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볼
브래들리 소머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피시볼》은 금붕어 '이언'이 27층 '코너'의 방에서 추락하면서 시작합니다. 4초 동안 추락하는 이언 눈에 비친 층층마다의 사람들은 어딘지 부족하고, 어딘지 외로워 보이기만 합니다. 《피시볼》은 관음증을 해소시켜주는 사이다 같은 책인데요. 인류의 오래된  습관이자 취미인 관음증을 빌어 삶의 네 가지 과정인 사랑, 이별, 탄생, 죽음을  전하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아이 아빠 없이 갑자기 출산을 시작하는 산모, 난잡한 육체적인 관계 끝에 진정한 사랑을 찾았지만 방금 헤어진 남과 여,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자 옷을 입고 세상과 대면하는 남자, 은둔형 외톨이지만 멋진 산파가 되어버린 여자, 혼자 사는 일중독 관리인, 너무 똑똑해서 외로운 소년까지.. '세빌 온 록시'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안식처입니다.  


인생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상자가 하나 있다

P9 

첫 장의 첫 문장이 인상깊습니다.  이제부터 펼쳐질 소설 속 이야기를  압축한 인트로인데요. 세빌 온 더 록시를 거대한 상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사귀는 일이 단순해 보여도 현실은 정반대다. 상대를 찾기가 쉬울 것 같지만, 그녀의 직업이 존재하는 걸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연 맺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여기는 아주 외로운 행성의 외로운 도시다.

P617

대부분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며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현대인은  각자의 네모집에 들어가면 끝이죠. , 아래,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도 가지려고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엘레베이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아이가 나오는 바람에 이어지기도 합니다.


​안락한 집에서 뛰어내린 후 우리의 작은 황금빛 탐험가는 힘겨운 몇 초를 보냈다. 스트레스도 받았고, 새로운 사실들도 밝혀졌고, 평생 갈 공포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추락은 아직 결말을 맞지 않았다. (중략) 사람들이 뱉고 밟은 껌의 거무스름한 얼룩들도 보인다. 물고기가 떨어져서 터지면 그런 비슷한 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이언은 상상한다.

P304-305

본능적인 추락의 욕구에 충실한 이언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촉매제입니다. 또한 세상과의 모험을 즐기고자 하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고 있는데요.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맞이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앞으로 가고자 하는 관성이 느껴집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중요한 것을 찾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들은 이언의 시선을 통해 해학적으로 승화합니다. 소중한 것은 잃어버린 후에야 알아차리는 바보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죠.

 

제목  《피시볼》은 유리 어항이라는 뜻과 함께 사방에서 빤히 보이는 것,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는 장소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금붕어 이언의 처지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외로움과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고 해도 드러나게 되는 세입자들을 대변하는 제목이란 뜻에서 절묘한 이중성도 느껴지는데요. 결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는 여러 사람과 나눌 때 더 강력한 치유력이 생긴다는 명제를 확인하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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