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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 탁재형 여행 산문집
탁재형 지음 / 김영사 / 2016년 8월
평점 :
탁재형 PD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니 새삼 달라 보입니다. 여행 교의 주교로 활동하며 팟캐스트에서 절대 왕좌에 앉아있는 탁PD의 신작이 나왔네요. 탁PD는 EBS <세계테마기행>으로 알게 되었고, 책 《탁PD의 여행수다》로 굳히기에 들어간 인상 깊은 저자입니다. 감수성 자극하는 촉촉한 제목으로 가을의 문턱을 설레게 해주는 탁PD. 이번엔 제대로 여심저격합니다.
일단 탁PD의 책에는 유명 관광지는 거의 없어요. 탁PD는 오지 체험 전문가이거든요. 도로도 제대로 안 깔려 있고, 일인 다역을 해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발현되는 탁PD만의 감성여행. 그 길을 함께 하다 보면 마치 같이 다녀온 듯한 짠 내 나는 기운을 온몸으로 대리경험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책으로 먼저 만나본 독자들은 가을 분위기 뚝뚝 떨어지는 감성적인 남자라고 생각하겠죠? 뭐 그도 그런대로 괜찮아요. 여행지에서 고생했던 안 좋은 기억도 고국에 돌아오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될 테니까.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그곳의 냄새에 중독되는 법. 그 나라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음식도 여행자에게는 고통인 경우가 있습니다. '중독'편에 나오는 취두부처럼 고약하지만 중독되는 냄새에 대한 해석 무지 감동받았습니다. 귀동냥으로 들어보기만 했지 실제 맡아보질 않아 쉽게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만. 그곳의 악취가 냄새가 되고, 향기가 되는 독특한 경험은'여행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마술 같아 보였습니다. 음식의 냄새에 떠오르는 수많은 잔상들을 글로 적어보는 것도 어떨까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면 좋겠어.
되는대로 살고, 당신을 막 대해도,
나에게 중독되면 좋겠어.
다시는 못 보게 되어도, 내 냄새를 그리워해주면 좋겠어.
망할 놈의 취두부처럼 말이야.
P31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는 여행지에서만은 비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때로는 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해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의 마지막 장면처럼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적당히 젖은 소매의 한 부분처럼 우리의 삶도 여행을 통해 적당히 감성적이게 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어쩌면 여행은 수많은 인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로맨틱한 순간임을 또 한번 알아차리게 되었네요. 어느덧 우리 앞에 와 있는 가을, 말랑말랑한 문구와 감성 자극하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