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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바다 건너 머나먼 미국이란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 바로 '학자금 대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했을 뿐인데 졸업과 동시에 빚더미에 앉게 되는 기이한 현상은 나라를 떠나 청년들의 공통문보인가 봅니다. 그도 그럴진대 우리나라의 학자금 대출은 미국의 것을 차용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까다롭기도 소문난 미국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작가 '카밀 페리'의 데뷔작 《도둑비서들》에서 그 민낯과 짜릿하고 통쾌한 한방! 데뷔작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핫하고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아니. 난 부자 같은 거 될 생각 없어. 그러면 나란 인간이 혐오스러워질 테니까 말이야. 내 말은 이걸로 로버트의 부를 조금 줄여주자, 단, 그 인간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만 줄여주자, 하는 거야.
P169
세계 굴지의 언론사 타이탄의 회장 '로버트'의 비서인 '티나'는 뉴욕대를 졸업했지만 남자친구도 친구도 없이 아파트 천장에 생긴 웅덩이와 대화를 할 정도로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먼 회사 돈 2만 달러를 순간의 유혹에 못 이겨 학자금 대출금 상환에 올인하게 되고, 이내 경비 처리부 비서 '에밀리'에게 들통나버립니다. 에밀리는 말하지 않는 대신 본인의 학자금도 스리슬쩍 해주길 종용하고.. 어쩔 수 없이 상사 로버트의 영수증을 날조해 처리해 주게 되는데요.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는 법! 구린내를 맡은 회계팀장 마지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티나와 에밀리는 공범으로 또 한 건의 사건을 처리할 위기에 처합니다.
상위 1퍼센트의 비서인 그녀들의 깜찍한(?) 반란은 이렇게 시작하게 됩니다. 대학을 나오자마자 빚잔치를 시작하고, 좁은 취업문을 겨우 통과해 도착한 일자리에서는 월급님이 귀신같이 자동 로그인-로그아웃을 해버리지 않나, 열심히 일해도 볕들 날 없이 깜깜한 쥐구멍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청년들에게 바치는 액받이 소설 같은데요.
예쁘지도, 특별히 매력적이지도 않은 티나. 이민자 출신이라고 은근한 차별의 벽에 부딪치며 믿었던 상사조차 (거대한 횡령의 주도자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음) 멍청하다고 치부했던 지난날. 물론 회사 돈을 횡령한 죄가 탄로 날까 조바심이 나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고 성장하는 주인공 티나는 21세기의 새로운 신데렐라입니다. 재투성이의 신데렐라가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왕자님과 연애도 하고 훗날 결혼도 하게 되는 해피엔딩의 현대판 해석이죠.
이 나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학을 나와서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으로 남부럽잖게 살 수 있다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지난 30년 동안 정치와 경제 지형이 변하면서 현재의 20대와 30대가 중산층이 되겠단 꿈을 이룰 가능성은 부모 세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어졌습니다. 우리가 게을러서, 직업의식이 투철하지 않아서, 과소비에 취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시대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P258
독자들은 도둑 비서들에게 감정이입되어, 연대의 힘과 여성들이 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을 과감히 깨버린 그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결말 부분의 짜릿하고 통쾌한 반란은 현실을 타파하고 싶은 모든 청년들의 자화상일 겁니다. 흙수저가 금수저에게 보내는 통 큰 한방! 각종 풍자와 어우러진 유쾌한 문체는 읽는 내내 사이다 같은 뻥 뚫림을 대리만족 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