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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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동 1201호라는 필명을 버리고  김민섭이란 이름으로 세상과의 접속을 기다립니다. 제목은 《대리사회》.  일종의 자전적 에세이, 사회적 르포르타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파리 곳곳을 다니며 해소하며 글로 옮겼던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와 어쩐지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장소만 바뀌었을 뿐, 서걱거리는 씁쓸함이 한국의 현실임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로 주목받은 후 8년간 몸담았던 대학을 나와 낮에는 글 쓰고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저자. 대학에서 유령처럼 존재했던 지난날 보다 길 위의 (비록 이 생활도 대리일지언정) 육체노동은 고스란히 내 손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생태계였습니다.

 

 

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타인에게 내 삶을 대리하기를 강요하던 때보다, 오히려 지금 타인의 운전석에서 나도, 나의 소중한 이들도, 더욱 자신의 자리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특히, 아버지로서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여유가 허락되었음에 감사하다.

P138

저자는 "책상에서 글로 배웠던 노동의 가치나 신성함 같은 것들이 비로소 삶의 곁으로 다가왔다"라고 쓰고 있는데요. 대학은 세상이 전부가 아닌 일부임을 자각합니다.  인간이 살아온 학문 즉, 인문학은 어려운 단어로 빽빽한 인문학 책이 아니라 내 주변, 내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기사들은 곳곳에 흩어진 점이면서, 동시에 포도송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새벽에 나는 그들과 함께 하나의 '코뮌'을 조직했다. 그것으로 이동의 자유를 얻었고, 어디서든 그렇게 손을 내미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경험을, 그리고 용기를 함께 얻었다.

P227

 

책 속에서 배울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과 땀의 맛을 책 속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몸과 마음은 고됐지만  노동의 가치, 가족이라는 따스한 울타리, 대리기사와 택시 운전사와의 암묵적인 공생, 대리를 부르는 각자의 사연들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대리운전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대게  '내 가족에게 오늘보다  나은 하루를 선물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란 사실을요.

아마 '아내'의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내는 어린 아들을 재워두고 가정용 CCTV를 켜놓은 채 남편의 대리운전을 돕기도 하고, 연애 시절 같다며 거리 음식도 먹고, 못다 한 대화도 나누는 삶을 은근 즐기기도 합니다. 사실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일 뿐 대리기사의 아내도 대리기사만큼의 노동을 대신합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갑이라는) 대학의 압력보다 의외로 (을로 대변되는) 같은 처지의 동료들의 따갑고 불편한 기색이었습니다. 어쩌면 대리인의 삶이지만 그것마저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발버둥의 흔적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대학이라는 '갑'은 전쟁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고 '대리전쟁'에 동원된 을들을 등장시킵니다. 을을 막아서는 주체는 또 다른 을이라는 '갑의 욕망'의 대리자가 되는 셈이죠.


도시는 언제나 그 공간이 품은 사람만큼의 폐기물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쓰레기와 배설물은 하루가 지나면 어디론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우리는 거기에 익숙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시공간으로 밀려난 노동이 있다. 우리는 쓰레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 역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중략) 그들을 노동자가 아닌 요정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신체를 지워버리는 것을 결국 우리다.

P244

모두가 잠든 시간 요정처럼 아무도 모르게 노동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대리기사, 심야버스기사, 청소부, 편의점 알바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결국 그들은 사회의 주체로 인지하게 하는 일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밝힌 시간 강사나 연구자는 학생도 교수도 아닌 일종의 경계인으로 존재했습니다. 비록 타인의 운전석에서 신체(행동), 언어(말), 사유(생각)이 통제될지언정 타인의 차를 벗어나면 오히려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저자 김민섭 씨. 우리는 거대한 대리 사회에서  어떤 대리인의 모습일지 어쩌면  인식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교묘하게 맞물리는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시스템 속에서 쓰다 버려지는 소모품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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