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사는 게 뭐라고》,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다》로 격하게 솔직한 할머니로 알려진 '사노 요코'의 에세이 집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을 읽었습니다. 원래 사노 요코는 그림책. 동화 작가이자 수필가로 《100만 번 산 고양이》가 유명하죠. 고양이를 소재로 많은 동화와 그림을 남겼는데요. 그 독특한 그림 스타일을 쉽게 잊을 수가 없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의 원제는 《내 고양이들아, 용서해줘》입니다. 당시 가난한 유학 시절 평범하지 않았던  대찬 사노 요코의 심경을 공유할 수 있는 에세이인데요. 자신만의 은유와 비유로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시나 수필을 읽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글 사이 등장하는 15점의 (글 내용과는 무관할지도 모를) 원작 삽화가 더해져 색다름을 만듭니다. 번역가 권남희 씨의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본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시간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시간이라는 말이 생겼을 때,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 했을 것 같다. 바람을 본 적이 없는데 어릴 때부터 바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누구나 시간을 알고 있다. (중략) 시간이 딱 적당한 정도로 사람을 따라가는 일은 정말로 드물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부족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은 헐렁한 양복 같을 게다.

P62-63

 

​베이징에서 태어나 유럽으로 유학할 당시 느꼈을 낯섬을 알쏭달쏭 한 문체로 담고 있는데요. 아마 사노 요코의 독특한 매력이 이때 완성되었나 봅니다. 주변의 분위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센 언니, 솔직하고 시원하고 괄괄한 스타일, 덤빌 테면 덤벼보라지 한껏 날을 세운 길을 잃은 고슴도치 같기도 합니다. 시시콜콜한 감정과  가족에 대한 기억부터 미스터 최, 미스터 윤 등 한국 사람을 만나거나 다양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 후 관심을 갖고 보니 그 고양이와 비슷한 색의 고양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부뚜막 고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고양이를 볼 때마다 나는 엎드려서 사죄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다음에 그런 고양이가 우연히 집에 오게 된다면 순리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세 등등하게 못생긴 고양이를 내가 키워주겠어,라고 생각한 게 부끄러웠다.

P 130

​원제 '내 고양이들아 용서해줘' 챕터에서는 유년 시절 고양이의 출산으로 각인된 공포,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때, 오빠와 고양이를 갖고 실험 한 경험,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고양이를 키워주겠어!라는 결연한(?) 포부로 시작한 고양이 파양 에피소드 등 부끄러운 기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독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이 많은 사노 요코. 미안한 마음이 만들어낸 일종의 속죄가 아닐까요.

​사노 요코가 예전부터 할머니는 아니었을 테죠. 물론 그녀도 젊었을 때가 있었을 텐데. 우리에게는 할머니로 알려져 있네요. 사노 요코의 또 다른 면을 알고 싶다면, 어쩌다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게 되었는지, 40대의 사노 요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쟁을 경험한다는 것에 대하여, 조금 더 궁금한 독자에게 권합니다. 색다르고 환상적 문체와 개성 있는 그림은 덤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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