤트 신부를 통해 보여주고 있죠.
곤트 신부의 도움으로 묘지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이 완벽하고 선해졌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되돌려주는 기도와도 같았다. 그것이 아버지가 우연히 사랑하게 된 나라, 아일랜드에서 터득한 삶의 방식이었다. 따라서 그 일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p93
아버지는 곤트 신부에 의해 역사의 방해를 받습니다. 마을의 이방인으로 서서히 추락하는 과정을 잔인하도록 섬세히 담고 있습니다. 슬라이고 사람들(가톨릭 교)과 종교가 다르고, 아일랜드 군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묘지 관리인에서 해고됩니다. 아버지는 자메이카 인이었지만 조상 대대로 아일랜드에서 살아오며 누구보다도 아일랜드인이었습니다. 종교와 사상의 배타성에 희생된 잔혹 무도 한 권력은 아버지부터 시작된 대물림인 거죠.
한편, 굉장히 매력적인 로잔느는 숙녀로 성장하면서 슬라이고 남성들의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대를 이른 배척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로잔느의 삶을 가만히 두지 않죠. 결혼했지만 서방님의 아이를 낳자마자 빼앗긴 채 반평생을 정신병원에 갇혀지내야 했던 여인의 한 많은 일생이란 외피 속에 아일랜드의 역사와 종교의 이기심, 정치적인 희생양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소설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1/3을 할애하지만 영화는 애초부터 부모님의 이야기는 짧은 한 줄어 넘어갑니다. 로잔느가 뭇남성들의 추파를 받는 당차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각색되기도 했고, 그린 박사와의 관계도 훨씬 드라마틱하게 그려집니다. 무엇보다 곤트 신부가 매력적인 배우여서 이율배반적이었지만 영화와 소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둘 다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로즈> 리뷰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doona90/220977763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