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참 독특한 프랑스 소설을 만났습니다.  책을 선택할 때 제목과 표지를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 하마터면  지나칠뻔한 소설입니다. 프랑스 문학 전문가인 이세욱 번역가의 수려한 번역으로 읽는 동안 아름다운 단어들을 탐독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한번 번역가의 진가를 발휘하는 작품이란 생각도 드네요.

 

 

 


프랑스의 국민 작가 '안나 가발다'의 대표작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전 세계 38개국 280만 부 판매고를 올린 스테디셀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첫 출간 후 절판되었던 작품이더군요. 2009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정식 개봉되지 않았는지 정보가 많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담배 한 대 피웠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게 벌써 몇 년째인데...... 하지만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십 리 길을 걸어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하고 말하는 걸 드는 것, 그런 게 인생이다.

P42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집을 나간 남편, 아이들을 데리고 할 수 없이 (시아버지의 제안으로) 시골집에 당도한 며느리 클로에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굳게 다문 입, 고집불통 시아버지와 어쩔 수 없는 하룻밤을 보내게 된 클로에는 복잡하고 답답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는데요.  가정이 파단나기 바로 전 날 밤 시아버지와 보내는 하룻밤이 클로에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나는 그 여자 마틸드를 사랑했어. 그녀의 목소리, 재치, 웃음, 세상에 대한 시선,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면서 살아본 사람 특유의 숙명론적인 태로를 사랑했어. 또 호기심과 소탈함, 척추의 생김새, 약간 휘우듬하게 굽은 허리, 침묵, 상냥함 등등도 사랑했어..... 한마디로 그녀의 모든 것이 다 좋았지.

P153

그야말로 시아버지의 외도 고백은 남편의 외도보다 훨씬 충격적인, 그래서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시아버지는 사실 40대 무렵 불꽃 같은 사랑을 한 후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는 냉혈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속죄하듯 인고의 세월을 견뎠고, 약속이나 한 듯 떠나버린 사랑을 찾지 않았는데요. 이는 《천일야화》이 셰헤라자데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듭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이 그래. 때로는 에움길로 돌아가고 상황에 적당히 맞춰가며 사는 게 인생이야. 우리 안에는 약간의 비열함이 있어. 그 비열함은 애완동물과 같아. 그것을 쓰다듬어주면서 기르다 보면 애착을 갖게 돼. 그게 인생이야. 용감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어. 타협하며 사는 게 한결 덜 피곤하지....

P170


둘의 이야기에는 클로에(며느리), 시아버지 (피에르), 한 여인(마틸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절대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구부 사이(시아버지와 며느리 )에 허심탄회한 말들이 오가며 굳게 걸어 잠갔던 빗장이 풀립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문화충격! 남편의 외도로 비참함을 느끼는 며느리에게 감히 너 같은 아내를 버린 자식을 불행하다고 말할 줄 아는 시아버지,  클로에가 처음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를 기억하는 시아버지는 클로에가 알고 있던 시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사랑 앞에 감성적이며 충동적이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버려야 했던 평범한 가장이었음을요.


삶이란, 네가 아무리 부정하고 무시해도, 너보다 강한 거야. 그 무엇보다 강한 게 삶이야. 전쟁 중에 수용소에 갇혀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본 사람들도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만들었어. 고문당한 사람들, 자기 가족과 집이 불타는 것을 본 사람들도 예전과 다름없이 버스를 잡기 위해 달음박질을 치고 날씨에 대해서 말하고 자기네 딸들을 결혼시켰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인생이 그런 거야. 삶은 그 무엇보다 강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굉장히 대단하다 여기지만, 삶에 맞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이 않아.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목소리를 높이지.

P207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읽으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주제 '사랑'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영원하기도 쉽게 식어버리기도 하는 사랑에 대한 입장 차이를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는데요. 평범한 삶에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을 따라가느냐, 가정을 지키느냐에 대한 방향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란 사실을요. 감히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도 추가합니다.

느닷없이 끝나는 결말, 결고 작가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독자 스스로 사랑을 하고 이별하며, 후회하고, 아파하지만 또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게 인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그 행복을 찾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본인 스스로 해야 함을 넌지시 던졌고, 독자를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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