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소설 《오베라는 남자》로 화려하게 데뷔,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두 번째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내며 연타를 날리더니 세 번째 소설 《브릿마리 여기있다》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된 '프레드릭 배크만'.  일러스트화한 주인공의 특별한 표정과 파스텔 톤은 배크만의 작품임을 상징하는 콘셉트가 되었죠. 이번에도 어김없이 박오롬 작가와의 협업으로 의뭉스러운 브릿마리의 표정을 순간포착했습니다.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전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의 등장인물 '브릿마리'와 '켄트'를 착출 해 (영화로 치자면) 일종의 '스핀오프(오리지널 영화 속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기초해 새롭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릿마리! 브릿마리?' 어째 익숙한 이름이라 긴가민가 했던 이유가 밝혀집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차기작은 《브릿마리 여기있다》에서 등장한 소도시 하키 선수를 주인공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우리는 배크만의 치밀하고 영민함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베-엘사-브릿마리까지 미세한 연결고리를 가진 한번 빠지면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마약 소설에 중독되었지 뭡니까.

 

다시 《브릿마리 여기있다》로 돌아와서, 배크만의 소설 속에는 과도하리만큼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캐릭터가 늘 주인공입니다. 오베, 엘사 그리고 브릿마리까지. 무언가에 극도로 중독되어 있거나 누구와의 소통도 꺼리는 외골수지만  속 마음은 따뜻한 '내유외강' 스타일인데요.

주인공 '브릿마리'는 타고난 결벽증으로 팩신과 과탄산수소 과잉 사용자이며, 남편 켄트의 말은 곧 법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온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40년 동안 동네를 벗어난 적 없는 브릿마리. 허나, 남편의 불륜으로 어쩌다 보니 보르그의 레크레이션 센터 관리인으로 취직하게 되죠.  그곳은 한때 융성했으나 지금은 몇몇 주민들이 남아 지키고 있는 죽은 도시. 동네에 하나 뿐인 가게(우체국 이자, 피자가게, 자동차 정비소, 보건소 등등)를 비롯해  외지인 브릿마리를 격렬히(?) 맞아줍니다.

 

브릿마리는 어릴 적 완벽했던 언니를 잃고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란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재혼이었던 )켄트와의 결혼도 사랑보다는 의무적으로 한  후 모두 의지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결국 남편이 없으면 요 앞 슈퍼도 가지 못하는 브릿마리. 하지만 이제 그 그늘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 인생 일대의 사건과 조우하게 됩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공이 길거리를 굴러 오면 발로 찰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같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P149

 

맨유를 응원하는지 리버풀을 응원하느냐에 따라 알 수 있는 성향이라든지, 해학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기발한 비유라든지, 까칠한 주인공과 우정을 나누는 동물이라든지(오베-고양이, 엘사-강아지, 브릿마리-생쥐) 배크만의 소설임을 상징하는 장치를 확인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닿습니다.

모든 열정은 어린애 같다. 진부하고 순수하다.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기에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를 뒤집어놓는다. 우리를 휩쓸고 간다. 다른 모든 감정은 이 땅의 소산이지만 열정은 우주에 거한다.
열정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게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요구하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인간으로서의 품위.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잘난 척 고개를 젓는 그들의 반응.

P382

축구라면 누구보다도 싫어했지만 보르그의 유일한 희망 '축구팀'을 위해 코치가 되기도 하고, 운동장을 만들어 달라고 건의하기도 하며, 아이들의 대모이자 리더를 자처하며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브릿마리. 육십 평생을 살았지만 성장을 멈춘 자아는 보르그의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자라납니다. 배크만의 마법에 빠진 독자들은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한 뼘 더 커버린 자신을 발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죠.

앞으로 우리는 또 얼마 동안이나 배크만의 마법에서 허우적거릴까요.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스웨덴의 블로거이자 저널리스트였던 프레드릭 배크만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원동력은  소외된 계층에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였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세상은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웃을 일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오베와 엘사의 매력에 빠졌더라면 브릿마리 또한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연말,  유쾌한 소설 한편으로 가슴 훈훈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한 해를 마무리해보는 것도 무미건조한 일상을 버텨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